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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어멈 May 07. 2024

컵떡볶이가 왜 부끄러워요?

넌 나를 씩씩하게 만들어줘, 봉봉.



며칠 전, 몹시 배가 고팠던 오후의 일이다.

이것저것 일정을 보내다 보니 점심을 부실하게 먹은

탓에 아이들이 올 딱! 그 시간에 배가 고파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시간이 촉박해 입에 간단히 방울토마토 두 알을 넣고 아이들 마중을 나섰다.


그날은 다음날 있을 탱글이의 소풍간식을 사러 가야 해서,

피아노학원에서 하원한 두 아이들 데리고 과자가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바로 과자가게 옆 떡볶이 집에서 컵 떡볶이를 시작한 것이다!


사실 배는 고팠지만,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간식을 주고 뭐라도 먹어 배를 채울 생각이었는데,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가듯 봉봉이는 컵떡볶이를 시작한 떡볶이 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탱글이는 소풍에 가져갈 과자 하나와 집에 가서 먹을 과자를 사겠다고 하고,

봉봉이는 컵떡볶이를 먹겠다기에 집 앞 떡볶이가게에 들어갔다.


꼬르르륵. 눈앞의 떡볶이를 보자 내 뱃속 신호들이 요동을 쳤다.

그럼에도 엄마니까 태연함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했다. 저녁밥 준비도 해둔 데다,

밥 먹기 전에 간식 많이 먹지 말라고 늘 잔소리를 했던 터라

거기서 같이 떡볶이를 사 먹기엔 규칙위반인 셈이었다.


사실 그보다 한 가지 더 마음에 걸리는 건.

커피 외에 음식을 들고 다니며 먹어 본 지 너무 오래라,

그것도 꼬치에 떡을 하나씩 꼬치로 찍어먹어야 하는 컵떡볶이를 먹으며 돌아다니기엔

왠지 좀 쑥스러울 것 같았다.


내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 당당하게 컵떡볶이를 하나를 키오스크에서 누르던 봉봉은 내게도 권한다.


“엄마도 먹어요~~!”

“엄마는 괜찮아~ 차라리 1인분을 사서 집에 가서 먹을까? 엄만 컵떡볶이 들고 가기엔 좀 창피한데?”

“왜요?? 뭐가 창피해요?”

거기에 딱히 설명할 말이 없었다.


“엄마도 먹어요~ 같이!”

그 말에 용기를 내서 못 이기는 척 키오스크에 컵 떡볶이 두 개를 눌러버렸다.


‘에잇 모르겠다. 들고 가서 집에서 먹지 뭐.‘

그런 마음이었는데 분명.


컵떡볶이를 받고 걸어 나온 우리는 컵에 담긴 떡볶이를 하나, 둘 걸으며 찍어먹기 시작했다.

묘하게 금기를 깬듯한 감정.

‘고작 컵떡볶이가 뭐라고. 봉봉이가 옆에 있는데 내가 창피할게 뭐람!!!’


용기를 내면 정말 못할 게 없었다.

아줌마가 컵떡볶이 먹는 게 뭐가 이상하다고.

하지만 봉봉이가 없었으면 굳이 안 먹고 참았을 것이다.

그녀가 함께 먹자고 달콤하게 이야기해 줘서 정말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간 듯

맛있게 떡볶이를 먹었다. 동네엄마들이 보이는 길에서 쑥스러운 미소를 살짝 보이며

어쩔 수 없다는 눈인사를 하며 지나가긴 했지만, 봉봉이보다 더 열심히 빠른 속도로 먹어버렸다.

너무 맛있었고 묘하게 뿌듯했던 순간.


무슨 마음이었을까?

봉봉이와 친구처럼 컵떡볶이를 함께 먹는 엄마가 되어서 뿌듯하게 느껴진 것도 있고,

봉봉이가 내게 용기가 필요한 순간 나를 바뀌게 만들어 주는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따듯해졌다.


나를 씩씩하게 만들어 줄 정도로 많이 큰 봉봉이.


정말 봉봉이는 이제 꽤 컸다.

더 이상 유기농 물고기 과자 한 알에 굽실대던 그녀가 아니라,

매운 것도 안 매운 척 얼굴 빨개지며 먹을 수 있는 봉봉이가 되어버렸고

엄마가 용기를 내도록 옆에서 북돋을 줄 아는 그런 멋쟁이가 되고 있었던 거다.


고작 컵떡볶이 하나에 이렇게까지 감상적일 일인가 싶지만,

그날 내게 용기의 마법가루를 뿌려준 마법요정 봉봉이와의 시간이 너무 좋았다.


봉봉이가 내 소중한 마법사여서 참 좋은,

늦은 오후였다.


생각보다 화려한 봉봉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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