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준식 Jun 21. 2024

청파동1가는 또 다른 세계

[MyBizStory(21)] 숙대 앞 PC미션 창업기 9편

대산빌딩 시절 이야기를 기록하기에 앞서 당시 많은 도움 주셨던 거래업체 담당자와 오늘 연락이 닿았다. 너무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어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할 지 모르는 채 벅찬 감정만 서로 나누고 통화를 마쳤다.

왜 그 당시엔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까? 변변한 사진조차 없었을까? 싸이월드에 일부 남아있었는데 계정을 살려놓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 - - -

거래업체 담당자라고 언급했지만, 쏭대리님이라 부를 때부터 시작해 쏭과장, 쏭부장, 쏭이사님이라 부르며 꽤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사외동지이자 장사 선배였다. 나를 알아주고 우리를 알아주고 서로를 응원했던 애증의 관계였는데... 용산베어즈 형님곰, 동생곰하면서 소주잔을 기울인 날도 많았다.

다시 만나 추억을 나누며 기억을 더 되살리게 되면 그 형님과의 에피소드들도 기록으로 남겨보리라...

- - - -

대산빌딩 시절 이야기와 그 형님이 오버랩된 건, 대산빌딩 환경을 그 형님이 딱 한 마디의 말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여기 일제시대 고등계 형사가 독립투사 잡아다 고문하던 건물 같아"

"뭐 이런 데를 얻었냐? 너 답다, 너 다워!"     

그때는 웃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아 맞다. 너 있던 건물 그거 유명하더라 신문에도 기사가 나고 TV에서도 본 거 같아"

얼마 전 어떤 사람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놀라는 내 모습을 보며

"너니까 일부러 그런 데 들어간 줄 알았지..." 

대산빌딩은 1938년에 건축된 건물이었다. 철거 앞두고 보존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나?

- - - -

지금에야 도시재생이라는 개념은 물론, 근대건축물의 가치, 기록과 아카이빙의 중요성이

보편적인 사고로 자리 잡고 있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의 나 자신이 장소성과 로컬리티, 아카이빙에 대해 고민하고 교육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소소한 경험이 겹쳐 그렇게 된 지도 모르겠다.

- - - -

여튼 당시 대산빌딩은 벼룩시장을 보고 찾았다. 탁 까놓고 보증금 300만원, 월세 30만원짜리 저렴한 사무실을 찾겠다는 결심이 이런 곳을 찾게 했다. 벼룩시장을 보고 전화하니 관리인이라며 아주머님이 전화를 받으셨다. 그때 통화내용 중 이 말이 생각난다.

"주유소 옆 건물이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옆에 세산빌딩이 있는데, 건물주가 같은 분이니  세산빌딩의 빈 사무실이 맘에 들면 거기에 입주해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네이버지도 거리뷰 2010년 3월 버전. 이게 가장 오래된 거리뷰다. 우리가 대산빌딩에 머물렀을 때는 삼일교회 C관이 건립되기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네이버 거리뷰 캡쳐)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주소 청파동1가 183번지... 당시 우리 매장에서 자주 가보지 못했던 곳이다. 사무실을 얻지 못하더라도 동네 탐방을 해보고 오겠다는 생각으로 찾아가 보기로 했다.

숙명여대입구 사거리까지 내려가 서울역 서부역 방면으로 방향을 돌리면 갈월동 지하차도 옆으로 철공소들이 주루룩 자리잡고 있다.

- - - -

도로는 넓지만 동네 분위기가 애매한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기사식당 상권이 발달해 있었다. 숙명여대입구 사거리 기준 북쪽 청파동주민센터 부근의 약 50미터~100미터 구간은 기사식당 최적의 입지를 지닌 곳이다.

이 길은 광화문-시청-서울역 등 도심권을 빠져나와 바로 연결되면서 용산-원효대교-여의도로 넘어가기 좋다. 차를 대놓고 밥 먹고 잠시 쉼을 누리면서도 다음 영업이 가능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으니 택시기사, 용달기사들에게는 고갯길 넘기 전 주막 같은 곳이다.

- - - -

기사식당 거리는 대부분 부심권 바깥 외곽에 존재하는데 상권 확장, 아파트 신축 등으로 이런 공간이 점점 사라지던 중이었다. 연남동도 그런 장소였는데, 이제는 택시기사가 찾는 기사식당을 볼 수 없다. (맛집으로 소문나 관광객들이 몰리는 기사식당은 이름만 기사식당일 뿐, 택시기사가 이용하기엔 여러모로 불리하다.) 테헤란로 외곽에도 종합운동장역 근처에 일부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 - - -

만약 사거리 북측이 발달된 상가였다면, 붐비는 인파와 교통정체, 주차문제 등으로 기사식당 거리가 형성되지 못했을 거다. 참 재밌게도 사거리 남측부터는 남영역과 전자상가를 앞두고 교통 정체가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대학상권은 반쪽장사 하는 곳이라고 소상공인에게는 사지나 다름없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장소라서 기회를 얻는 곳도 있다. 역시 비즈니스의 세계는 넓고 깊다. 함부로 단언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 - - -

여튼 주유소가 어디있나 두리번거리며 걷다보니 청파동 삼거리까지 오게 되었다. 대산빌딩을 찾아보니 딱 봐도 엄청 낡은 건물이었다. 저렴할 수밖에 없다고 여겼고, 저렴하다는 감을 잡은 건 1층에 '리사이클링 시티'라는 창고형 중고물품 가게가 있는 걸 봤기 때문이다. 이 가게의 존재가 증거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네이버 거리뷰 2010년 3월 버전. 좀 더 잘 보이게 열심히 이리저리 돌려보았으나 이게 가장 최적의 장면이다. (네이버 거리뷰 캡쳐)

처음에는 3층에 사무실을 얻었다. 평수는 12평이었던 것 같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다보니 의외로 넓었고 건물 구조 특성상 한쪽 벽이 빗면이라 다락방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바닥은 '도끼다시'라고 부르는 거였다. 시멘트 콘크리트에 작은 돌조각을 박고 반짝거리는 격자형 놋쇠 테두리가 찍혀있었다. 시공 당시 표면처리 덕에 반들거리는 것도 있겠지만 오랜 세월 탓에 자연스럽게 닳아 미끄러지듯 반들거리는 정도였다.

- - - -

창문은 이중창은 사치로 여겨질 정도로 매우 얇은 구조였으며, 유리도 얇았다. 동네가 조용해 방음의 필요성은 없었지만, 유리창 떨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건물 벽이 두꺼워 열이 안까지 침투하지 않아 환기만 잘 시켜도 여름을 보낼 만 했다. 다만 겨울엔 손발이 시려울 정도로 찬 바람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 - - -

압권은 화장실이었다. 수세식이긴 했지만 믿어지지 않았다. 머리 위에 수조를 설치하는 식이다. 쪼그려 앉은 후 줄을 당겨 물을 내릴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 이제 와 생각하면 1938년 건물이다. 어쩌면 수세식이 아니었던 걸 억지로 수세식으로 개조한 걸 수도 있겠다는 추측 아닌 추측을 해본다.

- - - -

대산빌딩에 입주한 것은 저렴한 임대료 외에도 다른 2가지 이유가 있어서다.

우선 가변적인 공간 운영 때문이다. 빈 사무실이 많아 살림형편에 맞춰 건물 안에서 사무실을 옮길 수 있고, 일이 잘 될 경우에는 사무실을 늘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마지막으로 관리인 여사님 덕분이다. 왠지 이분의 느낌이 좋았다. 어머니같은 푸근함이 있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실 것 같았다. 실제로 우리를 마주치면 힘이 되는 말을 건네셨고 틈틈이 잘 되라고 기도해 주셨다.

- - - -

1층의 리사이클 시티에서 저렴하게 집기와 비품을 구매해 청파동2가 63번지와는 다른 공간을 꾸몄다. 멤버들은 편의상 이곳을 '본부'라고 불렀다. 어찌보면 귀찮은 존재인 나를 이곳에 가두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그간 내가 주장해왔던 업종 다변화를 시도하는 전략적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던 거다.

- - - -

그런데 갑자기 2층의 큰 사무실이 나갔다. 슬쩍 들여다보니 20평이 조금 넘는 공간이다. 탐이 났다. 임대료 차이도 10만원 정도다. 본문에서 사무실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엄밀히 말해 우리가 원한 건 사무실만이 아니다. 이곳에 목적은 원래 노트북 임가공 업무를 효율화하기 위함이다. 20피트 콘테이너 분량은 아니라도 그에 준하는 창고공간 역할을 하면서 노트북 조립 생산이 가능해야 한다. 

3층에서 2층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보안회사와 계약을 맺고 보안 공사를 하고 남양주시 콘테이너 창고에 있던 반제품을 모두 옮겨와 본격적인 대산빌딩 시대를 열었다.


사진의 가장 왼 편 6차선 도로가 청파로. 삼각형의 흰 피라미드와 연결된 붉은 벽돌건물이 대산빌딩. 굴뚝이었다는데 5층건물로 개조해 사용했다.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여기서 노트북을 출고하기도 했지만 몇 가지 실험창업에 도전했다. 기억나는 건 2가지 뿐이다. 

인터넷 쇼핑몰을 해보겠다며 아이템을 찾는 과정에서 목도리, 장갑, 모자 등 편직제품을 취급해볼 기회가 있었다. 연구 끝에 오픈마켓에 '로스트 애비뉴'라는 브랜드를 론칭하기로 하고 우선 100% 울로 만든 목도리를 판매했다.

- - - -

문제는 제품의 품질이 너무 뛰어나 발생했다. 공장에서 생산한 건데, 감쪽같을 정도로 수제 느낌이 나는 바람에 뜻밖의 고객들이 구매했다.

설명하자면 사람 키 정도로 긴 목도리인데 이 시기 겨울 제품들의 특징은 짧은 길이였다. 겨울이 따뜻해진 이유도 있지만, 월드컵 이후 소비력이 왕성해지던 참이었다. 흔히들 여성의 치마길이로 경기를 진단하지 않던가? 실제로 이듬해 원더걸스, 소녀시대의 등장으로 초미니 스커트가 대유행하기도 했지만, 지금에 비하면 경기가 활황인 시절이었다.

- - - -

겨울 제품의 길이가 짧아진 건 다른 숨겨진 이유도 2가지 있었다. 원자재 가격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중국 내수시장의 성장으로 중국산 울의 가격이 올랐고, 인건비도 올랐다. 다음으로 IMF 때부터 공장과 장비들이 중국으로 넘어갔는데 그러다보니 편직집들이 줄었고, 편직기도 부족했다. 

앙고라80이라 부르던 실이 있는데, 이게 한 때 우리나라 수출산업을 책임지던 거였다. 당시 앙고라80 편직기를 가진 공장이 국내에 없다는 소문도 들었다. 생산현장이 처한 이 2가지 때문에 디자이너들이 길이를 짧게 한 제품을 기획했다.

- - - -

이런 판국이니 사람 키 정도 되는 목도리는 시중에서 볼 수 없는 판국이었다. 광고비 지출이 없어 노출이 안 되는 우리 제품을 구매한 고객의 요청사항은 너무 애절했다. 남자친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목도리를 떠주기로 했는데, 실력이 모자라 망쳤다며 크리스마스 전까지 자신에게 떠서 보내줄 수 있냐는 사연이다.

깜짝 놀란 우리는 상품상세페이지를 점검했다. 수제품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이라고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사진의 품질이 좋지 않아 공산품이라는 느낌을 주지 못했던 거다. 그러니 수제라 착각할 수밖에...

- - - -

여튼 그 고객에게는 무사히 제품을 배송했고, 손편지로 정성껏 사과문을 썼다. 수제가 아니라 공장제라 죄송하다고... 포장이라도 잘 하셔서 남자친구와 헤어지지 마시라고...

들어온 주문은 몇 건 안 되지만 이상하게도 비슷한 느낌의 소비자들이 구매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성공에 가까운 실패로 보고 제품판매를 중단했다. 어차피 겨울도 곧 끝날 것 같았고, 남은 재고는 거래처를 돌며 선물로 뿌리면 모두 소모될 양이라서다.

- - - -

다음으로 시도했던 실험창업은 상품콘텐츠 제작이었다. 상품소싱한다고 다니다 약술화장품을 알게 되었다. 약술화장품은 전통 기법 화장품인데, 약초로 담은 술을 화장품의 원료로 쓰는 거다.

교류하고 있던 업체가 어떤 명인의 약술화장품을 온라인유통하고 싶어했는데, 실험삼아 우리에게 상품콘텐츠를 의뢰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우리 공간이 넓다보니 공간이 우리를 일하게 했다.

한쪽에 임시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각종 소품을 구입해 세트를 연출했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밤을 새가며 상품촬영을 마쳤다. 원고 작업과 디자인 작업까지 마무리해 아주 고급스런 상품상세페이지를 완성했다. 

덕택에 교류하던 업체와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는데 너무 관계가 좋아 우리 멤버가 그쪽으로 넘어가게 될 정도였다.

To be Continued

- - - -  

#MyBizStory #상권 #입지 #기사식당 #OEM #제조업 #공장 #청파동 #대산빌딩           



[대산빌딩에 대한 참고 기사들]


1. 서울역사아카이브 아티클

https://museum.seoul.go.kr/archive/archiveNew/NR_archiveList.do?ctgryId=CTGRY365&subCtgryId=CTGRY368&searchVal=대산빌딩&upperNodeId=&currentPage=1&type=A&fileSn=&fileId=    


2. 서울신문 기사

https://www.seoul.co.kr/news/plan/seoulgrand/2019/11/28/20191128019002?fbclid=IwZXh0bgNhZW0CMTAAAR3FGBrg74Ugnzz1UxdJOEGweXBMiQPzoJsEMn7d8U2RTyH4PJ_h3NEspT8_aem_ZmFrZWR1bW15MTZieXRlcw     


3. 사라지고 있는 100년된 철공소(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udioguy1&logNo=222074646929&parentCategoryNo=&categoryNo=36&viewDate=&isShowPopularPosts=true&from=search     


4. 서울도시산책-청파동1편(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audioguy1/221607793960




매거진의 이전글 제조업 등록 후 임가공 사업을 시작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