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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석 Oct 03. 2020

분주한 삶의 소중한 쉼표

영화 스틸 라이프(Still Life 2014)

존 메이 씨는 케닝턴 구청 소속의 22년 차 공무원이다. 


아무런 연고 없이 홀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을 위해 가족을 찾거나 장례식을 치러 주는 것이 그의 업무다. 


매일 똑같은 복장, 똑같은 업무, 똑같은 패턴의 삶을 사는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해 연고 없이 외롭게 이 세상을 떠나간 사람들을 추모하고 기억한다. 


느리지만, 꼼꼼한 그는 세심하게 고인을 위해 시간을 기꺼이 할애한다. 


그러나 


빠르지만, 따뜻한 마음은 없는 부장은 업무 실적을 근거로 존 메이씨의 22년 간의 공무원 생활을 끝낸다.  


그에게 이 업무는 자신의 일이었으나, 또한 유일하게 그가 좋아하는 일이었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창문 너머로 바로 마주해 보이는 공간에서 한 노인이 죽는다. 


그가 좋아하는 일의 마지막 종지부를 맺는 마지막 케이스. 

문득 그 마지막 케이스의 주인공이 어떤 삶을 살았기에 연고가 없는지 궁금했나 보다. 


그의 공무원 인생에서 처음으로, 고인의 집에서 발견한 단서들로 고인의 삶을 쫓아가 본다. 


[이후 줄거리 생략 -]


이 영화는 무채색이다. 아무런 색이 없다. 

주인공인 존 메이가 대표적이다. 


그의 삶은 


조용하다. 조용하다 못해 지루하다. 

평범하다. 평범하다 못해 찌질하다. 


그렇지만 뭉클하다.

그렇지만 따뜻하다.


그리고 그런 주인공이 좋다.


그는 남들이 알아주지 못하지만 자신만의 '작은 마음'을 갖고 인생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이다. 

아니, 묵묵히도 아니다. 그는 그저 그에게 주어진 시간과 그에게 주어진 업무와, 그에게 주어진 인생을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조용히 살아간다. 


그의 인생은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빠르게 변해버리는 오늘날의 시대와 대조적이다. 



나의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내 직장에는, 내 삶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부분들이 의미가 있는지 아무런 고민 없이 빠르게만, 분주하게만 살아가는, 


느려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 뒤쳐지는 것에 대한 예민함. 그러나 정작 나의 주변의 것들에는 무심해버리기만 하는 사람들. 


외로운 삶이다. 


그 사람들 속에서 존 메이는 너무 빠르지도 않게 너무 분주하지도 않게 그저 자신의 속도와 자신이 가진 의미를 가지고 산다. 


작지만 소중한 삶이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두가 꼭 이 영화를 한 번쯤 봤으면 좋겠다. 


인생이란 무엇인지, 죽음이란 무엇인지, 기억된다는 것은 무엇인지, 가족이란 무엇인지,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인지 등 


영화는 절제된 감정과 표현들로 가득 차 있지만 보는 이로하여 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으로 가는 짧은 시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으나 

충분히 이해가 되고 마음이 가는 엔딩이었다. 


뭉클했다. 


그마저도 펑펑 눈물이 터진 것이 아니라 영화의 분위기에 맞게 또르르 조용하게 눈물이 났다. 


존 메이씨는 참 좋은 사람이다. 

그는, 참 따뜻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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