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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어를 다시 배운다면(1) - 문법을 대하는 자세

불확실성 감수능력

동생아(이 시리즈를 처음 보시는 분은 시작글 참고),


저번에 네가 "관계대명사"에 관해서 물어봤었지? 네가 관계대명사에 대해 물어봐서 적잖게 놀랍고 당황했다. 왜냐면 첫째로, 네가 관계대명사라는 문법 전문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이고, 둘째로 영어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네가 벌써 관계대명사를 공부한다는 사실 때문이야. 정확한 질문이 기억이 나진 않지만 관계대명사에서 which와 that의 차이를 물어봤던 것으로 기억해.


내가 미국에서 생활한지 13년이 되어가면서 "관계대명사"라는 단어를 참 오랜만에 들어본 것 같아. 그 단어를 듣자마자 내 고3 시절이 떠오를 정도로 기억 속 깊은 곳에 잠들고 있던 개념이지. 2025년인 지금까지도 너는 관계대명사를 공부하고 있는 것을 보니, 한국의 영어 공부 방식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렇게 크게 변하진 않았은 것 같구나.


그래서 이번에는 영어 공부에 있어서 문법이란 것을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설명해 줄게.


이해하기 쉽도록 결론부터 설명하자면,


문법이란 것은 원어민들이 영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자주 반복되는 어떤 패턴을 제한적으로 서술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영어 문장의 구조를 문법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 즉, 문법이라는 것은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서 편의상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 "법칙"이라는 것에 (특히 예외) 너무 집착하면 큰 그림을 놓치기 쉬워. 문법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러 가지 다양한 문장과 표현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것이지만, 굳이 문법을 공부한다면 큰 그림(숲)을 보는 느낌으로 접근하길 바라.


우리가 쓰는 한국어를 예로 들어볼까? 외국인들이 한국어 표현 중에서 자주 틀리는 것이 중에 하나가 조사(은/는, 이/가)야. 심지어 교포인 내 와이프도 한글을 쓸 때는 가끔 틀릴 때가 있어. 우리는 한국어 원어민이기 때문에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지만 외국인들은 항상 고생하는 것이지.


예를 들어,

사람... (사람는 X)

그이... (그이은 X)

영순... (영순가 X)

철수... (철수이 X)


네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면 위의 규칙이 어떤 거는 "-은"이고 어떤 거는 "-는"이 되는지 설명할 수 있겠어? 당장 설명하라고 하면 곰곰이 생각을 해봐야 할 정도로,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


네 아이가 말할 때 위와 같은 조사를 실수하는 걸 본 적이 없어? 아마 없을 거야. 아무도 문법을 설명해 주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 아마 글자를 읽기 전부터 이미 조사를 정확하게 구별해서 말을 했을 거야. 즉, 말을 하는 데 있어서 문법은 선행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지.


아기는 주변 어른들이 말하는 내용을 듣고 나름대로 문법을 체득한 것이지. 너나 나나나 전부 이런 방식으로 한국어를 깨우쳤어. 영어도 마찬가지야.


I am...

You are...

He is...

We are...

There is...

She is...


원어민들도 아기 시절에 처음 영어를 배울 때도 자연스럽게 be 동사라는 개념을 통계적으로 깨달은 것이지. 그 어느 사람도 아기에게 "1인칭 단수 현재에는 am을 쓰고, 2인칭 현재는 단복수모두 are를 쓰고, 3인칭 현재 단수는 is를, 현재 복수에는 are를 써..."라는 식으로 설명해 주진 않아. 심지어 아기가 아닌, 언어가 유창한 초등학생들도 인칭, 현재/과거, 단수/복수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을걸?


관계대명사라는 것도 마찬가지야. 아래는 영국 동요에 나오는 표현이야:


This is the house that Jack built.


여기에서 that은 그 앞에 나오는 house를 설명하기 위해서 뒤에 나오는 문장을 이어주는 거야. 영어는 우리말과 어순이 다르다는 말을 들어봤지? 특히 영어에는 문장에서 중요한 내용(주어와 동사)이 먼저 나오고, 한국어에는 중요한 내용(특히 서술어)가 마지막에 나온다는 것도.


위 글을 한글로 해석하면,

이 집은 바로 잭이 지은 그 집이다.


그렇지만 영어를 어순대로 직역하면,

이것은 그 집이다. 그 집은 바로 잭이 지었다.


라고 할 수 있는 거지. 영미권 아이들을 이런 표현을 그냥 동요에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관계대명사(relative clause)라는 개념을 몰라도 그냥 배우는 것이지. 그 누구도 아이들에게 "house라는 단어가 무정물이고 목적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정물이면서 동시에 목적격을 대신하는 that이 쓰였다"라고 설명해 주진 않아. (물론 더불어, "이 경우 that뿐만 아니라 which도 사용될 수 있고, 목적격으로 쓰이는 that을 아예 생략할 수도 있다. 하지만 that 하고 which는 주격으로도 쓸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라"라고 말한다면, 아마 문법책을 집어던지고 싶은 기분이 들 것이다 ㅋㅋㅋ)


So what? 그래서 너(오빠) 라면 어떻게 공부했을 거 같아?

즉, 만약 내가 현재 가진 모든 지식을 가지고 돌아가서 관계대명사라는 것을 다시 공부한다면 어떻게 했을 거냐고?


나라면 "관계대명사라는 것에 근본적인, 핵심 개념이 뭘까" 생각했을 거야. 그리고 나머지는 여러 가지 문장을 접하면서 스스로 그 법칙을 찾아내는 거지.


다시 말하면, 나는 관계대명사의 기본적 개념(솔직히 누군가에게 "관계대명사"라는 용어 자체를 사용하기가 좀 꺼려지긴 하지만)만 간단하게 가르쳐 주고, 나머지는 세부적인 디테일은 스스로 깨치도록 했을 거야.


즉, 관계대명사의 다음과 같은 핵심 개념은 알고 가야겠지.


관계대명사는 문장과 문장을 연결해 준다.

관계대명사는 앞 문장에 있는 단어를 뒤에서 설명해 주는데 쓰인다.

관계대명사에는 that, which, who, whom, whose가 있다.


그 외의 세부 규칙은 관계대명사가 쓰인 수많은 문장을 계속 읽고 쓰고 하면서 그 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 혹은 체득하도록 하는 거야. 물론 이상적으로는 어린아이처럼 관계대명사라는 개념 자체를 모른 상태에서, 문장을 수백수천 개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 더 좋겠지. 그런데 대부분의 성인들은 고차원적인 사고가 가능하기 때문에 문법을 통한 지름길을 가되, 어린아이가 언어를 배우는 방식도 병행함으로써 나중에 말하기나 쓰기를 할 때 유창성을 고려할 것 같아.


<참고> 언어를 공부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불확실성 감수능력


문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개념 중에 하나가 불확실성 감수능력(ambiguity tolerance)라는 것이야. 내가 학부 시절 전공 책에서 본 내용인데, 워낙 인상 깊어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지.


불확실성 감수능력이라는 것은


애매한 것, 혹은 불확실한 것을 속 시원히 해결하지 않고도 넘어갈 수 있는 참을성


을 뜻해. 언어 공부에서는 아주 중요한 능력이야. 불확실성 감수능력이 약한 게 꼭 단점이라고 볼 순 없어. 왜냐면 수학 같은 경우에는 내가 모르는 것을 100% 알게 되기까지 끝까지 파고드는 집요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


그런데 언어에는 100%라는 게 별로 존재하지 않아. 종종 "그냥 그래. 사람들이 그렇게 쓰는 거야."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


위에서 말한 관계대명사도 모든 관계대명사의 모든 용법을 문법으로 정리하려면 가능한 하겠지만, 아마 컴퓨터 알고리즘같이 여러 개의 플로 차트가 필요할 거야. 그걸 매 순간 영어 회화할 때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해 봐. 말이 턱 막히겠지.


우리가 차를 운전할 때, 자동차 엔진이 어떻게 점화되고, 연료가 4행정 사이클을 거쳐서 바퀴에 동력을 전달되는지 알 필요는 없어. 그냥 가속페달을 밟으면 차가 앞으로 가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선다는 것만 알면 되지. 운전하는 법을 배울 때, 그런 기계적 원리를 다 알 필요는 없어.


영어도 마찬가지야. 영어를 배우는 가장 본질적인 목적은 의사소통이야. 극단적으로 말해서 문법을 틀려도 의사소통에는 실질적으로 큰 방해가 안돼. 원어민들에게 "You is me friend"해도 100% 그 뜻을 알아들을 거야.


그러니 영어를 공부할 때, 특히 문법을 공부할 때 모든 게 100% 법칙으로 맞아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거기에 집착할 필요가 없어. 어차피 장기적으로 공부하게 되면 또 접하게 될 개념이니까, 하나를 완벽하게 알고 나서 넘어가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아. 명심해. 문법이라는 것은 수많은 문장을 통계적으로 분석해서 추출해서 현상을 나타낸 서술적(descriptive) 개념이라는 거.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처방적(prescriptive) 개념이 아니야.


(이 글은 영어의 의사소통에 주목적을 두고 쓴 글이며, 입시나 취업 등 영어평가 점수가 필요한 경우에는 다른 접근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답글로 질문이나 의견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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