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BizStory(23)] 숙대 앞 PC미션 창업기 11편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2가지 설명.
(1)이번 편에는 몇 장의 사진이 있다.
(2)많은 이야기 거리가 있는 11회지만 생략한다.
(3)첫번째 댓글의 링크를 참고바란다. (이 시절에 대한 유일한 회고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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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동1가 대산빌딩에서 여러가지 창업실험을 하는 동안에도 청파동2가 매장은 매장대로 돌아갔다. 장점과 단점 모두 있었는데, 공간을 다채롭게 이용할 수 있었고 할 수 있는 일의 종류가 늘어나 좋았던 반면, 공간 2군데를 유지해야 하는 데서 임대료, 공과금 등 고정비가 급증했다. 인원이 분산되니 우리들의 특장점인 단결력에서 출발하는 폭발적인 시너지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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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문제는 공동체 의식의 분열이다. 좋든 싫든 한 공간에 모이면 의식이 통합되는 효과가 있다. 이게 별거 아닌 거 같아도 서로의 얼굴 표정을 보고 지나가며 툭 하고 던지는 한 마디가 서로의 상태를 감지하게 하고 서로를 배려하게 한다. 물론 사이가 안 좋아지기도 하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소통의 과정이고 통합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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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청파동2가 매장과 청파동1가 본부는 걸어서 10분 거리다. 간단한 용무가 있어 오가더라도 30분의 시간이 소비된다. 이거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깨달은 건 이때부터 구성원들 서로 조금씩 마음의 거리가 멀어졌던 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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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청파동2가 매장의 임대차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갔다. 물난리를 겪으며 다짐한 것도 있고, 같이 일하는 동생들의 의견도 있고, 서로의 약속도 있고, 매장을 옮겨야 할 시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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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동1가로 합치는 방안을 말했지만, 다들 싫어했다. 그곳은 고객을 만날 가능성이 더 희박해진다. 하다못해 무료로 쓸 수 있는 주차장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매장 형태의 서비스를 진행하기엔 적절한 입지가 아니라고 다들 판단했다.
여러가지 일을 겪은 것도 있었지만, 아침 잠을 줄여가며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며 얻은 지식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견문이 넓어진 덕에 상권과 입지에 대한 감각이 높아진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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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숙대 앞에서 1층 점포가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매장에 적합한 점포 매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때 좋은 자리가 나왔다. 빈 점포의 정보를 가져온 게 누구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신한은행 골목 안쪽, 일흥건재 옆 효창장여관 1층 10평짜리 점포가 나왔다. 주소지는 청파동3가 114-3.
이 자리는 숙대생이나 동네 사람들 모두 '도서관 후문'이라 부르는 자리 맞은편이다. 청파동2가 매장은 '파리바게트 옆'으로 소개했는데, 그보다 더 강력한 장소성을 갖는 곳이다.
일전에 설명한 바와 같이 숙대생들은 공부를 좋아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장시간 상주하는 도서관 부근이라는 위치는 이들의 생활권에 다가간다는 거다. 게다가 점포 근처의 신한은행은 주민들도 많이 이용하는 장소라 우리 매장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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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물거리다가 이 기회를 놓칠까봐 건물주인 효창장여관 사장님을 찾아뵀다. 사장님은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셨는데, 한쪽 무릎 아래로 다리가 없어 거동이 불편하셨다. 조금 떨떠름한 첫 만남이었다. 말수가 많은 분이 아니셔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주로 음식 장사 하겠다는 아주머니들이 찾아오다보니 컴퓨터 수리점하는 남자 청년들이 낯설게 여겨지셨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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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80만원. 우리에겐 부담스런 금액이었지만, 1층 매장이 이 가격에 나온 건 드물었다. 사장님은 조금 츤데레 타입이셔서 깍쟁이처럼 받을 거 다 받을 것처럼 말을 걸어오시면서도 우리를 많이 배려해주셨다. 입주 후 갑자기 물값 1만원을 내라고 하셔서 투덜댔는데 알고 보니 이 또한 의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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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과 물을 쓰기 위해서는 여관 뒷문으로 오가야 했는데, 그런 우리를 지긋이 보시는 걸 좋아하셨다. 받을 거 받고, 줄 거 다 주는 셈인데 우리가 얻은 게 더 많았다. 우선 주차 공간을 확보해 주셨다. 여관 후문 쪽 공간을 정리해 차를 댈 수 있게 해주신 거다. 전엔 주차장이 없어서 출장 담당하던 후배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어라 출장만 돌았다. 가끔 잠시 대놨다가 딱지 끊는 일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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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공간이 된 청파동3가 매장은 청파동2가 매장의 인원과 청파동1가 본부의 인원이 힘과 지혜와 역량을 모두 모아 야심차게 오픈했다. 이때를 기해 CI와 BI개념을 과감히 도입했다. 뭘 제대로 알고 그런 건 아니지만 브랜드를 전개하는 실험과 실습을 한 셈이다.
우리가 직접 디자인하고 시공한 매장이 완성되는 날, 너무 기뻤다. 청파동2가 간판을 해주셨던 사장님이 청파동3가 간판 작업도 해주셨는데, 진심으로 기뻐하며 축하해 주셨다.
우리의 브랜드 전략은 CI 리뉴얼과 함께 신규 BI를 만들고 서비스 프로세스 정립, 포장물, 유니폼 등 유형적인 것 말고도 무형적인 것까지 확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우리를 벤치마크하러 오는 업체들도 있었다. 요즘 쓰는 표현으로라면 우리 업체로 선진지 탐방을 왔던 건데 많은 분들이 좌절하고 돌아갔고, 몇몇 기업들은 감탄하며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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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는 4번째 공간을 준비해야 했다. 우리에게 임가공 제조 업무를 위탁하고 싶은 업체가 늘어났는데, 이번엔 40피트 콘테이너 분량의 재고를 수용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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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청파동3가 매장 오픈 후 첫 달은 어마어마한 오픈 파워에 정신없이 일했다. 고객들이 계속해서 내방했고, 우리가 임가공 제조도 하고 있다 보니 조립PC 주문도 많았다. 사실 용산전자상가가 가까워서 전자상가에서 최저가 PC를 구입할만도 한데, 1년간 무상 고장수리를 해준다 하니 우리에게 10만원 마진을 인정해주고 유지보수의 번거로움을 덜고 싶은 심리가 통했다. 그런데 이런 오픈 파워는 1달로 끝났다. 그동안 꾹꾹 묵혀두었던 수요가 터진 거지 그게 일상은 아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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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해 컴퓨터및주변기기 분야는 계획구매 품목에 해당한다. 저렴한 것 하나를 구매하게 되더라도 가격을 비교하고 망설이게 된다. 충동구매 품목은 그렇지 않다. 맘에 들면 집어들게 되고, 터무니 없이 가격이 비싸도 사고 싶은 욕망에 따라 쉽게 돈을 지출한다. 그러다보니 여전히 매장 매출이 안정적이지 않았다. 임가공 제조업도 무시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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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동1가 본부 경험을 되새기며 청파동3가 매장 가까운 곳에서 4번째 공간을 찾았다. 다행히 가까운 곳이었다. 불과 200미터 거리에 좋은 장소가 있었다.(내 기억이 맞다면 107-25번지다.) 계단을 2번 내려가는 깊은 지하창고인데 주인 아주머니는 30평이라 했지만 실제로는 30평 이상의 공간이었고 지하 치고는 곰팡내도 안 나고 뽀송한 곳이었다. 보증금은 기억 안 나는데 월세는 40만원으로 저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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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사에서 반제품을 보내던 첫날은 난리도 아니었다. 이 좁은 골목길에 5톤 윙바디 트레일러가 들어와야 했다. 차를 돌려 넣을 방법이 없어서 신광여고 쪽에서부터 후진해서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골목길이 막혀 소동이 벌어졌다. 청파동 주민들은 순박해서 실랑이는 잠깐으로 그쳤고, 다른 골목길로 우회해서 차들이 통과했다. 구경나온 동네사람들이 교통정리를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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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동이 벌어지자 졸지에 나는 동네 유지 취급을 받게 되었다. 도서관 후문 앞에 번듯한 매장도 갖고 있지. 창고에는 트레일러 한 대 분의 재고가 있지. 안 보여서 어디 갔냐고 물어보면 동생들이 청파동1가 사무실에 있다 하지. 실제로는 내실은 없는 뻥튀기 스펙이다. 거래처 형님들이 이런 나를 보며 "어이! 윤대포!"라고 부를 정도였다. 까대기와 바라시 과정에서 종이박스와 재활용품이 많이 나오다보니 정기적으로 들르는 고물 사장님도 있었는데, 자기가 거래하는 고물상 딸과 중매를 서겠다는 둥 이런저런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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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선진지 탐방 어쩌구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컴퓨터수리점 전성시대가 끝나는 시점이라 업체들끼리 합종연횡, 이합집산을 하던 시기였다. 그들 입장에선 나는 굉장히 큰 업체(?)였기에
여기저기 모임도 많이 불려나갔다. 재밌는 일도 있었지만 대개 끝이 안 좋았다. 소상공인들의 특성상 이해관계가 얽히면 쉽게 불신하고, 상처받고, 분열된다. 하는 일이 다 같아 보여도 도시별, 지역적 개성이 강했다. 이 도시에서 통하는 영업방법이 다른 도시에선 씨알도 안 먹혔다.
그런 가운데 서브프라임 사태가 닥쳤다. 심각한 위기가 왔다. 매장과 창고(겸 공장) 모두 급박하게 돌아갔다. 다행히 청파동1가의 사무실은 일찌감치 정리해 창고로 합친 상태라 조금 위안이 되었지만, 매출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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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사태로 단박에 어려움이 오진 않았지만 환율이 치솟으면서 수입물가가 너무 올랐다. 수입에 의존하는 품목은 1.2~2.2배까지 가격이 올랐다. 서민 생계를 좌우하는 수입농산물 가격이 오르니 하나씩 다 올랐다. 우유값, 과자값, 빵값, 식당 밥값 모두 올랐다. 사회 전체적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었다. 필수적인 것 위주로만 돈을 쓰니 컴퓨터를 새로 사는 사람은 없었고, 고장수리도 안 했다. 감수할 수 있는 불편함이면 불편한 대로 쓴다는 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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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들여오는 부품에 의존하는 컴퓨터 가격은 급상승할 수밖에 없어 소비자로부터 외면 받았다. 수입물량 자체가 줄어드니 구할 수 없는 부품들도 있었다. 메모리는 2배 가까이 가격이 올랐고, 하드디스크는 1.5배 가량, 그나마 CPU는 수입 총판들이 손해를 감수해 1.2~1.5배 인상에 그쳤다. 고성능 그래픽카드는 사치품 취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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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니 임가공을 의뢰하던 업체들도 업무 정지 상태에 들어갔다. 우리에겐 못할 짓이지만 디마케팅에 들어간 거다. 확보된 재고를 최대한 지키며 브랜드 이미지만 소비자의 마음 속에 심는 영업을 했다. 반제품 재고를 떠안은 내 입장에선 임대료 생돈만 나가고, 언제라도 오더가 들어오면 생산이 가능하도록 상주 노동력을 배치해야 하니 죽을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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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도 밀리고, 임대료도 밀렸다. 통신료도 못냈고, 부가세도 못냈다. 마지막 재고를 빼고, 포장재와 예비 부품을 수입사에 반납하고 나니 비로소 창고 공간이 정리되었다. 주인집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철수했다. 다행히 저렴한 임대료 덕에 다른 업체가 신속하게 들어와 주었다. 집기를 처분해야 했으나 주인 아주머니가 눈치껏 새로 들어오는 업체에게 넘겨주셔서 필요한 물건만 들고 나왔다. 좁은 매장에 모든 것을 몰아넣고 나니 답답하기도 했고, 마음이 너무 괴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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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경이 되기까지 별별 일을 다했다. 출장 업무를 전담했던 후배는 노트북과 특수PC 수리를 하던 협력업체에 파견형태로 보내 그쪽에서 월급을 받게 했다. 멤버 일부는 내가 영업해 온 CCTV와 보안회선 시공 일을 하러 갔다. 마침 거래처에서 어느 공기업의 스마트업무 시스템 하청을 했는데 시공팀이 태부족이던 상황이었다. 갑-을-병-정 계약의 정이라 보수도 박했고, 결제도 느렸다. 그래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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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에서도 뭔가를 해야 했다. 한 번은 중고부품 세척 하청 업무도 했다.
폐업한 회사가 많다 보니 이런 회사의 사무용 컴퓨터를 매입하는 업체들이 있었는데, 주로 제3세계 국가에 수출하기도 했지만 이걸 낱낱이 분해해 재판매하며 부가가치를 높였다. 아무리 경기가 안 좋아도 조립PC 업체는 여전히 최저가 경쟁으로 소비자를 확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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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를 눈속임해서라도 자사제품을 노출시키기 위한 경쟁이 중고부품을 탑재한 PC를 출시하게 했다. 예를 들면 '초고속 48배속 CD-ROM 탑재'라 하면 지식이 부족한 소비자는 깜빡 넘어간다. 48배속이라면 상당한 구형인데, 이 즈음 DVD콤보가 16배속이다보니 이보다 3배 빠른 ODD라고 착각한다.
또 스펙쉬트에 메모리 512메가라고 하고 256메가 메모리 2개를 끼워 출고한다. 원래라면 512메모리 싱글 구성을 해야 추후 메모리 업그레이드가 가능한데, 구형 PC에서 뺀 256메가 2개를 달아 단가를 맞추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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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기 위해선 제조사 표시가 방해물이다. 우리가 했던 일 중 하나가 컴퓨터 부품을 독한 약품으로 세척해 그런 표시를 지우는 일이었다. 개당 200원을 받았다. 약품의 냄새와 독기 때문에 눈물이 절로 났다. 어쩌면 괴롭고 슬퍼서 눈물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는 사이 매장 임대차 계약기간 2년이 만료되었다.숙대 앞 상권을 떠날 때가 된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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