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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어멈 Dec 16. 2024

어깨에게.

나야, 늘 너랑 함께 있는 사람.



너한테 편지를 쓰게 될 줄은 몰랐어.


내가 근 40여 년을 살면서,

너에게 편지를 쓸 날이 올 줄은 몰랐어.


그리고 이렇게 오래도록 너를 생각해 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처음인 것 같아.


올해 시작하면서부터 적어도 하루에 제일적을 때는 3번, 많을 때는 8번 이상도 생각했어.

대략 6개월 단위로 계산해 보면,


하루 3번*30(일)=90번

90번씩 6개월= 90*6= 540번

하루 8번*30(일)=240번

240번씩 6개월= 240*6=…빨리 안 나온다.

계산기를 써보니 1440번.

1440+540=1980번이 나오네.

거의 2000번에 가까운 숫자야.


이렇게 우리 사이가 가깝고도 멀게 느껴지게 된 건, 꽤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올해 너, 많이 예민해진 것 같더라.


예쁜 꽃바람이 불 때,

외투를 스스로 입기가 어려워져서

정형외과 선생님을 뵈러 갔고

거기서 너의 민낯을 보게 됐어.

도톰하고 듬직한 네 겉모습과는 달리

넌 많이 왜소하더라.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우린 너와 나를 갈라놓은

‘석회’라는 녀석을 발견했어.


그 석회라는 녀석은 네가 차지하고 있는 두 곳에

마치 자기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라도 하듯

중간 연결다리처럼 자리 잡고 있었지.

생긴 건 마치 찰떡아이스를 반으로 잘라서

양쪽 네 자리에 넣어둔 것 같았어.


찰떡 아이스를 닮은 어깨 석회.


어떻게 된 일일까.


올해 약간 이것저것 내가 욕심을 부렸었지.

네가 늘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기에,

나는 괜찮나 보다 하고 널 아껴주지 않았어.

물론 생각도 하지 않았지.

아마 그게 시작이었던 거 같아.

네가 내게 서운함을 느끼기 시작한 게.


나는 자주 같은 자세로 앉아

굳은 돌처럼 몇 시간씩 앉아서 작업을 하곤 했어.

너는 중간중간 나에게 같이 이야기 좀 하자고

잠시 쉬어가자고 얘기했지만,

난 당장 내 살길이 바쁘다고 못 들은 척했어.


그게 서운했던 거니? 그랬겠지.

사실 나도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었던 일들인데.

이제 봉봉이 탱글이도 제법 컸겠다,

나도 내 살길 좀 더 구체적으로 찾아보겠다는데.

네가 이럴 줄 몰랐어.


우리가 같이 병원에 갔던 그날 기억해?

의사 선생님이 너에게 대왕주사를 놓아

그 찰떡아이스 같이 생긴 아이를 마비시켜

일부 꺼내셨지.


네가 많이 아팠던걸 알았는지,

치료가 끝나고 병원을 터덜터덜 나오는데

눈이 위로라도 하듯 눈물을 또르르 흘려주더라.


그렇게 우리의 전쟁은 시작됐어.

너를 얼러도 보고, 달래도 보고. 했지만.

잔뜩 화가 난 너는 마음이 풀리지 않나 봐.

어떻게 해야 너의 마음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나도 이제 하고 싶은 작업들 좀 해보고 싶은데.

네 도움이 정말 많이 필요한데.


나도 너한테 할 말은 많아.

너 쉬게 해 주겠다고, 봉봉이 탱글이

인스턴트도 많이 먹이고

너 좋아하는 시원한 찜질도 많이 해줬잖아.

그리고, 이런 이야기 좀 구질구질한데

너한테 많은 금전적인 지출이 있었다는 것

너도 알 거야.

내 입장에서도 그렇게 편안하지만은 않았다는 거지.


그래도 이렇게 편지로 남기다 보니,

옛날 생각들이 떠오른다.

편지라는 게 그런 거 같아.

사람 마음을 조금 더 감성적으로 변하게 하지.

네가 건강하게 있어줬으니까 가능했던

많은 순간들이 머릿속에 떠올라.




두 팔로 봉봉이를 매 순간 안아 올리며

볼에 뽀뽀를 해주었던 일들,

탱글이가 안아주길 바라는데 나는 배가 고팠을 때

네가 한 팔에 힘을 줘서 탱글이를 슈퍼맨처럼 안고

다른 팔로 밥 먹었던 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자수모양 만들어

바느질하던 시간들,

큰 그림을 그리겠다고 욕심부리며

밤새워 그림 그리던 시간들.

두 녀석이 때가 밀고 싶다고 해서 잘 익은 복숭아처럼 핑크색이 된 봉봉이와 탱글이 때 밀어주던 날,

씩씩하게 애들 둘 데리고 여행 가서

캐리어 끌던 순간들.


생각해 보니까 네가 다 편안하게

도와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었어.

사소한 일들까지 돌이켜보면

네가 더 일찍 아팠다면 못했을 일들이야.


나는 네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삶의 질이 떨어졌다고 투덜거리며

몇 번 이야기했는데, 생각해 보니

지금 이 순간이 좋지 않지만 아프면서 더

네 소중함을 느끼게 된 거 같아.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지금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을 가지지 못했을 거야.

그냥 나는 내 욕심대로

네가 버텨주기를 바랐던 거야.

글을 써 내려갈수록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

너도 얼마나 불편하고 답답했을까.


사실 제일 불편한 건 너였을거야.

석회라는 불청객이 네 연결고리를

막고 있으니 말이야.

같이 힘을 합쳐 저 못난이 석회를 보내버리자.

우리 사이를 갈라버린 나쁜 석회를!


솔직히 몇 번 육아동지들과 이야기할 때,

이러다가 몸에 사리 나오겠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 사리가 석회가 되서 나타난 거 같아.

내가 입방정을 떤 게 문제였어.

뒤늦게라도 “퉤 퉤 퉤”해서 없던 말로 할게.


석회 걔, 보니까 쉽게 자리 빼진 않을 거 같은데

우리 같이 노력해 보자.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지.

눈 떴는데 “와! 개운하다 안 아프다!”

하는 날도 오겠지!


오히려 이 글은 내 반성문이 된 거 같아.

너한테 투덜거리려고 시작한 글인데,

막상 쓰면서 돌이켜보니 내가 널 홀대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 싶어서 미안하고 속상해.


최근에 시집을 하나 샀는데,

거기에 이런 글이 있었어.

‘네’와 ‘내’의 발음이 같은 것은

서로가 서로이기 때문일 거라는 예쁜 시였어.


네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듯, 너는 곧 나니까.

나도 너한테 좀 더 친절한 좋은 친구가 되어줄게.

고생해 줘서 고마워. 어깨야.

빨리 낫길 기도할게.


아프지 않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길 바라.

Merry christmas!



2024년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둔

어느 날 저녁에 너의 소중한 친구,

봉봉어멈이.


ps.  답장은 안써줘도 되는데,

미안하지만 잘때는 좀 깨우지 말아줘.

고마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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