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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식 Jul 08. 2024

더 작은 비즈니스를 위해... 항아리형 상권을 찾아라!

[MyBizStory(24)] 숙대 앞 PC미션 창업기 12편

더 작은 비즈니스를 위해... 항아리형 상권을 찾아라!

사실 지난 회인 11편은 무려 2년 간의 일을 담았다. 실패담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고생담만 늘어놓은 셈이지만, 즐거운 일도 많았다. 청파동3가의 매장 위치는 주민과 함께하는 자리였다. 숙대 도서관과 신한은행이 학생들과 주민들을 끌어모았고, 오르막의 정점이라 여기서부터 걸어 내려가며 거미줄같은 골목길로 이어졌다. 우리 점포가 이 동네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가게라는 걸 느낀 건 2가지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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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우리가 밤 늦게까지 일할수록 주민들(특히 여학생들)이 안심하고 밤길을 걸을 수 있었다. 아무 용무 없지만 그냥 들르셔서 "여기 불이 켜져 있어 너무 좋다"는 동네 어머님들 말씀에 힘이 났다. 살짝, 잠깐이지만 마을방범대라도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나중엔 컴퓨터 수리를 하러 와서 고민거리를 토로하는 이웃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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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동네 사장님들과 교류하며 '장사'의 깊은 맛을 볼 수 있었다. 수십 개의 동종 업체 속에서 살아남으려 분투하는 사장님, 작은 가게로 시작해 20년 영업하며 자산과 터전을 일군 사장님,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 하나로 시작해 가족 3명 모두가 3개의 가게 사장이 된 이야기, 고생고생 7전8기 대박 낸 사장님 등 수년 간 골목에서 버티고 나니 동네 전체가 창업 교과서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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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따져보면 우리도 정이 많이 들었지만, 이웃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곳에서 더 버티지 못했던 건 뭘까? 서브프라임 사태와 맞선다고 꽤 오랜 시간과 버티다가 많이 지치고 심하게 상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새롭게 시작할 방법은 많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숙대도서관 정문 앞 예전 가게 자리에 있는 편의점이다. 처음 개설된 편의점은 GS25였던 걸로 기억한다.  (네이버 거리뷰 캡쳐)


우리가 이곳을 그만둘 때 부동산 중개사 사무소를 끼고 편의점이 들어오기로 되었다. 마침 다른 데서 오신 부동산 사장님이 오셔서 지금이라도 편의점 해볼 생각 없냐고 차분히 물어보셨는데, 뭔가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제서야 우리가 여기서 편의점업을 했어도 됐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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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할지, 어떻게 생존할지 한 번 더 고민했더라면... 업태, 종목의 프레임에 갖히지 않았더라면... 부동산 중개사 사장님은 프랜차이즈 회사로부터 점포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점포를 찾는 일을 하신다는 분인데, 청파동 와서 돌아다녀 보니 여기 딱 편의점 자리인데 뜬금없이 컴퓨터 가게가 있어서 포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소문을 들으니 다른 편의점이 들어오려 한다기에 우리에게 찾아와 알려주신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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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임대차계약이 만료된 게 아니니 혹시라도 업종을 바꿀 결심을 하고 건물주와 협의를 하게 된다면 자신이 편의점 본사를 연결해주겠다고 명함을 남기고 가셨다. 하루를 심각하게 고민해본 결과, 편의점업은 포기하기로 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24시간 영업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젠 인원이 되지 않았다. 일부러 시간을 들여 멤버들을 한 명 한 명 떠나보냈다. 가족같이 지낸 멤버들이라 어느 날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를 통보하는 식으로 마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적자의 폭은 더 커졌지만, 그건 사장인 나의 감당할 몫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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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임대료가 인상될 우려 때문이었다. 계약 갱신 시기라서도 그렇지만, 편의점을 한다고 하면 그 부가가치에 임대료가 오를 것 같았다. 그동안 잘 지낸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물러나는 게 맞다고 여겼다. 세 번째로 너무 지쳐있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에너지가 부족했다. 지금이라도 뜻을 바꿔 편의점을 하면 이 불황을 이겨낼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포기하기로 했다.

이후 실제로 편의점이 들어왔고, 한동안 장사가 잘 되었다고 들었다. 연재 1회에서 이야기했듯 청파동을 배경으로 한 소설 #불편한편의점 덕에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들이 조금씩 소환되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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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나와 동생의 결론은 집에서 가까운 동네를 찾아 아주 조그마한 컴퓨터 수리점을 차리고 동생이 운영을 맡기로 했다. 이후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불황에다 1인 매장으로 고민하다 보니 항아리형 상권을 찾기로 했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5평짜리 점포를 물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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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동대문구 장안동에서 이런 매장을 하나 찾았다. 찾아가보니 건물주분들이 너무 좋았다. 가계약을 하고 간 사람이 있는데 날짜가 지났음에도 연락이 없다고 한다. 우리 사연을 들으시고는 가계약자가 포기할 경우 여기 들어와서 꼭 재기했으면 좋겠다고, 보기엔 이래도 다들 돈 벌어서 나간 곳이라고 말이라도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러나 연락없다던 가계약자는 우리가 가게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와서 계약을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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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과 입지, 월세 등 컴퓨터수리점하기 좋은 곳이었는데 너무 아쉬웠다. 한편으로는 이런 항아리상권은 중랑천을 끼고 형성된 아파트 단지 상권에서 두드러지기에 장안동, 휘경동, 월계동, 공릉동, 하계동을 물색했다. 마침 컴퓨터 수리점 연대를 만드려고 자주 움직였던 사장님들이 인근에 계셔서 정보를 보태주셨다. 그 결과 공릉동 풍림아파트 상가 지하로 가게 되었다. 평수는 10평 정도였으며,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는 40만원이었다.

또 지하 공간에 자리잡게 되었고, 돈도 없어 가진 것들로 매장을 구성했다.


사실 이곳은 썩 맘에 드는 곳은 아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숙대 앞에 처음 갔을 때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지형적으로는 완벽한 항아리 상권이었고, 상권 내 세대수도 상당했다. 중랑천, 동부간선도로가 서쪽과 남쪽을 막았고, 동쪽은 섬밭로, 동일로가 이중 격벽을 구성했다. 북쪽으로는 공릉지하차도와 경춘선 숲길이 막아섰다. 이 사이에 단지 3개가 있는데, 라이프2단지가 660세대, 풍림아파트가 1600세대, 라이프3단지가 840세대로 3000세대 아파트를 대상으로 하는 상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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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규모의 상가 내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장기간 공실이 있었다는 게 이상했다. 다음으로는 인접한 컴퓨터 수리점 사장님들로부터 여기엔 컴퓨터 수리점이 생긴 적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존재하지 않는 건 존재하지 않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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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로 점포를 꾸미고 영업에 들어갔다. 시작부터 난감한 게 많았다. 상가동은 세대수가 안 나오다보니 인터넷 장비가 들어오지 않았다. 초고속 인터넷 회선이 들어오지 않는 거다.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KT VDSL만 가능했다. 이건 너무나도 불리한 환경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인터넷이 안 되는 상황에선 영업이 불가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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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VDSL은 출시 5년 된 한물 간 상품으로, 전화선을 활용한 인터넷이다. 전화선 모뎀을 경험해본 사람 입장에선 획기적인 속도를 자랑하지만 무지 느린 인터넷이었다. KT 기사님이 오셔서 오래간만에 VDSL 개통한다면서, 옥내 회선이 대부분 죽어 있어서 남은 회선 하나로 겨우 개통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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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상권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전형적인 베드타운이었다. 주민들은 단지 내 소비에 소극적이었다. 게다가 또 지하다. 어떻게 우리를 알리냐가 문제였다. 여기서도 똑같이 전단지를 돌렸다. 자석형 홍보물을 만들어 여기저기 붙이며 다녔고, 야식집 광고가 들어가는 동네 소식지에 우리 광고를 실었다. 이런 유형의 광고는 바로 터지지 않는다. 오랜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했다. 어떤 분은 홍보 후 2년이 지나 엘레베이터에 붙어있는 자석 홍보물을 발견하고 전화를 주고 방문하신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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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어려움은 많았지만, 1인 매장이었기에 어떻게든 버텼고, 예전에 거래하던 B2B 거래처도 있어 어찌어찌 살아낼 수 있었다. 나는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 여기저기 새로운 일을 향해 움직였다. 교육을 받으러 가기도 하고, 사람을 꾸준히 만났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니기도 했다. 동생이 도움을 요청하는 날이나, 주말이나, 쉬는 날마다 공릉동 매장에 가서 일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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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 전문가나 유튜브, 서적엔 항아리 상권을 잡으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항아리 상권도 상권 나름이다. 우리가 있었던 풍림아파트 쪽은 바람직한 항아리 상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랑천 건너 편 월계삼호아파트 단지나 하계학여울아파트 단지는 항아리 상권의 특성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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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파트들은 생긴 지 오래된 곳으로 오랜 세월에 거쳐 상가가 형성되며 단지 내 수요에 적합한 점포로 구성되어 있다. 주민들이 단지 내 상가에서 기본적인 필요를 채울 수 있고, 상가 내에서 외식이나 매식을 위해 빈번하게 움직이는 특징이 있었다. 오래 살고 있는 주민들이 많고, 자가차량을 갖지 않은 주민들도 많다. 따라서 단지 내에서 소비해야만 하거나 배달을 시키거나 한다. 따라서 단지 내 상가에 입점한 점포가 공급의 1순위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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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풍림아파트는 달랐다. 생긴지 10년 된 신축아파트에다가 이 지역에선 고급아파트에 속했다.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이 많아 대부분 자가차량을 1대 이상 갖고 있었다. 가벼운 소비 외엔 대부분 멀리 나가는 게 보통이었다. 상가 내 점포는 학원이 대부분이었고, 1층에 마트, 정육점이 있었다. 지하에는 떡집, 세탁소, 우리 가게처럼 약간 제조업 느낌이 나는 가게들이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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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수리에 고전을 면치 못했던 건 대기업 브랜드 PC나 노트북을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체로 대기업의 출장AS를 부르곤 했고, 대기업 출장기사들이 서비스 해줄 수 없는 품목을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필요로 할 때에야 컴퓨터 수리점을 찾을 생각을 한다. 오히려 소득수준이 낮은 라이프단지 주민들이 조립PC를 많이 쓰다 보니 라이프단지에서 찾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복도 끝에 떡집이 보인다. 가끔 떡을 나눠주시기도 했고, 우리가 떡을 사러 가면 오백 원 깎아 한 팩을 천 원에 주셨다. 출출하고 배고플 때 유용한 식량이 었다.


여기서도 주민들, 상인들과 교감하며 3년 정도 영업했다. 나름 사랑받은 가게였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이제 이 비즈니스를 끝내야겠다는 그런 느낌이 드는 날이 왔다. 또 한 번의 결심을 하고 과감히 문을 닫았다. 운영하느라 고생만 했던 동생은 거의 10년 만에 처음 휴식 다운 휴식을 가졌다. 모든 걸 마무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각자의 길을 본격적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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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식서비스를 제공하는 1인 비즈니스로, 동생은 전산기기 유지보수 회사로, 이밖에 예전에 함께 했던후배들은 통신인프라 회사에서 따로 또 같이 10년의 시간을 보냈다. 나를 제외하고 다들 두세 사람분의 역할을 하는 중급 이상의 기술인력이 되어 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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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에 고생에 고생을 거듭했던 시기라 잊어버리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불굴의 의지로 돌파했던 시기라 잊어버리기 싫은 것도 많았다. 무슨 이유가 모두를 끌어 모았고, 청파동 2가, 1가, 3가로 옮겨다니며 고락을 함께 나누게 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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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찾으려면 그 의미를 충분히 서술할 수 있지만, 지금 와서 우리에겐 의미 없는 작업일지 모른다. 굳이 해석하려 하면 많은 교훈을 정리할 수 있지만 그런 교훈이 지금의 우리 멤버들에겐 교훈이 되지 못한다. 다만 함께 했던 기억을조금이라도 기록해두기로 한 약속을 이제라도 이행하기 시작했다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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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2회분의 기록에선 상권과 입지에 대한 내용으로 나의 기억을 큐레이션했지만, 언젠가 또 다른 계기가 지나간 이야기를 반복하되 다른 각도에서 본 새로운 이야기로 펼쳐내게 될 거다. 실명을 거론하지 못하지만 L군, M군, 똔똔스 모두 나의 소중한 형제들이다. 함께한 순간의 기억을 계속해서 기록해 나가는 걸로... 아마도 각자의 길을 찾아가기 위해 함께 고생의 분량을 채웠던 건 아닐까? 그건 또 다른 이야기로 풀어보는 걸로...

To be Continued     


#MyBizStory #상권 #입지 #숙대 #청파동 #공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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