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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식 Jun 17. 2024

제조업 등록 후 임가공 사업을 시작하다

[MyBizStory(20)] 숙대 앞 PC미션 창업기 8편

임가공 제조업을 시작하게 된 모멘텀 설명에 굉장히 긴 분량을 할애했는데, 자칫 제조업하시는 사장님들이 가벼이 여겨질까봐 어떤 제조업인지, 어떤 계기로 가능한 건지 경위를 상세히 할 필요가 있다 생각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부터 이야기하려다보니 당시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소상하게 풀어놓았다. 업계가 돌아가는 생태계 어딘가에 우리가 위치하고 있었기에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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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일지 모르지만 제조업을 적용해 시작하려는 분께 당부하고 넘어가야 하는 게 있다.

제조업 사업자등록 전에 반드시 세무서에서 실사를 진행한다. 이때 실사 중의 질문에 타당한 근거와 답변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무공무원이 산업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절대로 이들은 기분과 선입관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법령과 규정에 맞춰 묻고 체크한다. 어떻게 해야 별 탈없이 실사를 받는지 몇 가지 설명을 드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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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이라면 공장답게 제조가 가능한 규모와 설비를 갖춰야 한다. 원,부자재가 오염되지 않게 적재되고, 작업대와 작업도구를 통해 가공되고, 가공물이 다시 안전하게 보관되거나 청결하게 포장될 수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세무공무원 보라고 하는 쇼가 아니다. 업에 종사하는 내 입장에서도 납득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단순업무를 위해 오늘 하루 일할 일용직 알바가 와서 보아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쓱 보아도 "아 이렇게 돌아가는군?"이란 말이 나오면 성공이다.


출처: 픽사베이

둘째로 제조할 수 있는 작업도구, 공구, 검사계측장비의 유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단순화해서 말하면 컴퓨터 조립 임가공은 십자드라이버 하나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이건 선수끼리 이야기고, 일반인 입장에선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단순 고장수리는 드라이버 하나면 충분하겠지만 내가 장기간 쓸 컴퓨터를 조립생산하는데 그거 하나만 믿고 싶지 않은 거다. 만약의 경우에라도 사용하게 될 장비, 공구, 부자재를 상시 사용할 수 있으면서 작업동선에 군더더기 없게 배치하는 건 단순히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을 잘 하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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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경우 검사계측장비가 문제가 된다. 제대로 된 검사계측장비는심하게 고가에다 사용방법도 어렵다. 무엇보다 CPU, RAM같은 부품은 검사장비가 없다. 따라서 세무공무원의 질의에 지혜롭게 잘 답변해야 하는데, 말 장난으로 넘길 게 아니라 관련 분야의 전문지식을 갖고 있어 문제 해결이 가능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나의 경우, 구체적인 설명으로 모면했다. 전문계측장비 도입의 어려움을 짧게 말하고, 임가공 단계에서 가능한 몇 단계 검사방법을 말했다. 1단계로 관능검사를 진행하고 2단계로 어셈블 테스트를 진행한다. 이 2마디에 이어지는 가벼운 부연설명을 하니 이해했다고 하며 끝났다.

세무공무원 입장에서 보면 검수공정이 존재하며, 이 공간에서 가능하다는 결론만 나면 된다. 즉, 공장업무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서면 실사가 끝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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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궁금한 분이 있을 것 같아 설명을 보태자면, 관능검사는 오감을 이용하는 검사를 말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보는 거다. 컴퓨터 조립생산도 관능검사가 가능하다.

조립완료 직후 전원을 넣으면 비프음이라고 해서 신호음이 나오는데 이 신호음 유무와, 신호음 회수로 1차 조립의 불량, 양호 판정이 난다. 이후 OS설치 테스트와 드라이버 테스트로 부품체크가 완료된다. 여기에 스트레스 버닝 테스트라고 해서 반나절 정도 부하를 걸어 가동해보면 초기불량은 대부분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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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셈블 테스트란, (조립테스트) 부품 혹은 부분품을 교체하며 불량유무를 체크하는 거다. 기기가 오작동하는데 원인이 모를 경우, 양품 부품을 순서대로 교체해보면 어떤 부품이 문제인지 찾을 수 있다.

화면이 안 켜지면 그래픽카드 불량을 의심한다. 이럴 때 그래픽카드를 바꿔보면 안다. 그래픽카드를 바꿔도 화면이 안 켜지면 RAM을 교체해 본다. 이때 화면이 켜지면 RAM 불량인 거다.

계측 검사장비가 없는 우리 입장에선 이 2가지 방법으로 초기 불량을 잡을 수 있다는 걸 짧지만 조리있게 설명했고, 이 2가지 테스트가 가능한 프로토콜을 정하고 있고, 다양한 테스트용 부품을 보유하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보여주었다.


당시 칠판에 이렇게 써두었다. 우선순위 1번이 공장등록이었다.

셋째, 안전과 폐기물 처리에 대한 내용이다. 전기안전, 소화기유무, 방화수, 방화사 등 학교 다닐 때나 군대에서 경험했던 것을 실내에 적용하면 된다. 다행히 우리는 물난리를 겪다보니 그런 게 잘 준비되어 있었다. 또 하나 다행히 우리는 산업폐기물이 나오지 않는 업종이다. 대부분 포장물이라 분리수거만 잘 하면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실사를 잘 받았고, 담당 공무원은 며칠 후에 세무서로 오라고 안내해주고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실사 잘못 받아서 제조업 업태 추가에 실패한 사례도 있었다. 이 때문에 우리 거래처들이 전자상가 내에서 제조를 맡아 줄  협력업체를 찾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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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제조업을 시작하게 되며 동네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고 했는데, 대로변에서 상하차하는 작업 덕분이다. 상하차 퍼포먼스가 "여기 컴퓨터 업체 있소"를 강렬히 알린 것도 있지만 사실은 입소문을 만들어 줄만한 토박이 주민들에게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첫째, 우리 업종과 공생을 원하는 소상공인이다. 바로 인쇄업체다. 컴퓨터가 멈추면 일이 멈추기 때문이다. 이분들의 신뢰를 얻는데 1년여 시간이 걸렸다. 알고 보면 이유가 매우 심플한데... 업종 자체가 저작권 시비에 걸리기 때문이다. 이 시기부터 저작권 법이 강화되면서 대학교재도 함부로 복사하면 문제가 된다. 이분들의 컴퓨터를 열어보면 복사물의 PDF가 많이 들어있다. 이걸 누가 찌르면 끝이다. 그러니 입이 무거운 협업자가 필요하다. 가장 좋은 건 공동의 생태계로 묶이는 거다. 입이 무거워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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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복잡한 인쇄기, 출력기, 복합기의 드라이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인쇄기 업체들이 컴퓨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가 많다. 반대로 컴퓨터수리 업체가 인쇄기를 모른다. 여기에 네트워크까지 겹치면 3개 업체 다 불러도 해결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일을 멈추는 만큼 손해가 나고, 손님들이 경쟁업체로 가기 때문에 난감한 정도가 아니다. 인쇄업체 입장에선 큰 거래처가, 일을 잠시 멈춘 이 순간에 옆 가게로 거래선을 바꾸는 경우도 생긴다.

다행히 우리 업체는 여러 명이 복잡하게 일한다. 한 명은 통신업체에서 일하다 와서 잘 모르면 통신업체 시절 선배에게 물어보면 된다. 컴퓨터 트러블을 잘 처리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어찌어찌 잘 해결을 해냈다.

무엇보다 가까우니까 좋은 점이 인쇄업체 기술자가 오는 날 우리를 불러서 협의하게 해서 문제점을 함께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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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루션은 존재하지만, 솔루션 구성이 어려운 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까지가 어려운 거다. 상하차 퍼포먼스가 반복되니 "저 집이 컴퓨터 잘하나 보다"가 되었고, 그제서야 한 번 와보라고 부른 거다.

마침 그 기회에 우리가 실력발휘를 했으니... 문제 해결이 된 것을 확인한 후 인쇄소 사장님이 주변에 우리를 칭찬하며 여기저기 알려주시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이 동네 토박이, 특히 건물주들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지나다가 내려와 보고 가시는 분들이 늘어났다.

물론 이게 매출로 바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그분들은 동네에 없던 '공장 구경'을 오신 거라.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큰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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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폐지 줍는 할머니들이다. 원부자재 박스와 플라스틱이 계속 나오니 이걸 탐내는 할머니들이 직접 찾아오셨다. 청소를 대신 해줄 테니 자기에게 다 넘기라는 이야기다. 너무 죄송하고 부담스런 말씀이지만 이런 소소한 것 하나가 주민과의 소통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일이 바쁘고 힘들 때 할머니들이 오셔서 원부자재 박스를 분리해 가져가 주시는 건 일을 덜어주셔서 감사한 것도 있지만, 누군가 우리의 일을 좋아해주고 응원해 주는 것이라 너무 기뻤다. 그리고 우리의 일이 자활 일자리로 연결되는 것 같아 뭔가를 더 잘해보고 싶었다.

(나중에 고물상이 직접 찾아오게 된 건 또 다른 이야기. 덕택에 고철과 폐지 시세를 알기까지 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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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임가공 제조업무가 몇 사이클 돌고 나니 일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일을 주던 업체가 일을 키운 거다. 처음에는 PC방 납품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신규 PC브랜드를 론칭했다. 한 술 더 떠 소비트렌드가 데스크탑에서 노트북으로 바뀐다며 노트북을 선보이게 된 거다. 처음 몇 차례는 지하 매장에서 진행했지만 애로사항이 발생했다.

노트북은 반제품을 완제화하는 형태로 임가공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니 콘테이너 베이스로 물량이 움직이게 되었다. 15평 정도에 사무공간, 고장수리공간까지 있는 우리 지하매장에선 감당할 수 없었다. 남양주시 넘어가는 곳에 콘테이너 창고를 빌려 해소했으나, 거기까지 오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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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보안이 중요해졌다. 사람 눈이 많이 쏠리는 숙대 앞이 곤란해진 거다. 구매자 입장에선 손에 쥔 결과물은 똑같지만, 비싼 돈을 주고 사는 제품이 동네 작은 공장에서 출고되었다고 하면 실망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정보의 통제와 보안을 위해 장소를 옮겨야 했다.

원청으로부터 그런 압박을 받기도 했지만 뭔가 새로운 기회를 억지로라도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가까우면서도 공업에 적합한 곳을 찾았다. 그 장소가 바로 청파동1가였다.

숙대에서 내려와 청파로까지 가서 서부역 방면 북쪽으로 올라가면 오래된 철공소 거리가 있다. 그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아주 오래된 건물이 2동 있는데 좌측은 세산빌딩, 우측은 대산빌딩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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