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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행복코치 Dec 16. 2021

나를 만나러 간다

화난 내면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 

오늘이 내 속에 있는 아이를 만나러 가는 바로 첫날이다. 


이렇게 글로 밖에 만나지 못하는 게 아쉽기는 하다. 직접 보면서 이야기를 한다면 더 진지하고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다. 아니 오히려 더 어려울까? 


내면 아이와 나, 둘 다 나 자신이라 구분하기가 어려울 수 있겠다.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내면 아이에게도 이름을 만들어줘야겠다. 그 아이의 이름은 현아다. "현아야" 고모와 사촌언니들은 나를 그렇게 부른다. 이름인 지현에서 마지막 글자만 따서 그렇게. 그래, 그 이름을 내면 아이에게 붙여주자. 


현아야.. 


그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가고 있다. 열 살짜리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내면의 나를 만나러 쉰이 넘은 내가 가고 있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 지금까지 보아온 그 아이의 얼굴은 늘 어두웠고, 울고 있었고, 짜증이 난 표정이었으니까. 그 표정을 떠올리면 가슴 한 켠이 아프다. 


멀리 현아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게 보인다.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려고 하는데, 말이 목에 걸려서 나오지 않는다. 


"크음…"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말을 해보려고 했다. 이상하다. 목소리가 눌린 듯이 깨끗하게 나오지 않는다. 소리가 목에서 걸린다. 


"현아야, 오늘은 첫날이네. 너랑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오늘 나랑 이야기할 기분이 될까?"


"…." 


대답이 없다. 현아는 머리를 외로 꼬고 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하던 걸 계속하고 있다. 몇십 년 동안 본체만체 더니 무슨 염치로 찾아왔냐 하는 듯이. 


등을 돌리고 앉아서 뭘 하는지 보이지 않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줄이 다 헝클어져 있는 기타를 들고 씨름을 하고 있다. 고사리 손으로 줄을 다시 매려는데 잘 되지 않는 눈치다.  


"기타네. 근데 줄이 다 헝클어져 있네. 네가 그랬어?"

"...."

대답 없이 뭔 소리냐는 듯이 흘겨본다. 


"내가 좀 도와줄까?" 


"됐어." 


고개도 들지 않고 한 마디 꽥 소리만 지른다. 화들짝 놀라 한참을 기다리다가 다시 말을 붙여봤다. 여전히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누가 이렇게 현아를 힘들게 하지?"

"뭐래? 네가 이렇게 만들어 놨잖아. 직장생활 처음 시작하면서 샀던 기타는 어디에 처박아 놨는지도 모르지? 그냥 없어졌고. 작년인가 기타 배울 거라고 사놓은 건, 그건 기억해? 그 기타잖아. 창고 구석에 처박아 놨던 거." 


"아, 그 기타. 그러네. 창고에 넣어놓은 건 기억하는데… 줄이 이렇게 엉클어지다니.." 


"지금까지 뭐든 그랬잖아. 기타는 약과지. 피아노는 집에 왜 가져다 놓은 건데?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뚜껑은 열어보냐?" 


"피아노나 기타 치면서 노래 불러보는 게 내 꿈인 건 네가 더 잘 알잖아. 근데 마음대로 안돼서 그런 건데, 그걸 그렇게 뭐라 하냐?" 


"야, 말을 바로 하라고. 안되기는. 네가 안 한 거지." 


"너도 잘 알면서 왜 그래? 내가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 잘 알지 않니?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건데. 그래서 시간은 낼 수가 없다고. 얼마나 안타까워하는지 네가 잘 알 텐데..." 


"내가 일 하라고 했냐? 혼자 좋아서 다 한다고 해놓고 딴 소리는. 그래 놓고 나는 왜 찾아오는데? 지 살고 싶은 대로 살면서. 맨날 바쁘다고 힘들다고 징징 짜는 거는 겉으로만 그렇지?" 


"아니라고! 왜 그렇게 몰아붙이지? 일을 하라고 연락이 오는데, 그걸 하지 않는다고 해? 어떻게 그렇게 해??"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제 현아는 얼굴을 내 얼굴에 바싹 대고서는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줘서 말했다. 


"넌, 늘, 그, 랬, 어. 일이 많으면 많다고 난리 치지만, 없으면 알아서 일을 만들잖아. 문제는 내가 아니라 너야." 


말을 끝낸 현아는 등을 획 돌리고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고집스러운 건 어릴 때 내 모습 그대로다. 한 번 토라지면 풀어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걸 너무 잘 안다. 오늘 대화는 이걸로 끝이다.  


첫 대화 시도는 무참히 깨졌다. 둘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큰지를 확인하는 것도 성과라면 성과일까? 과연 그 간격이 좁아지기는 할지, 좁아진다고 해서 좋을 건지 조차도 판단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일단 대화를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성과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코칭을 받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중에 특히 많은 건 사람 간의 관계이다. 가족 간의 관계, 직장생활에서의 관계 등등, 사람 간에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는 그 문제가 어떻든 대인관계라는 주제로 뭉뚱그려진다. 사람들의 가치관이 다르고 살아온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관계를 좋게 유지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이 주제를 다룰 때 철칙이 하나 있다. 그런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거다. 즉 대인관계에서 변화를 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원하는 바로 당사자가 먼저 뭔가를 해야 상대방도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상대방을 변화시키겠다고 들면 그때부터는 전쟁 시작이다. 


오늘의 대화에서도 변화를 원하는 내가 먼저 현아를 만나러 갔다. 현아는 나와 대화를 할 마음조차 없다. 하지만 내가 먼저 시도를 했으나 현아도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나와 이야기를 할 주제를 준비하거나, 혹은 내 질문에 답을 하는 식으로.. 혹시라도 현아가 나의 노력에 전혀 반응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현아가 반응을 해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힘이 나에게 있을까?  


그런데, 토라진 현아가 나에게 등만 보이고 있는 모습이 왜 그리 힘들까? 감정이 올라올 때는 이유가 있다고 했는데…



Prologue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지천명은 개뿔

뭔가 잘못됐어  

도대체 어떻게?

내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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