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여행 떠나는데 혹시 괜찮으면 사진 좀 알려줄래?
회사에 휴가를 내고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친구.
1년 동안 가지고 있던 카메라로 아무리 찍어봐도
제대로 된 사진을 얻기가 어렵다고
내게 부탁하며 했던 말.
카페에서 오랜만에 만나
친구가 가져나온 카메라를 꺼낸다.
내가 카메라에 대해 설명해주는 동안,
그 친구는 아무래도 자신이 갖고 있는 렌즈가 문제인 것 같아,
사러 갈까 고민 중이었다고 말한다.
"결국 이 세 가지의 조합이 중요해."
여전히 내게도 사진이 어렵고
아직 사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간단한 사용법 정도는 알려줄 수 있으니까
나름 열심히 설명을 해준다.
"오늘 내가 가지고 있던 렌즈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모든 설명이 끝나고,
친구가 해준 말.
그 친구는 결국 새로 사려던 렌즈를 포기하고
오랫동안 쓰지 않은 렌즈를 가지고
얼마 후에 스페인으로 먼 여행을 떠났다.
"그 카메라는 남들 잘 안 쓰지 않아요?"
처음 사진을 시작할 때,
딱 하루 나가 보았던 동호회에서
누군가가 물어봤던 질문.
그저 아버지가 오랫동안
안 쓰신 10년이 지난 렌즈에 사용하려고
사게 된 카메라.
구입하기 전부터
5개월 동안 카메라 없이
새벽까지 사진을 공부하면서 깨달은 것은
결국 도구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아닐까 하고.
"난 네가 실패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고등학교 시절
영어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
정말 오랜만에 만나서 술 한잔을 기울이다
내게 해주신 말씀.
"전 지금도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주체적으로 한 결정이었다고
나와 맞는 길을 가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던 선생님.
하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보다
남들이 내게 가야 한다고 말하는 길보다,
적어도 먼 훗날 기다리고 있는 나를 위해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는 나에게
가끔 씩 쏟아지는 낯선 시선들.
하지만 그럴수록
내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
나는 과연 스스로에게 솔직하려고 노력하는가?
하고.
너무 쉽게 보게 되는 다른 사람들의 성공.
화려해 보이는 서로의 삶들을
한 앨범 위에 나란히 올려놓고,
스스로에 대해
조급함을 느끼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기보다
내 안에 오랫동안 간직해온 무언가를
돌아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사회에 살고 있는 지.
마치 친구가 너무 오랫동안 쓰지 않아
새로 사려고 했던 카메라 렌즈처럼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것을
쫓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딘가에서 보았던,
모든 건물의 입구는 항상 낮은 곳에 있다는 말.
맹목적으로 높은 곳만을 향해 올라가다가,
우연히 만났던 깨달음들.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내가 내린 결론.
언젠가 떨어지기 위한 연습이 필요하겠구나.
그리고 그 연습이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주겠구나 하고.
나는 항상 떨어질 때마다,
더 잘해왔으니까.
그래서 다시 밑으로 내려와 걸어가기를
결심했던 날,
참 많은 생각이 들었던 기억.
현실과 이상은 다르지 않을까
참 걱정도 많았던.
하지만 어느 건물에 올라가 내려다 보는 삶보다,
조금은 넓은 세상에 살고 싶다고 이미 결심했으니까.
"나만의 특별함을 알고 싶어요."
어느 날은 앞으로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누군가의 질문에 그렇게 답했었다.
여전히 나는 내 안에 무엇이
숨어있는지 찾고는 있는 중이라고.
지금은 잘 모르지만,
이렇게 찾다 보면
계단을 오르는 내내 경험한 것들이
조금씩 쌓여 내가 오른 건물 어딘가에서
필요할 날이 오지는 않을까 하고.
"역시 사지 않길 잘한 것 같아. 고마워."
스페인 여행 후에 친구가 내게 보내준 사진들.
그렇게 친구는 가지고 있던
렌즈에 대해 알고 나니
이제 조금은 찍는 방법을 알겠다고 말했다.
하마터면 가지고 있던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모른 체
새로 하나 더 살 뻔했다고.
그 얘기를 듣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잘 알고 있을까.
행여나 내 주위에 보이는
다른 것들에 욕심을 부리고 있진 않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