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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행복코치 Dec 13. 2021

뭔가 잘못됐어..

나를 만나러 가는 길

뭔가 잘못됐어. 


장난처럼 입버릇처럼 50이 되면 회사를 그만두고 내 일을 하겠다고 했었다. 거짓말처럼 그 말은 사실이 되었고, 한 동안의 좌충우돌을 겪었지만 열심히 일을 하고 잘 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남들은 일이 없어서 손가락을 빨고 있다고 하는데 나는 감사하게도 너무 바빴다.  


지금까지 벌어 놓은 것으로도 생활에 대한 걱정은 다행스럽게도 전혀 없지만 고맙게도 나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 그것도 직장 다닐 때보다 더 열심히 말이다.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니 일이 많으면 만족하고 행복해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바쁘게 일을 하고 수입에 대한 걱정도 없는데, 공허하고 뭔가 빠진 것 같다. 남들이 들으면 배가 불렀구나 하겠지만 나는 그랬다. 뭔가 있어야 할 것이 없는, 뭔가 허전한 그런 것. 


"이럴려고 회사를 그만둔 게 아닌데.." 


그래서 이런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는지도 모른다. 한 번도 아니고 자주.


그날도 역시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 


그 말을 하는 나를 남편은 아무 말 없이 흘깃 쳐다보기만 했다. 그 표정은 마치 '말은 그렇게 하지만 너는 그대로 살 거잖아. 한두 번 이야기한 것도 아니면서..' 이런 말을 얼굴에 붙여놓은 듯했다. 


그렇지. 한두 번 이야기한 게 아니지. 직장에 다닐 때도, 자유롭게 살겠다며 직장에 사표를 내고 나서 지금까지 나는 변한 게 없다. 늘 바쁘고, 늘 시간을 쪼개고, 머릿속에는 해야 할 일들이 백 개는 넘게 들어있었다. 잠을 줄이고 새벽바람에 기차를 타고 일을 하러 다녔다. 그러면서 힘들다,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마치 '나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거든. 그러니 귀찮게 하지 마.' 이렇게 먼저 방어벽을 쳤다. 


내가 집에 없는 동안에 모든 것을 남편이 처리했다. 청소며, 스스로의 끼니까지. 그럼에도 남편은 내 옆에서 물 한 컵과 영양제 알약을 들고 나를 따라다녔다, 약간의 잔소리와 함께.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새벽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하는 나를 공항까지 데려다주려고  졸린 눈을 비비면서 운전을 하는 남편을 멍하니 보다가.. 그냥 튀어나온 말, 


"뭔가 잘못됐어." 


그때였다. 늘 이러고 살려고 직장을 그만둔 게 아닌데... 수없이 했던 생각을 넘어, 뭔가 내 삶이 "잘 못 되 었다"고 처음으로 느낀 때가. 마치 아주 깜깜한 곳에 바늘만큼의 빛이 보이는 순간처럼 내 삶에 작은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무석 박사의 "30년 만의 휴식"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인간의 마음은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그것이 바로 의식과 무의식이다.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나 생각들은 굉장한 영향력을 가지고 우리의 감정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어요"라든지 "부지불식간에 자리를 피하게 됐어요"같은 말은 무의식적 행동을 보여 주는 말들이다. 자기 마음이면서도 자기가 모르는 마음이 무의식이다. 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자신의 무의식을 이해하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말은 그냥 흘러나오는 게 아니다. 이미 무의식 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들어앉아 조금씩 조금씩 커진 것이 어느 날 임계치를 넘어 튀어나오는 거다. 그날 나의 입에서 나온 말도 그런 말이다. 이제는 더 이상 그냥 두면 안 되겠다는 그런 무의식적인 자기 보호라고 할까. 


코치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사람들이 변화하는 것을 자주 지켜봤다. 자신의 속 마음이 어떤지 들여다보고선 놀라는 사람, 우는 사람, 웃는 사람.. 많은 이들이 자신의 내면과 조우를 하고선 삶이 조금은 편해지는 것을 봤다. 그들 스스로 자신의 내면의 느낌이나 생각을 찾아내기 힘들기 때문에 코칭을 받는다. 코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주 얇게 드러나는 무의식의 단어 하나, 표정 하나를 포착해서 그 틈을 더 비집고 들어간다. 코칭은 그렇게 섬세한 작업이다. 그런 섬세함이 없이는 코칭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실패한 코칭의 대부분이 그런 예민한 부분을 다루지 못한 경우였다. 물론 코칭을 받는 고객은 그게 어떤 것인지 모른다. 코치만이 그것도 탁월한 코치만이 그 지점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거다. 


나에게도 필요한 부분이 바로 나를 언어와 태도롤 관찰하고 그 점에 대해서 나에게 거울처럼 비춰줄 사람이다. 즉 나에게도 코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바쁘게 돌아치는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그리고 오랫동안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코치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을 터… 어떤 방법이 있을까?




Prologue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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