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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식 Jun 27. 2024

창업과 폐업 사이의 고뇌

[MyBizStory(22)] 숙대 앞 PC미션 창업기 10편

9회 이후 또 여기저기 다녀오느라 10회가 늦어졌다. 이변이 없다면 12회에서 종료될 듯하다. 꾸준히 읽으신 페친 여러분들께선 지금까지의 이야기 속에서 어떤 내용을 건지셨을까 궁금하다. 물론 내 나름의 결론도 남길 예정이다. 12회 마지막 부분이나 12회 이후의 별도 편을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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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의 창업기는 강의로 몇 차례 전할 기회가 있었다. 2014년 전후인데, 어림잡아 200명 가량일 듯하다. 창업을 준비중인 분들에겐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튀어나왔고, 기창업자의 경우 자신의 업종과 비교하면 정말 생소한 업종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일을 돌아볼 수 있었다. 재밌게 들으셨다. 망한 창업 이야기지만 사실 소상공인 입장에선 우수 사례로 삼을만한 것들이 많다. 그만큼 눈물겨운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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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동업한 내 동생은 매출이 부진할 때면 매출이 발생할 때까지 밥을 먹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기우제를 지내듯 간절한 마음으로 금식노동했다. 나 또한 어딘가에서 처분하지 못한,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초코파이를 방치해둔 걸 실어와 쌓아놓고 점심 대신 먹기도 했다. 같이 일하던 동료가 곰팡이 핀 걸 발견하고 이런 걸 먹고 있다며 슬퍼하며 버리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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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부진할 때는 매일의 매출을 쪼개 1만원은 LPG를 넣고, 1만원은 동료에게 밥을 사주고, 1만원은 카드사에 입금하고... 

빚에 쪼들리며 매일같이 추심을 받던 시절이었는데 한 번은 "지금 장난합니까? 만원이 돈이에요?"라고 호통을 치는 거다. 나도 모르게 무감각한 목소리로 "만원도 돈이죠. 생각보다 큰 돈이에요. 저 어제 3만원 벌어서 만원은 가스 넣고, 만원은 직원이랑 밥 사먹고, 남은 돈 다 입금한 거에요. 장난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백만원같은 만원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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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지 모르나 기업을 일으키기 위해 함께 고생해 준 원년멤버들은 지금 모두 잘 지내고 있다. 각자의 길로 가야 했지만 각자의 길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전문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다. 나만 제자리걸음 걷는 느낌이지만, 어찌보면 각자의 역할대로인지 모른다. 이들은 경험에서 앞서 나가고 나는 경험을 기록하는게 원래부터 주어진 역할인지 모르겠다.

용산전자상가 내 업체 방문 중 찍힌 사진. 누가 찍어줬는지 모르겠지만 얼마 안 남아있는 그 시절의 사진이다. 셔츠 안쪽에 보이는 주황색 티셔츠는 우리 매장 단체 티셔츠였다.


같이 일하는 후배 L군이 사준 구두다. 마음이 고마워서 열심히 뛰어다녔다. 몇 번 고쳐 신기도 했지만, 결국 구두가 너무 너덜너덜해져서 버려야만 했다.


심야라 그런지 갑자기 감상적인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었다.

다시 강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내가 나의 창업기를 강의로 풀어낸 건 출판창업 과정에서 몇 번, 상권강좌에서 한 번, 소상공인 서비스 강의로 한 번 정도다. 청중의 호응이 가장 높았던 건 서비스 강의였다. 특히 서비스 프로세스로, 미수금 제로를 만든 에피소드에선 박수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출판창업 강의에서 호응도가 높았던 건 이종 비즈니스의 경험담이 두뇌를 환기시키는 효과가 있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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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뜻밖의 결론이 난 건 상권강좌에서였다. 강사가 빵꾸나서 갑자기 의뢰를 받은 경우였다. 나를 강사로 세운 분이 그날 무슨 판단을 했는지 모르겠다만 "너라면~"이라고 등을 밀어주셨다.

원래는 가지고 있던 서적을 정리해 강의안을 구성하고 강의를 시작했지만, 어느 틈엔가 나의 경험담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그 이야기를 더 해달라고 하여 2시간의 강의 시간 중 상당한 시간을 경험담을 전하는데 할애했다. 나의 사례가 보편적인 창업아이템과는 다르지만 상권과 입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즉석 요청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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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후 수강생들과 10분 정도 잡담을 나누게 되었는데 조금 슬픈 사연이랄까... "여기저기 창업강의 찾아다니며 이것저것 들었는데, 직접 장사를 해보고 상권 이야기하는 강사는 처음이다"가 대부분의 피드백이었다. 대체로 부동산 전문가나 프랜차이즈 업체 상권담당자분들이 강의를 맡기에 체계적인 지식을 전달받긴 하지만, 실제로 그게 어떻게 적용되는지 궁금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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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지금과 달랐다. 백종원이 마리텔로 대중에게 노출된 게 2015년이다. 유튜브를 통한 콘텐츠 비즈니스도 지금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었다. 그러니 직접 체험한 경험담을 듣기란 쉽지 않았다.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하는 사장님들은 강의를 하러 다닐 시간이 없었다. 강의 시간은 뺄 수 있지만, 학습목표와 학습계획에 맞춰 강의안을 준비하는 게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강사로 오는 분들은 성공사례를 수집·분석한 컨설턴트 집단 중에서 섭외된다. 문제는 이분들은 지식 비즈니스를 하는 분들이지, 실제 매장을 운영하는 분들이 아니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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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까지 서술해 오면서 숙대 상권 내에서 간접경험한 것들은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자칫 청파동 토박이들을 욕보이게 되거나 숙대 상권을 오랫동안 지켜온 상인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다. 그런 적나라한 모습까지 드러내면 읽는 재미는 물론, 실전 창업 지침이 될 거다. (당시 오프 강의에선 낱낱이 이야기했다. 스마트폰 가진 사람도 적었고, 녹음기능도 없어서 갈 데까지 가봤다.)

그러나 나 나름대로 숙대상권에 애착이 많았고, 청파동을 사랑했고, 거기서 울고 웃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주민들, 상인들, 학생들이 너무 좋았다. 다만 4년간의 분투 끝에 패배하고 떠나야했던 뼈아픈 추억이 트라우마가 되어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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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연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연재 첫 회에서 상권 이야기가 주제인 것처럼 시작했는데, 페친 여러분 입장에선 연재가 거듭될 수록 상권 이야기보다는 고생담과 극복담으로 변경된 것처럼 느껴지셨을 거다. 그러나 나는 꾸준히 상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고생담과 극복담을 펼친 이유는 비즈니스 전개 과정 속에서 비즈니스의 속성이 변화하고 있고, 변화에 따른 결과물로서 새롭게 부여된 비즈니스의 속성이 점포의 정체성으로 나타남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마켓플레이스 비즈니스 이야기, 전자상가 이야기도 자세히 전했다. 정직하게 경험담 위주로 이야기하려니 힘이 드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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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되새기자면, 상권의 정지성 이야기를 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반쪽장사하게 되는 대학상권, 흩어지는 상권과 모이는 상권, 점포에 접근하는 동선 따라 재설정되는 상권, 서비스업일 때, 제조업일 때 상권과 입지는 어떻게 바뀌나, 불리한 입지이기 때문에 오히려 기회를 얻는 점포들 등등. 점포 중심의 창업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나의 경험담 속에서 인사이트를 얻을 기회를 제공했다.



오늘도 창업을 결심한 분과 폐업을 결심한 분을 만나 서로의 사연을 나누며 함께 기뻐하고 슬퍼해드릴 수 있었다. 기뻐한다고 해서 무조건 기쁜 게 아니고, 슬퍼한다고 해서 무조건 슬픈 게 아니다. 모든 비즈니스는 도입기-성장기-성숙기-쇠퇴기가 있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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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 아이템이라 생각해도 그 아이템의 성숙기에 진입하면 곧 쇠퇴기를 맞는다. 도입기에 진입하면 죽도록 고생만하고 성장기를 타지 못하고 망할 수 있다. 남들이 말리는 아이템이지만, 매우 긴 성숙기를 지닌 아이템이라 큰 재미를 보지는 못하지만, 소소하게 롱런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템과 창업자간의 상성에 따라 흥망성쇄가 달라지기도 한다. 같은 비즈니스를 하는 것 같지만 모든 비즈니스는 서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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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몽키스 돈까스에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가 사장님과 의기투합해 창업에 대한 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자세한 건 조만간 인터뷰 기사로 풀어낼 예정) 서울 광화문에서 돈까스집을 창업했다. 처음 창업할 때 같은 건물 내에 4개의 돈까스집이 있었고, 자신이 그 건물을 떠날 때 즈음엔 12개의 돈까스집이 생겼다고 했다.

그럼에도 강단있게 창업했고, 잘 버텨낼 수 있었던 건 모든 돈까스집의 돈까스가 동일할 수 없다는 것 하나였다. 어떤 돈육을 쓰냐, 어떤 소스를 쓰냐, 하다못해 플레이팅 방식에 따라 다른 맛과 분위기가 나오기 때문에 나만의 승부처가 있을 거라는 강한 자기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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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광화문이라면 서울의 대표적인 도심이기 때문에 몽키스 사장님의 이야기가 그리 크게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몽키스 사장님의 이야기 속에서 동일한 돈까스라는 아이템에 도전한다 해도 모든 돈까스집이 다 다르다는 말엔 어느 정도 동의할 것이다.

예전에 보았던 일본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와 메모한 적이 있었다. "왜 너희들은 보기만 하고, 관찰하지 않는가?" 이를 좀 더 철학적인 말로 바꾸면 눈에 보인다고 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고, 안 보인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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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숙대 상권을 무대로 이런저런 시도를 했던 나의 경우도 그랬다. 경쟁업체가 하나도 없는 상권, 상주인구 1만, 출퇴근인구 1만, 유동인구 2만에 2차, 3차 배후지가 있는 풍요롭기만 해야 할 상권에 들어갔지만 고전을 면치 못했다.

임대료가 저렴한 지하에서 시작하다보니 제대로 노출되지 못했고, 자연재해 앞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제조업을 시작했고, 제조업 퍼포먼스가 서비스업을 촉진시켰다.

제조업이 본격화되자 제조업에 더 적절한 입지를 찾아 장소를 늘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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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택에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전문화냐 다원화냐 어떤 선택이 옳았을까? 당시엔 전문화가 옳았다. 이후의 이야기에선 그렇게 힘을 싣지 못했던 나의 실책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2024년 현재 시점에선 다원화가 정답이었다. 서브프라임을 계기로 업계의 상황이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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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망하지 않는 창업'의 비결은 해당 비즈니스의 도입기-성장기-성숙기-쇠퇴기를 간파하고 자신에게 있어 성장기-성숙기를 길게 지속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선택하거나, 비즈니스를 넘나들며 성장기-성숙기의 비즈니스를 선택해 지속가능한 시간을 늘려나가는 거다. 그런 면에서 다원화를 모색한 나는 전문화를 원한 동료들과는 달리 아직도 가늘고 길게 동일한 사업자등록증을 가지고 21년째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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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렇게 종반을 향한 빌드업을 완료했다. 이제 다음 회에서 대산빌딩 이야기로 잠시 돌아갔다가 숙대 앞 상권에서 경험한 4번째 장소와 5번째 장소의 이야기로 넘어가려 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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