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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식 Jul 20. 2023

우리가 전주로 간 이유(2)

[MyBizStory(10)] with 'Orot Company' 8편

[관련 글]

       [MyBizStory(9)] with 'Orot Company' 7편: 우리가 전주로 간 이유(1)

        https://brunch.co.kr/@ventureman/56



전주에서 정신없는 이틀을 보내고 서울에 온 다음날이다. 전주에 가게 된 이유는 전주와 관계인구가 된 1년을 함께 자축하기 위해서였다. 6명의 사람들이 모여 먹고 마시는 유쾌한 시간을 가졌는데, 다들 출신지가 전주가 아닌 사람들로 구성되어 이색적이었다. 전주에 오게 된 이유는 다음 2가지로 종합되었다. 일자리를 찾아서, 혹은 사람이 좋아서...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 끌어당기는 힘은 대단하다. 나도 전주에서 만난 사람 덕분에 전주를 베이스캠프처럼 생각하며 오가고 있다.


나무젓가락 재생 프로젝트는 뜻밖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일상생활에서 출발하는 아이템이다보니 관련 기관이나 단체로부터 적지않은 연락이 왔다. 나무젓가락 업사이클링은 아이디어로서 참신했고, 작고 가벼운 소재다보니 쉽고 단순할 거라 여긴거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오산이다. 


다이소와 같은 생활용품점에서 1천원에 여러자루 구입할 수 있는 작은 볼펜도 정밀기계공학이 적용된 제품이다. 볼펜의 촉에 들어가는 볼은 공방에 들여놓을 수 있는 소규모 절삭장비로 깎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국내 생산이 안 되어 볼만 일본에서 전량수입해 재가공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다.


우리가 만든 우드칩과 우드블럭은 작은 공방에서 가능한 수준으로 단위 생산성을 따지면 쓸모보다는 무쓸모에 가깝다. 사람 손으로 한가닥한가닥 놓고, 접착하고, 고온프레스로 눌러 압착하는 건데, 이런 식으로 작업하면 생산성도 떨어지고, 가격도 비싸다. 가로세로 25센치미터, 두께 1센치 정도의 우드블럭 1개의 소비자단가는 3만 원 정도 책정해야 포장, 배송, 반품까지 고려한 온라인 유통 정도를 해볼 수 있는 가격구조가 된다. 


그나마 음식을 먹다가 버린 젓가락이 아니라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하는 나무젓가락이라 가능한 거다. 음식물이 묻거나 제대로 뜯기지 않은 갈래갈래의 나무젓가락을 재생하려면 공정이 복잡해지고 손도 많이 든다. 그러니 공장과 설비를 제대로 갖춰야 채산성을 맞출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채산성이 이루어질 때까지 제조비법을 터득하고, 적정공정에 맞춘 설비구조가 완성될때까지의 오랜 시행착오도 각오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이야기는 잘 만들어진 사업계획서와 감동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스토리텔링으로 큰 금액대의 투자를 유치하는 거다. 그러나 그게 쉽게 가능할 것 같은가? 어떤 면에선 설득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사기를 치겠다고 마음 먹고 들어가라고 조언하는게 더 현실일 것 같은 이야기인데?


뭐라도 만들어 내는 것을 보여주려니 공간이 절실했다. 현재 활용하고 있는 40평 가량의 디스쿨 공간에서는 어림도 없었다. 따라서 자금을 끌어오지는 못하더라도 뭔가를 해볼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찾아야 한다. 공간을 못 구하더라도 그런 공간을 제공받을 수 있는 그런 곳을 찾아야 한다.


이런 목적이 한동안 <오롯컴퍼니>가 자리잡고 있던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다른 로컬로 눈을 돌리게 만든 계기였다. 어디가 좋은 곳이 될지 몰라 저인망식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서로 연고가 될만한 곳부터 물어물어 찾기로 했다. 


우선 서울 강동구에서 오가기 쉬운 곳부터 시작했다. 우선 거리가 가까운 경기도 남양주시, 포천시를 탐색하고, 다음으로 올림픽대로에서 고속도로를 거치면 1시간만에 도달할 수 있는 강원도 홍천군도 물망에 넣었다. 일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강의나 용역이 들어오면 해당 로컬을 돌아보고 답사하고, 제조업의 비전을 이야기하며 적절한 장소나 공간, 비즈니스 그룹, 공동체 구성원들을 수소문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밖에도 우리가 접촉하고 답사하고 고민한 로컬은 더 많다. 경기도 화성, 충청남도 아산, 강원도 강릉, 태백, 나 개인적으로는 충청북도 제천, 경상북도 경주, 전라북도 김제까지 고려했다. 이종건 대표 나름대로도 탐색한 곳이 있으니 대한민국 전역 어디가 되었든 뜻을 펼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가서 다시 시작할 심산이었던 거다.


그러나 어디든 만만치 않았다. 일단 지역연고가 약했고, 목적성도 애매했다. 낙후되고 허름한 공간인 건 상관없지만, 가능하면 가용한 자금은 설비를 충당하는데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할 정도로 상황이 절박해서, 껴들어갈 수 있거나 무상으로 얻을 수 있는 곳을 필요로 했다. 좋은 제안을 주시는 분도 몇몇 계셨지만, 공장을 차리기엔 애매한 경우들이었다.


그러던 중 내게 광주광역시에 가야할 일이 생겼다. 이종건 대표에게 가벼운 여행을 제안했다. 휴가간다 생각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발상을 전환해보자고 말이다. 하도 여러 군데를 같이 돌아다녔기에 구체적으로 어디어디를 경유했는지 기억이 명확하지는 않다. 서울에서 광주를 오가며 만날 수 있는 지인들을 만나보자고 했고, 중간기착지들을 거쳐 1박할 곳으로 전주를 선택했다. 여기서 안면은 있으나 친분을 쌓지 못했던 이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당번이라고 하긴 뭐 했는데, 각자 1명씩 당번을 정한 것처럼 연락을 해 만남을 청했고, 그 두분은 흔쾌히 만남을 수락해 전주 일정이 메이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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