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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식 Jun 03. 2024

주민 1만+학생 1만 상권인데 장사가 안 된다!

[MyBizStory(14)] 숙대 앞 PC미션 창업기 2편

지난 밤에 남긴 글에 페친분들이 열띤 호응을 해주셔서 이야기를 속히 진행해야 할 것 같았다. 상권과 입지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고군분투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우리가 깃들어간 상권이 숙대상권이었고 수치만 보았을 때는 굉장히 좋은 상권이었다는 언급으로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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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사들어간 곳은 63번지였다. 숙대 정문에서 딱 130미터 떨어진 공간이었다. 지하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당시 숙대 앞 파리바게트라고 하면 숙대생은 물론 청파동 사람들 모두가 아는 장소였다.

심지어 숙대와 관련 없는데도 숙대를 와봤거나 지나갔던 사람들에게 숙대 앞 파리바게트 옆에 있다고 하면 어딘지 알아들을 정도였다. 일종의 앵커스토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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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숙대생들의 명소로는 달볶이와 와플하우스가 있었다. 이 두 가게는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랜 세월 부침이 있었지만 오래 버틴 이유가 있다.

달볶이는 학생회관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달볶이가 인기있었던 이유는 우선 맛이다. 맵지 않으면서 달달한데, 보들보들할 정도로 익히면서도 퍼지지 않게 만드는 게 포인트다. 이밖에 정말 저렴한 가격, 계속 퍼주는 정겨움 때문이다. (당시 숙대거리의 떡볶이집들을 비교해 자료집을 만들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으나 시도하지 못했던 게 아쉽다. 그때는 내게 이런 재능이 있는 줄 몰랐었다.)

와플하우스는 숙대입구 쪽 삼거리 내려가는 쪽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친구들과의 만남의 장소로 매우 좋았다. 학교 앞은 북적대서 기다릴만한 곳이 마땅치 않은데다 지하철역에서 조금만 올라오면 되는 위치에 있어서다. 메뉴의 특성이 뻔하고 유치하지도 않고, 부담없는 양과 가격이 적절해 많이 사랑 받았다.

파리바게트는 학생회관 쪽 도로에 있어 학생들의 등교길과 겹쳤다. 딱 100미터 거리이다보니 여기서 빵을 사서 간단히 아침과 점심을 해결하는 이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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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포를 가져본 적 없었던 우리는 여기까지만 알고 매우 기뻐했다. 첫달 영업은 그럭저럭 해볼만 했다. 가게를 오픈하고 나서 주변 상인들께 인사드리고 프린터기로 작은 전단지를 만들어

지나가는 주민분들께 나눠드리는 정도로 시작했는데, 인사드린 분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다.

"안 그래도 컴퓨터 가게가 없었는데 잘 됐네요"

이런 대답을 들을 때마다 너무 신났고, 지역사회의 쓸모 있는 일원이 된다는 게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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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민들의 말 속에 뼈가 있었다. 청파동이 신도시도 아니고 일제시대부터 생긴 오래된 동네인데 컴퓨터 가게가 없다는 건 이유가 있는 거였다.

이 말에는 2가지 단서가 숨겨져 있다.

1) 컴퓨터 가게가 필요없는 동네

2) 컴퓨터 가게가 있을 수 없는 동네     

그렇다면 왜 이 동네에 컴퓨터 가게가 없을까?

이 문제를 알게 되기까지 머리로는 한 달, 몸으로는 1년 반, 깨달음으로는 오기까지는 10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 문제는 상권의 특성 중 정지성과 관련이 있었다. 여기서 정지성은 "상권이 멈추는 공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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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숙대 정문쪽 오르막길 (네이버지도 거리뷰)


우리 점포가 있었던 장소의 지형, 지세가 문제였다. 청파동의 '청파(靑坡)'는 푸른 언덕이라는 뜻으로, 과거 연화봉(蓮花峰)이라는 산 동쪽으로 형성된 취락이었다. 연화봉이 어디였는지 모르지만, 지형을 살펴보면 효창공원쪽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청파동에 이사오면서, 여기가 왜 청파동인지 알아보지 않은 것부터 화근이었다. 숙대입구역에서 숙대로 가는 길은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숙대를 지나서도 효창공원까지 오르막이 계속된다. 이뿐만 아니다. 숙대가 자리잡은 곳을 제외하면 청파동1가, 2가, 3가 모두 경사가 가파른 언덕길이 많다. (언덕길 때문에 고생했던 에피소드는 분명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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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의 정지성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중 어디에 상권이 형성되느냐의 문제였던 거다. 숙대에 가까워질수록 오르막길의 경사가 급하고 숙대에서 멀어질수록 경사가 완만하다.

우리 점포는 오르막길의 8부능선 즈음에 자리잡고 있었다.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이 아닌 경우, 사람의 이동이 힘든 곳은 상권이 형성되기 어렵다. 이 땅을 밟고 움직이는 사람의 목적은 빨리 지나가고 싶은 심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상행위 욕구가 적어 상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상권이 형성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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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조금 더 숙고해보면, 이런 장소에서 상행위의 욕구와 필요를 일으킬만한 게 뭐냐는 거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생존의 욕구와 직결되는 점포만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었던 거다. 그러니 학생회관 근처의 달볶이와 파리바게트는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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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이 내가 몰랐던 점이었다. 숫자와 면적으로만 대했던 숙대상권의 맹점이었던 거다.

다시 들여다보니 숙대 정문 근처의 상점은 작은 분식점, 밥집 등이 대부분이고, 문구점과 복사가게 정도만 존재했다. 나는 이걸 일찍 정착한 상인들이 학교 앞을 차지한 거라고, 일종의 기득권이라고 오판하고 있었던 거다. 

학생들이 오래 머무르며 즐기는 가게들은 내리막길 쪽이 삼거리에나 조금 있을 정도인데, 옷가게, 악세사리 가게 몇 개만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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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후인구, 유동인구가 어마어마해 숙대상권, 청파동상권은 규모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숙대 정문을 지나는 대로변은 또 다른 상권 개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면적으로만 상권을 따질 때도 넓은 권역으로 볼 때 다르고, 좁은 권역으로 볼 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점마다 점을 찍고, 상권으로서의 가능성과 가치를 작은 원으로 그려 표현한다면, 우리 점포가 있던 위치의 원은 거의 점에 가까운 수준이었던 거다. 양과 질이 달라지는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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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 사실을 이해하기까지 머리로 1달이 걸렸다고 했지만, 상권의 정지성이라는 개념은 몰랐다. 우리의 부진함에 대한 사연을 들은 다른 동네 부동산 사장님이 "오르막길 상권은 장사가 안 되고 내리막길 상권은 장사가 잘 된다 아마 그래서 그럴 거다"라고 말씀해 주셔서 그 정도의 이해로 고민을 시작했다.

결국 시간 싸움, 엉덩이 싸움이라고 생각하며 주민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입소문이 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며 이런 저런 영업에 박차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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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전단을 만들어 붙이러 다니기 시작했다. 꾸준히 전단을 뿌리기 위해 알바를 구해 매일매일 쉬지 않고 전단지를 뿌렸다. 효과는 별로 없었다. 용산구청 단속에나 걸렸다. 구청 가서 야단맞고 벌금내고 오곤 했다. 

그럴 수록 더 뿌리라는 조언을 듣고 나중에는 전단지 배포업체에 돈을 주고 더 넓은 지역에 뿌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영업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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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막급이었다. 찾아오는 고객이 없다면 이전처럼 공유오피스에서 영업해도 되었다.

우리 일이 공유오피스에 적합한 업종은 아니었지만, 공유오피스 사장님은 우리를 좋아했고 많이 배려를 해주셨다. 심지어 우리 일을 거들어주시기도 했고, 다양한 기술문서를 찾아주시기도 했고, 영어를 잘 하시는 분이셔서 해외 기술문서까지 대신 읽어봐 주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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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한 번 마음을 정비해 숙대 근처와 청파동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상권의 정지성이 문제라면 모든 점포가 힘들어야 한다. 그리고 지속가능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눈치를 살피면 그래도 다들 근근이 먹고 산다. 우리 가게만 힘든 것 같았다. 뭐가 문제인지 빨리 알아채야 한다. 여전히 상권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나는 아무리 살펴봐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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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한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왔다. 거리가 텅 비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이건 학교가 지닌 학풍이랄까, 학생들의 문화와도 관련이 있었다. 흔히 이대와 숙대를 상호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학생과 교직원들은 스스로 비교하지 않는다) 연대와 고대를 비교하는 것처럼 집단으로 놓고 보면 차이점이 있다.

숙대의 경우,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많았다. 청파동은 하숙촌이 발달해 있는데, 숙대가 하숙촌을 발달시킨건지 하숙촌이 형성된 후 숙대가 계속 커진 건지는 모르겠다. (실제로 숙대는 매우 작은 학교였는데, 2000년대 들어오며 급속도로 대형화되었다.) 실제로 청파동에서 하숙생활을 하며 다른 지역의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뭐가 앞서고 뒷서는 건지는 모르겠다.

방학이 오니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고향으로 내려갔다. 계절학기나 어학, 자격증 준비하는 친구들 일부만 남았다. 남은 시간에는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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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숙대생들의 당시 특징은 정말이지 공부를 좋아했다. 치열한 입시를 치르느라 놀고 싶을텐데도 도서관에 짱 박히거나 어디에서라도 공부하는 학생이 많았다. 처음에는 취업을 위해 토익을 공부하는 줄 알았는데, 두꺼운 전공수업 책을 끼고 있는거다. 

떡볶이를 먹으면서도 친구들끼리 수업내용 이야기를 하고, 공부하다 막힌 부분 이야기를 하고, 교수님 강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궁금한 게 너무 많은데 다음 학기에는 어떤 수업을 신청해야 하나 이야기하고... 나의 대학시절과 비교하면 존경심이 우러날 정도였다.

(아마도 나의 젠더감수성과 나보다 젊은 친구들을 인정하는 마음은 이때의 경험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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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과거를 회상하다가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말았는데... 여튼 이런 이유로 방학의 숙대 앞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학생들이 놀기라도 좋아해야 모여서 빈둥대다 주점에 내려가 술판을 벌여야 상가가 활성화되는데, 이건 대체 뭔지!!!!

이제서야 대학가 상권을 반쪽상권 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았다. 상권에도 방학이 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우리 점포가 자리 잡은 숙대앞과 청파동 상권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 심각한 과제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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