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시작한 지 딱 3주 차. 벌써 몸이 고장 났다. 감기몸살도 아니고 장염에 걸린 것도 아닌데 체한 것 같고 온몸이 쑤시고 열이 난다. 어제저녁은 정말 아팠다. 집에 도착할 때쯤부터 열감이 확 느껴졌다. 긴장이 풀리는 신호였다. 죽을 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콩나물을 사고 또 약국에 들러 필요한 약을 샀다.
아마도 지난 주말부터 월요일에는 세탁기를 돌리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집 앞에 죽집이 있지만 세탁기를 돌리는 동안 죽을 쑤면 되겠다. 이런 심산으로 열이 나는 와중에 마트까지 들렀던 거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서둘러 세탁기를 돌리고 샤워를 했다. 아무리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도 자꾸 추웠다. 정말 열이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맛있고, 없고 와 상관없이 뭐라도 먹어야 했다. 하루 종일 아침에 먹은 고구마 하나가 전부였다. 열이 오르니 밥맛이 없었다. 모래알을 씹는 것 같았다. 세탁 시간은 아직 20분이 남아있었다. 20분은 정신을 붙들어 매야했다. 해야 할 알바가 생각났다. 서둘러 노트북을 켰다. 흰색은 모니터고 검은 것은 글씨였지만 억지로 타자를 두드렸다. 20분도 그냥 낭비할 수 없었다.
세탁기의 종료음이 울리고 건조대에 세탁물들을 널었다. 이제 자려고 불을 끄려던 찰나, 부엌에는 요리했던 흔적이 그대로 있었다. 설거지를 하고 자야 했다. 물컵이나 과일을 썰어 먹은 접시를 제외하고는 잠들기 전엔 무조건 부엌을 원상 복구해야 직성이 풀린다. 나도 모르게 생긴 원칙과도 같다. 설거지를 하고 누웠다.
얼마나 더 아프려고 그랬는지 침대에 누우니 몸에 열이 가열차게 치솟았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여름 이불을 꽁꽁 싸맸다. 밤새 아프면 내일 아침은 좀 낫겠지. 하고 건조대에 가지런히 널어둔 세탁물과 깨끗하게 닦인 부엌을 보는데 웃음이 났다.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이렇게 힘들다. 잠들려던 와중에 엄마에게서 톡이 왔다. 가져간 복숭아 엄청 달고 맛있지 않냐며. 약사가 약을 주며 매운 음식, 카페인이나 술, 과일, 밀가루를 먹지 말라고 했었다. 시원한 복숭아를 한 입 먹으면 금방 나을 것만 같았지만 과일 깎을 힘도 없었다. 엄마에게는 복숭아가 엄청나게 달고 맛있다며 호들갑을 떨어대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아픈 건 왠지 혼자만 아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밤새 식은땀과 바깥 소음과 사투를 벌이고는 또 7시에 눈이 떠졌다. 아침에는 9시에 문을 여는 병원에 들렀다 출근할 생각이었다. 병원가기 전까지는 대략 한 시간 반쯤 남아있었다. 어제 하다 만 알바가 생각났다. 눈이 떠진 김에 타자를 좀 더 두드려보기로 했다. 밤새 빨래는 바짝 말라있었다. 빨래 상태를 확인하고 책상에 앉아 타자를 두드리는데 스스로 참 악착같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나는 어딜가도 굶어 죽지 않을 인간이다. 스스로 이런 믿음을 끊임없이 주입하기 위해 안해도 될 것까지 한다. 스스로를 책임지는 어른이 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물리적, 경제적 독립을 하면서 정신적으로도 독립된 개체가 된 것 같았다.
누가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는가. 출근 3주 차 만에 골골대는 나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체력이 점점 내가 제어하지 못하는 영역으로, 내 손을 떠나는 중인 것 같다. 아무리 열심히 운동을 한다고 해도 떨어지는 체력을 막을 수 없다. 운동을 그렇게 꾸준히 해도 이런 수준이라니 너무 슬프다. 나의 체력에 애도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