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BizStory(13)] 숙대 앞 PC미션 창업기 1편
'언젠가 소설가'를 꿈꾸고 있으니 다시 소설을 읽기로 작정하고 몇 권을 손에 들었다. 마침 편의점 동향을 트래킹하던 중이었던 시기라 편의점을 다룬 <불편한 편의점> 1, 2권을 읽었다. 불편한 편의점의 무대는 서울 청파동 어딘가다. 읽어나갈수록 예전에 내 매장을 있었던 그곳이 아닌가 싶어 흥미진진하게 소설 2권을 독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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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청파동 어딘가에 자리 잡으려 분투하며 상권과 입지에 대한 이해를 높여간 생생한 경험담을 털어놓겠다. 정독을 부탁드린다.
1) 글이 꽤 길어질 거라는 점...
2) 더 길어지면 연재로 넘어갈 거라는 점....
이 2가지 양해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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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나의 창업일기가 존재했다면, 첫 페이지는 20세기 끝자락인 1999년부터 시작될 거다. 그간 일반과세자로 다시 시작한 2004년부터 환산해 스스로를 '창업 20년차'라고 소개해왔다.
프리퀄로 칠 수 있는 1999년~2003년까지의 벌어진 일들은 나의 창업동기를 설명할 수 있는 소중한 때다. 원래는 스타트업을 꿈꿨으나 그렇게 되지 못해 스몰 비즈니스부터 차근차근 밟아가겠다고 마음 먹은 게 2003년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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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저차 사정으로 컴퓨터및주변기기 분야로 시작했다. 2003년 겨울 후배 한 명이 합류해 그가 가져온 종자돈 500만원과 내가 가져온 100만원을 합쳐 자본금 삼아 용산전자오피스텔 1101호 사장님께 부탁해 책상 하나를 빌려 창업했다. (이때의 에피소드도 매우 재밌지만 전부 고생담. 후일 기회가 되면 이야기하는 걸로...)
그러다 세금계산서 발행 문제 때문에 일반과세자로 사업자등록을 해야 하여 2004년 봄 삼각지에 있는 공유오피스로 옮겨왔다. 그러다가 사세의 확장이라기 보다, 소음과 먼지가 많이 나는 업무특성상 공유오피스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어 적당한 공간을 찾다가 2005년 경 청파동 2가 숙대 앞으로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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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리잡은 곳은 숙명여대 정문에서 130미터 떨어진 대로변이었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뭔가 대박칠 곳에 자리잡은 줄 알겠지만 조금 깊은 지하공간이었다. 과거에 카페 겸 레스토랑이 있었던 곳으로, 나중에 주변 부동산 사장님에게 들었지만 2년 가까이 공실상태였던 곳이다. 보증금 1500만원에 월세 60만원으로 시작했다. 2005년도 기준이라고 해도 종합대학교 앞 상권 치곤 저렴한 편에 속했다. 햇볕이 들지 않는 지하였기 때문이다.
첫달은 영업이 잘 되었다.오픈빨이란 게 있었으니까... 그러나 딱 첫 달뿐이었고 계약기간 중인 2년 내내 제대로 된 매출이 나지 않아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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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던 이유는 고정비 지출이 많아서였다. 우선 인건비 문제였다. 뭔가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보겠다고 친동생과 후배들을 꼬셔 4~5명이나 있었다. 컴퓨터 서비스 소매업체들은 대체로 1인기업 형태로 업종을 영위한다. 매장을 지키는 사람이 필요할 경우, 가벼운 경수리를 할 수 있는 알바 1명 정도를 두는 정도다. 부부가 협업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우리 업체는 컴퓨터 서비스 소매점치곤 꽤 큰 규모였다. 규모가 있었기 때문에 경험한 일들도 제법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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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나는 혹세무민이 가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동생과 후배들에게 쥐꼬리 반의반만한 임금을 주면서 새벽부터 심야까지 노예노동을 시키다시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세는 성장하지 않았다.
매출이 원하는 만큼 충분히 늘지 않았고, 매출에 비례해 판관비도 폭증해 많이 어려웠다. 회고해보니 매장과 영업에 필요한 비용 외에도 당시 나 혼자 지출하는 비용만 200~300만원 정도였다.
우리는 주 6일 근무를 했으니 하루 평균 10~12만원 정도를 사람을 만나거나 여기저기 움직이는데 써야 했다. 나는 이 비용을 영업비라 생각했으나 동생들은 형이 또 뻘짓하느라 우리가 피땀흘려 번 돈을 허투루 쓰고 다닌다고 생각했다. (그때 썼던 비용들은 타당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게 오늘날의 내가 있을 수 있도록 이런저런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는데 그건 또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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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심한 고생을 했던 이유는 상권과 입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삼각지의 공유오피스에 있을 때부터 어느 컴퓨터 제조업체(조립PC)의 AS 대행업체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종로구, 중구, 용산구 일대를 무대로 하고 있었다. 작업공간이면서 매장을 겸할 수 있는 적합한 위치를 찾으려 하다보니 여러 장소를 물망에 두고 압축해간 곳이 바로 숙대 앞이었다.
이게 어마어마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무려 4년 후였다. 어마어마한 수업료를 치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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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 앞으로 오기로 결정한 것은 5가지 요인이다.
1) 교통편리성
대중교통으로 서울 전역 사통팔달. 지하철 1, 4, 6호선으로 쉽게 연결되며, 청파로로 나가면 여의도-서울시내로 움직이는 버스를 쉽게 탈 수 있다.
2) 자재수급 및 거래처확보
용산전자상가까지 대중교통으로도 30분 이내 접근
3) 풍부한 1차 배후인구
2만 명에 육박하는 청파동 인구, 1만 명 넘는 숙대학생 및 교직원, 숙대입구 9, 10번 출구 기준 출근시간에 2만명이나 되는 유동인구
4) 확대하면 큰 2차 배후인구
차량 20분 거리에 수천세대 아파트 단지: 마포구 도화동, 용문동
5) 서대문-광화문-종로-청계천 부근 오피스시장
경쟁업체가 존재하지 않는 곳
6) 저렴한 식당
한끼 2,500원부터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식당 존재 (당시 백반집이 1끼 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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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용들이 사전조사 과정에서 수집되었다. 숫자만 믿을 수 없어 발품을 팔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보니 반드시 성공할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혔다.
우선 동종업체가 없었다. 청파동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고장난 컴퓨터를 '어떻게든 고쳐 쓸 사람들이 많은 동네'의 특성이 고스란히 도드라졌다.(무슨 뜻인지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기회가 닿을 때)
특히 학습, 과제수행을 위해 컴퓨터나 노트북에 이상이 생기면 어떻게든 빨리 고쳐써야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게다가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전자기기를 자가정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남자친구나 가족에게 부탁할 수 있지만, 그들 모두가 컴퓨터 수리가 가능한 게 아니다. 더욱 감사한 건 이런 학생들이 매년 2,000명이 떠나고 2,000명이 새로 온다. 시장이 새로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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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나는 엑셀을 이용해 매출과 수익을 시뮬레이션했고, 곧바로 이를 토대로 우리 멤버들에게 희망고문을 시작했다. 이 때문에 다들 희망에 가득 차 어느 누구도 이 상황과 사실을 의심할 생각을 못했다. 이것이 가장 큰 실패요인이었다. 왜 이런 좋은 조건을 갖추고도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상권과 입지의 개념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수집한 자료 속의 숫자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거다. 숫자가 보여주는 값이 중요한 게 아니라 숫자가 보여주지 못하는 값이 얼마만큼인지 알아보는 눈이 없었던 거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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