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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정 Jun 04. 2024

산후조리원, 그 달콤했던 시간

육아를 하며 가장 평온한 시기는 산후조리원이다.

출산 후, 2박 3일의 입원 기간이 끝나고 이제 퇴원해서 조리원으로 이동할 시간이다. 2020년에 태어난 코로나 베이비, 때문에 아이 아빠는 아직 아이를 한 번도 제대로 안아보지 못했다. 출산 당일 탯줄을 자르고 나서, 겨우 하루 세 번의 면회 시간에야 유리창 너머로 아이를 볼 수 있었던 신랑은 퇴원읗 하고서야 비로소 아이를 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정말 짧았다. 산후조리원은 병원과 같은 건물에 있어 엘리베이터로 단 세 개 층만 올라가면 도착이다.  병원에서도 조심하느라 아빠는 태어난 날 외에는 아이를 실제로 보지 못했는데, 앞으로 2주를 더 못 본다는 게 아쉬웠다. 하필 코로나19로 산모를 제외한 그 누구도 산후조리원에 들어갈 수 없으며 아이 아빠도 함께할 수 없다니, 앞으로 2주간의 시간은 오롯이 아이와 엄마만의 시간이 된다.






드디어 유리창 너머로만 보던 아빠가 아기를 안아보는 순간이 왔다. 아이 아빠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신기해하며, 겉싸개에 꽁꽁 싸여 무게도 잘 느껴지지 않을 아이를 안고 마스크를 내리고 여러 번 인사를 했다. 나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본인 얼굴을 보여줄 생각을 하다니, 우습기도 하고 장하다 싶기도 하며, 이 무슨 생이별인지 마음이 이상했다.





그때 마침 “산모님, 빨리 들어오세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으며 동시에 아이와 함께할 기대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함께 몰려왔다. 산모를 제외한 그 누구도 산후조리원에 못 들어간다니, 아이 아빠 없이 오롯이 아이와 나만 함께하는 시간이라니 '괜찮을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여러가지 마음이 오갔다.


우리 부부도 결혼하고 처음으로 오래 떨어져 있는 시간이라 괜히 마음이 이상했던 것 같다. 2주간의 생이별이라니, 아쉽지만 잘 지내다가 만나자며 애틋한 인사를 해본다.








그렇게 엄마와 디디(태명)의 조리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실장님의 안내로 2주 동안 머무를 방에 들어선 순간, 넓은 방과 창 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 그리고 병실에서 가져온 빨간 캐리어를 보니 마치 나 홀로 호캉스를 온 것만 같았다.


아버님 찬스로 머물게 된 VIP룸, 언제 또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혼자만의 여행은 경험도 없고 몇 달을 혼자여도 늘 아이와 함께했던 생활이라 이 낯선 자유가 허전하기도 하고 비현실적인 것 같기도 해서 마음이 참 이상했다.


커다란 방에서 머물며, 삼시세끼에 간식까지 남이 차려준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매일매일 마사지를 받으며, 완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2주라니, '아, 이게 말로만 듣던 조리원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2주간의 달콤한 휴식이 시작되었다.








조리원에서의 일상은 참 평온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하고, 쉬거나 수유를 하고, 점심 식사를 하고, 수유를 하거나 마사지를 받는 식이었다. 아이 덕분에 온전한 휴식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시작된 육아 맛보기. 하루 두 번 모자동실 시간이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가 아기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다. 설레고 걱정되던 첫 만남은 아이 아빠와 영상통화를 하며 아이를 보여주고, 사진을 찍고, 하염없이 얼굴을 들여다봤다. 다행히 첫 번째 만남은 특별한 이벤트 없이, 선생님이 아기 침대에 눕혀주신 그대로 잠만 자고 돌아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긴장해서인지 힘이 쭉 빠졌다. 그래도 아이 덕분에 신랑과 처음으로 영상통화를 해봤다.


두 번째 만남, 저녁엔 드디어 눈을 떴다! 눈을 뜬 건 태어난 지 3일 만에 처음 봤는데, 뭔가 귀여웠다. 눈 감은 게 더 예쁜 것 같기도 하고... 하루하루 달라지는 우리 아가가 점점 뽀얗고 동글동글해졌다. 이틀간 어설픈 수유 시간을 빼고 유리창 너머로 보던 아가를 실제로 보고 만지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보면 볼수록 예쁜 내 새끼. '너의 표정 변화,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두 감동이야.'





매일 점심 식사 후 신생아실 소독 시간, 저녁 식사 후 신생아 목욕 시간, 하루 3시간 정도는 조리원에서 나와 디디가 둘만 함께 있는 시간이다. 그 사이 매일 같으면서도 다른 우리 딸, 아이와 함께하는 동안은 안아주고, 맘마 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사진 찍고, 아빠랑 영상통화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점점 함께 있는 시간에 눈뜨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기저귀도 갈아주고, 맘마도 주면서 엄마가 된 것에 적응해 나갔다. 처음에는 잠만 자더니 눈뜨고, 쉬하고, 응가하고, 울고... 처음 모자동실 시간에 응가한 날에는 어쩔 줄 몰라서 아이를 안고 신생아실로 달려갔고, 자꾸만 우는 아이가 배가 고픈지 유축해둔 우유를 가져다 달라고 하기도 했다. 기저귀를 갈아서 예쁘게도 접어두었다며 웃으시는 선생님 덕분에 조금의 여유도 생기며 어설픈 엄마의 시간들이 하루하루 지나갔다.








조리원에서 엄마의 일상은 '수유, 마사지, 삼시세끼 챙겨 먹기, 하루 두 번 모자동실 시간에 함께하기, 좌욕하기, 수유 마사지 유축 숙제하기, 다리 마사지하기, 손목발목 원적외선 쏘이기 등등...으로 점점 평온한 일상이 바빠져 갔다.


그 중 모유 수유가 엄마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는데, 모유가 많지 않아서 속상한 날도 있었고, 조금 더 나왔다고 기뻐한 날들도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수유할 때마다 열심히 열심히 땀을 뻘뻘 흘리며 먹어줘서 너무 대견했다.


'오전과 오후가 다른 우리 디디, 하루하루 조금씩 커가는 우리 디디, 조금은 배가 고파도 잘 자지만, 많이 배가 고프면 못 참는 우리 디디' 그 덕에 열심히 먹는다며 우리 디디처럼 욕심 있게 잘 먹어야 한다고 수유실장님이 엄청 칭찬해주셨다. (어쩜 먹는 것도 엄마를 닮았니)


약간 노랗던 얼굴도 뽀얘지고, 까맣던 머리도 약간 갈색빛이 돌고, 볼살도 살짝 오른 것 같고... 매일매일 성장하는 아이 '우는 것도, 웃는 것도 모두 귀엽고 사랑스러운 너' 이렇게 엄마는 딸 바보가 되어간다. "아가야, 너의 매일매일을 사랑해."







드디어 조리원의 마지막 날이 왔다. '우리는 집에 가서 잘 할 수 있을까?' 그동안 아이가 얼마나 먹고, 싸고 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마지막 교육을 듣고 조리원 밖을 나선다. "아가야 엄마가 잘 해볼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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