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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식 Aug 06. 2023

느린학습자들과의 동행을 꿈꾸며

[MyBizStory(12)] with 'Orot Company' 10편

<오롯컴퍼니>와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가 벌써 10편째 이어지고 있다. 2~3편으로 정리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글쓰기에 앞서 언급한 스토리들을 훑어보니 3~4가지 굵직한 일들만 언급하는 수준이었는데 말이다. 자잘자잘한 이야기들까지 기록한다면 꽤 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과유불급일 것 같다. 이번 회로 <오롯컴퍼니>, 이종건 대표와의 2년간의 동행에 대한 이야기를 매듭지으려 한다.


[지난 이야기 리스트] https://workflowy.com/s/a7159f3f2a10/LNFK7A1vpJV98OgV



전주를 다녀온 이후 발걸음은 더욱 바빠졌다. 지난 5~6편에서 언급한 DIT 관련 서적 출간을 서두르기로 한 것도 전주를 다녀온 것과 전혀 무관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로컬을 향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가능성이 공존했다. 크게는 서울의 거점을 로컬로 옮기는 것과 서울에만 있던 거점을 여러 로컬로 다원화하는 방안 2가지를 놓고 고민했다. 각각의 장점과 단점이 있었고, 여러모로 기반이 약한 <오롯컴퍼니>의 상황 속에서는 화끈하게 결정할 수 없었다. 우리가 원한 건 인적 네트워크만이 다가 아니다. 본격적인 제조업이 가능한 기회를 잡아야만 했다.


<오롯컴퍼니>가 걸어온 길을 유형화된 콘텐츠로 만든다는 차원에서 책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게 다가온 이유이기도 했다. 사실 내가 의도한 것은 '자취'를 보여주고자 한 거였다. 우선 그간의 '발자취'를 남김으로서 기업이 스토리텔링된다는 것을 노린 것이 첫번째였다. 두번째 노림수는 과거의 흔적의 나열을 통해 어느 누군가는 반드시  수학적 개념으로서의 '자취'를 계산해 알아채주길 바랬다.


수학적 정의로 자취는 "그 위치가 어떤 일정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점들의 집합(예를 들어, 직선, 선분, 곡선, 영역, 곡면 등)"이다. 이는 <오롯컴퍼니>에 합류 이후, 앞으로 <오롯컴퍼니>가 잘 될거냐, 못 될거냐를 물어보는 분들이 제법 있었는데, 그에 대한 통합적인 답변을 하고자 했던 거였다.


사실 <오롯컴퍼니> 구성원이지만, 나 또한 나의 관점을 지니고 있고, 나의 길을 하는 와중에 일시적으로 합류한 것이기에 나름의 생각과 입장을 갖고 있다. <오롯컴퍼니>가 잘 될 거라는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3시간 동안 할 이야기가 쌓여있고, 반대로 잘 안될 거라는 이야기가 듣고 싶은 사람에게도 3시간 동안 이야기할 꺼리들은 많다. 그렇기에 그런 제3자에겐 수학적 '자취'를 보여주는게 가장 객관적인 방법이며, 자기만의 판단과 시각을 가지고 참여자가 될 건지, 팬이 될 건지, 안티가 될 건지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장소와 관련한 고민 외적으로 또 다른 트랙의 고민도 심화되었다. '누구와' 함께 가치를 만들어 갈 것인가의 문제였다. 사회적기업이기에 '사회적가치'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단순히 자원재활용으로서 나무젓가락 재활용을 넘어선 보다 적극적인 밸류체인을 구성하기 위한 주체는 누구냐는 거로 고민했다. 여기서 우리는 '느린학습자(경계선지능인)'들을 우리의 동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침 2022년은 '느린학습자'들을 위한 사회적인 움직임이 크던 때였다. 일상생활이 가능하기에 장애는 아니라 장애등급을 받지못하지만, 일반인들보다 어눌하다는 이유로 사회적 고립을 겪는 느린학습자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사회각층의 노력이 기울여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여기서 강하게 이야기하고 싶은게 있다. 우리가 사회적 관심을 틈타기 위해 '느린학습자'를 끌어들인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누구보다 내가 그걸 보증한다. 이종건 대표 스스로가 같은 말을 하게 되면 입에 발린 말이라 여길 거라 내가 더더욱 강조할 수밖에 없다. 만일 우리가 그런 목적으로 밸류체인 속에 '느린학습자'를 끌어들인 거였다면, 일부러라도 '느린학습자'라는 키워드를 남발하고, '느린학습자'들 사이에 들어가 활동하는 사진 따위를 남기는데 골몰했을 것이다. 


원래부터 이종건 대표는 사회적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을 갖던 사람이다. 대학시절 토익학원을 다니던 와중에 학원과 인접한 청계천이 복원되어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으로 놀러나오는 것을 보며, 장애인들의 청계천 투어가 가능하게끔 하자는 취지로 작은 캠페인을 벌인 바 있다. 당시엔 배리어프리 개념이 약하던 때였는데, 스스로 휠체어를 타고 청계천을 오가며 장애인 접근이 가능한지를 점검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인식시키는 행동에 나선 적이 있다.


실제로 나무젓가락을 재생한 우드블럭을 만드는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마다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하기고 했는데, 여기에 내가 '느린학습자'를 참여시키는 방법을 강하게 추천했다.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기업도 일부 존재하고, 사회적기업은 아니지만 장애인을 고용하는 기업들도 있다. 


그러나 장애인보다 더 복지와 취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이들이 '느린학습자'이기 때문에 진짜 사회적기업이라면 이런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하는게 아니냐는게 나의 주장이었다. 사실 <오롯컴퍼니>가 '느린학습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21년 태백에서 맺었던 각별한 인연과도 관련이 있다. 태백 기행 당시 함께했던 분 중 한 분이 관계자분이셨던 것도 작용하긴 했다. 


이후 우리는 '느린학습자'와의 동행을 놓고 생각을 더 모으게 되었다. '느린학습자'들에 대해 알아가면서 느린학습자 중 일부는 제조업에 탁월한 적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 이종건 대표는 <오롯컴퍼니>식의 재정의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들이 사회적 소회계층이라 이들을 불쌍히 여겨 고용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이들이 누구보다 나무젓가락을 재활용한 건축자재 제조에 탁월한 전문인력이기에 이들과 동행하려는 거다. 그러므로 최고인 이들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 기업 전반적인 차원의 준비해야만 한다."


실제로 이종건 대표는 이를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느린학습자(경계선)인지 학습 상담사 느린학습자 상담자격 2급' 자격증을 취득하기까지 했다.


한편으로는 남양주시 <모퉁이돌공방> 유인기 목수님과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유인기 목수님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다양의 체험활동과 교육을 진행하고 계신 전문가분이시다. 느린학습자를 돕는 기관과도 결연을 맺고 계신 분이시기도 하다. 그래서 순수한 마음으로 <오롯컴퍼니>와 함께 해주셨다.


이종건 대표는 유인기 목수님과 함께 느린학습자들이 투입된 우드칩과 우드블럭 제조 공정을 상정하고 적절한 작업방식과 작업을 돕는 작은 툴들을 어떻게 갖춰나가야 할 지를 연구했다.


모퉁이돌공방에서 시제품들을 만들어 보며...


이렇게만 언급하고 보면, 뭔가 희망이 넘치고 낙관적인 결과가 나올 것처럼 보여질지 모른다. 느린학습자들과의 동행이 이루어지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제조 가능한 시설과 장비가 들어와 본격적인 제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나무젓가락 재활용 제품의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공급망과 판매구조가 만들어져서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공정을 이끌어가며 새롭게 합류할 멤버들을 지도할 수 있는 숙련자가 1명 이상 탄생해야 한다. 그제서야 비로소 '느린학습자' 교육기관과 연계해 진로적성교육-직무교육 방법을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된다. 이후에라야 제조라인에서 이들과 함께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일은 쉽고 단순하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못다한 이야기는 많지만 <오롯컴퍼니> 이야기를 여기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내가 해보려던 비즈니스 실험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함께 만나고 함께 겪었던 일들이 있지만, 그러다간 정작 해보고 싶은 내 이야기를 못하게 될 것 같아서다. 다만 한 가지 똑 부러지게 남기고 싶은 말은 하나 있다.


서로 함께 하게 되며 나도 그렇고, 이종건 대표도 그렇고 부정적인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았다. 우리가 함께 하는 이유에 대한 단순한 궁금증 이상의 의심이었다.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겠다. 다만, 그런 시선을 통해 타인들이 나를, 이종건 대표를, <오롯컴퍼니>를, 그리고 나의 비즈니스 브랜드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있음을 말이다. 결국 입증의 책임을 지닌 건 나 자신이다. 나의 삶을 통해, 나의 비즈니스를 통해 설명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브런치를 통해 MyBizStory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앞으로 전주를 무대로 비즈니스를 펼쳐나가는 이종건 대표와 오롯컴퍼니, 또한 오롯컴퍼니 시즌3에 합류한 크루들에게 좋은 일들이 이어지고 뜻깊은 열매가 가득 맺힐 것을 기대하는 바다. 나는 다른 필드에서 따로 또 같이 동행하는 것으로...


택티컬 어버니즘 사례를 찾아 일본 답사를 다녀온 이종건 대표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찾아왔다. 날 주려고 일본에서 구매했다는 고구마소주를 주겠다는 이유였는데... 정작 고구마소주를 한 잔씩 마신 우리는 취기에 넘쳐 돌연 기획회의 모드가 됐다. 이 날 무엇인가에 홀린 것인지 몰라도 사회적기업으로서의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느린학습자를 밸류체인에 포함시키자는 논의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소주를 한 잔 한 잔 하면서 나눴던 논의를 칠판에 적었는데, 판서량이 이 정도가 될 줄은 몰랐다. 고구마의 힘인지, 소주의 힘인지, 선진지인 일본 탐방의 힘인지 뭔지는 몰라도 당분간 이 9번의 판서는 나무젓가락 업사이클링과 관련해 계속해서 탐구하게 될 '느린학습자'에 대한 숙제로 남겨져 있을 예정이다. 자원순환, 업사이클링에 대한 관심, 오롯컴퍼니에 대한 관심보다 취약계층으로서 '느린학습자'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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