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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식 Apr 24. 2020

우리가 몰랐던 부모님의 노동일기

임계장이야기, 2020

좋은 책이지만 좋은 책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무슨 낯짝으로 임계장의 아픔과 고통, 땀과 눈물에 박수를 보내겠는가. 그저 꼭 필요한 책이라고,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후마니타스 - 1만 5000원

임계장 이야기는 퇴직 후 4년째 시급 노동자로 일해 온 63세 어르신이 그간의 경험을 기록한 작품이다. 그 내용이 우리네 부모님과 수많은 비정규직의 모습이기에 읽는 내내 마음이 할퀴어지는 듯 아팠다.


책을 쓰신 분은 조정진 선생님이다. 그런데 왜 임계장 이야기일까? 고령층 비정규직이기에 붙은 이름이란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앞 글자를 땄다. ‘고다자’라고도 불린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고 붙여졌다.


선생님은 버스 배차계장, 아파트 경비원, 빌딩 주차관리원 겸 경비원, 터미널 보안요원으로 일하다 쓰러졌다. 그 일을 하면서 겪은 온갖 부당함과 수모가 상세하게 기록됐다. 처참하고 비현실적이고 비인간적인 대우가 얼마나 일상적인지 말이다.


본부장 사모님을 몰라본 죄로 빌딩에서 잘렸고, 아파트에서는 자치회장의 심기를 거슬려 해고당했다. 터미널에서는 병이 났으면 빨리 사직서를 내라는 황 대리의 말을 들어야만 했다. 일자리를 지키려고 참아야 했던 비참함을 더는 옮기지 못하겠다.

영화 <이웃사람> 에서 경비원 역을 맡은 천호진 씨가 야간 순찰을 돌고 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부당함을 당하면 싸워야 바꾸고 쟁취한다고. 하지만 회사에 맞서기는 힘들다. 아파트와 빌딩은 근거 없이 괴롭히지만, 기업은 정당화하는 규정을 만들어 갑질한단다. 그리고 싸우는 시간의 생계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럼 정치인들이 도움을 줄까? 태생적으로 그들은 약자를 도울 수가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파트 경비원은 8명, 주민은 수백 명이라고 치자. 바꿔 말하면 8표와 수백 표다. 그들이 누구의 편에 설지는 자명하다. 이렇게 현실은 외면된다.


한나 아렌트는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무능력, 그것이 바로 악이다’고 말했다. 시계를 돌려보자. 당신은 수많은 임계장과 비정규직을 어떻게 대했는가? 만약 함부로 입을 놀렸다면 이 책으로 자신의 저열한 공감력을 치료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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