졸도 사건으로 시작된 인생 여행의 서막
새벽부터 쏟아지는 피로를 안고 시작한 여정은 무려 34시간 만에 마침내 호텔에 닿았다. 인천 공항을 떠나 LA를 거쳐 페루로 향하는 비행기 안, 긴 비행을 앞두고 식사는 건너뛰고, 대신 와인 한 잔을 청했다.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인생 여행이니만큼 와인 잔을 단숨에 비웠고, 기내는 어둑해지고 몸도 슬슬 긴장을 풀려는 참이었다.
하지만 곧 몸속에서 요동치는 낯선 신호-어지럼증, 울렁거림, 식은땀. 나는 결국 그대로 비행기 통로에 쓰러졌다.
그 순간, 승무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꽂혔다. 한 명은 당황한 눈으로, 다른 이는 익숙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저기 한 분… 멋지게 다운되셨다.”
“와인 한 잔에 이 정도면, 체질이 꽤 솔직하시네.”
“알코올에는 낭만적, 몸은 직진파.”
“오늘도 기내는 조용할 틈이 없군요.”
그들은 능숙하게 나를 부축해 빈 좌석에 눕혔다.
말투는 다정했고, 손길은 노련했지만 그 눈빛에는 ‘이건 오늘 회식 때 얘깃거리다’라는 농담이 스며 있었다.
처음으로 남편과 떨어져 앉은자리였기에, 그는 내가 통로에 쓰러졌던 이 모든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몇 시간 후, 나는 남편에게 ’ 기내에서 기절한 나‘의 이야기를 전했다. 승무원들은 내내 다정하게 안부를 물으며 찬 음료를 건넸고, 나는 유일하게 외우고 있던 스페인어 “Mucho gracias!”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페루 리마의 호텔에 도착한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빨래였다. 변기를 부여잡고 토하려 했던 내가, 지금은 옷을 조물조물 헹구고 있다니! 한밤의 호텔 욕실에 웅크려 앉아, 와인의 후유증과 여행의 현실을 동시에 빨아내고 있었다.
남미 여행은 극적이다. 치자 모라다처럼 짙고 낯선 풍미가 혀끝을 감싸고, 세비체처럼 생생하고 때로는 날것 그대로의 순간이 정신을 흔든다. 예상 못 한 졸도, 불현듯 찾아오는 고산증 그리고 기회만 되면 빨래할 기회를 노려야 하는 긴 긴 여행일정.
그 모든 것들이 남미의 일부였고, 초반의 경험 덕분에 나는 점점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자의 시간에 몰입할 수 있었다. 다시 일어선 통로 위에서, 나는 작은 부활을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