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균 미국변호사 May 05. 2024

치열한 삶이 좋은 글을 만든다

집 나간 치열이를 찾습니다

내가 예전에 썼던 글들(특히 로스쿨 재학 시절, 혹은 초보 변호사 시절)을 읽어보면, 내가 썼나 싶을 정도로 낯선 글들이 종종 있다. 그때는 치열했던 시간이라 그런지, 비장함과 진지함이 느껴지는 글들이 많았다. 글에도 뭔지 모를 묵직함과 깊이가 있었다.


요즘에 내가 글을 잘 안 쓰게 된 이유가, 예전만큼의 간절함과 애잔함(?)이 사라져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종종 머릿속에 든 생각을 반드시 글로 옮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었고, 그 과정이 나에게 일종의 안정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머릿속으로 미리 글의 뼈대를 맞춰서 차근차근 글을 쓰다기보다는, 일필휘지의 정신으로 거침없이 글을 써 내려갔고 최종 결과물도 꽤 만족스러웠다.


반면, 요즘에는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소위 말하는 "writer's block"에 막히곤 한다. 나는 블로그 주제가 떠오르면 휴대폰 메모장에다가 적어놓는 편인데, 노트할 때는 신선하고 재밌을 것 같은 주제였다가도, 막상 컴퓨터 앞에 앉아 놓으면 식상하게 느껴지거나 혹은 글을 2/3 정도 써놓고도 글의 방향이나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냥 임시저장만 해놓고 발행은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왜 그럴까 고민을 해보니, 현재의 내 삶이 너무 평안하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공무원 생활을 한 지 2년이 넘어서 그런지 이젠 웬만한 업무가 다 손에 익었고, 일하는 사람들도 익숙해졌다. 솔직히 진급이나 성장에 대한 갈망이 없다면 현재 직급에서(GS-13) 무난하게 일하다가 은퇴할 수도 있다. 예전과 달리 내 생각과 속마음을 적극적으로 얘기하더라도 누가 나에게 뭐라 할 사람이 없고, 직장에서 불이익이 생길 일도 없다. 나는 본사 법무팀 소속으로 기관 내의 하위 조직 법무실 변호사들만 상대하다 보니 의뢰인으로부터 스트레스받을 일도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예전과 같은 치열한 고민과 고뇌의 시간을 가질 기회가 적어졌다. 아니, 드물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봐도 내 최근의 글들은 예전에 비해서 물렁하게 느껴진다. 


아내는 내가 미국에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국어로  진지한 사유나 복잡한 주제에 관한 대화를 할 기회가 적어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하긴 한글 책을 읽은 지도 오래됐고, 그나마 유일하게 진지한 텍스트를 접할 일이 매일 읽고 있는 한글로 된 종이신문 밖에 없긴 하다. 그래서 영어로 글을 쓰면 조금 나을까 싶어서 아주 예전에 시작만 하고 묵혀놨던 영어 블로그를 되살렸다. 그런데 역시 영어로 쓰면 글이 술술 잘 써지긴 하는데, 한글 같은 감칠맛(?)이 조금 떨어진다.


누가 보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다. 글 밥을 먹고, 글쓰기를 취미로 해온 사람에게 마음대로 글이 잘 안 써진다는 것은 골프선수에게 입스(yips)가 온 것이나 진배없다.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나의 치열함을 다시 찾고자 노력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배심원 중에 변호사가 포함된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