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현 행복코치 Dec 11. 2021

지천명은 개뿔

인생 50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다. 전환의 시기, 논어에서 인생의 각 단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40이면 불혹이고 50이면 지천명, 60이면 이순이라고 했던가.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50이면 지천명,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라고 하는데, 공자가 살았던 때와 평균 수명이 달라져서 그런가 50이 넘은 이 나이가 되어서도 하늘의 뜻은 커녕 나 자신의 생각도 잘 모르겠다.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있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고 사는 것도 아니다. 그냥 어정쩡한 상태이다.  


다른 이들이 보면 참 잘 살고 있다고 할 거다. 오랫동안 좋은 직장에서 근무를 했고, 지금도 여전히 일을 하고 있으며, 공부도 할 만큼 했고, 일을 하기 위한 자격도 나름 갖췄다. 번듯한 집도 있고 그동안 모아 둔 자산도 좀 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나의 문제이다. 겉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것, 겉으로만 그렇다는 거다.  


남들이 보기에 넓은 집에, 근사한 차에, 내세울만한 경력과 경험을 보유한 그런 내가 사실은 맨몸으로 폭풍우를 맞고 있다고 하면 말이다. 아마도 "복에 겨워서!!!"라는 말이 바로 날아올거다. 바로 그 점이 내가 고민하는 부분이다. 사회적으로 객관적으로 나에게 문제가 될 것이 전혀 없다는 것. 그래서 내가 하는 고민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고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어디가서 말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그렇게 혼자 끙끙거리고 있다는 거. 


아주 가끔 숨통이 트인다. 늘 바쁘게 생활하는 그 지인과 통화를 할 때. 지인과 내가 똑같이 하는 말이 바로 이거다. 


"이렇게 살려고 한 게 아니데..." 


이 말을 시작으로 한 시간은 거뜬하게 각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공감하고, 이해하고, 같이 아쉬워하고.


그 지인과 나의 공통점은 치열하게 삶을 살아왔다는 거다. 비슷하게 대기업에서 꽤 높은 지위까지 경험을 했고, 지금도 자신의 비즈니스를 하고 있고, 뭔가 성장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 삶을 하루하루 치열하게 전투하듯이 살고 있다는 점이 나와 판박이처럼 똑같다. 


그 날도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요즘 너무 바빠요. 프로젝트 보고서 작성, 제안서, 고객들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다 보면 하루가 다 가요. 오늘도 10시 전에 퇴근하기는 글렀어요." 


"이번 주에 게속 바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오늘도 바쁘시다니... 정말 우리 이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거 맞을까요?" 


"그러게 말이에요. 이렇게 살려고 회사를 뛰쳐 나온게 아닌데." 


"호호, 우리 대화의 결론은 늘 똑같네요. '이렇게 살려고 한게 아닌데.'" 


토요일이었고 일반 기업이 일하는 평일과는 달리 전화가 오거나 갑작스런 방문 등이 없는 날이다. 지인은 이렇게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와서 다른 직원들이 없는 동안에 밀린 일을 정리하고, 혼자 생각을 정리한다.  


나와 지인의 대화는 거의 비슷한 아쉬움으로 끝난다. 늘 아쉽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지인과 나, 둘다 코치다. 그것도 오랫동안 코칭비즈니스를 한 전문코치다. 그런데 코치 두 명이 머리를 맞대도 답이 찾을 수가 없다. 아무리 고객의 답도 없는 상황을 잘 해결해도, 고객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탁월한 코칭실력이 있어도 중이 제머리를 깍지 못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매번 답도 없는 신세 한탄만 했다.  


내가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건, 이런 순간이 켜켜히 쌓여 한계를 넘어버린 그 순간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안되게다고 느낀 것. 그리고 모든 심리학자와 상담가가 이야기하는 중년의 전환의 시점이 된 것도 영향이 없을 수는 없을 거다. 


그렇다면 갑갑한 현실을 타개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그 방법을 찾아내서 정리해 두지 않았을까? 그래, 뭔가가 있을 거야..



[Prologue]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Prologue,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