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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Jul 15. 2023

강함

오늘 꽤 더웠다. 갓 나온 식빵 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올해 들어 재미를 붙이고 있는 건 사람들과 1:1로 만나는 일이다. 나는 보통 모임에 나가면 1~2시간 후부터 하품이 뻑뻑 나와서 자리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타박을 면치 못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나는 모임과 안 맞는다고 생각해왔다.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지 않고, 피할 수 없는 모임만 나가곤 했다. 그러던 중 가끔 연락하는 지인과 1:1로 술 마실 일이 생겼다. 그 소식을 들은 내 친구는 "오 엄청 어색하겠는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날 술자리는 어색하지 않았고 심지어 하품도 하지 않았다(!). 이후로 내 머릿속의 데이터 센터에는 한 가지 정보가 추가됐다. 내가 다수가 아니라 1:1로 누군가를 만날 때는 의외로 텐션이 높다는 것이다. 이후로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1:1로 약속을 잡기 시작했다. 다수의 모임이 맛있는 걸 먹고 안부를 묻고 노는 시간이라면, 1:1 모임은 그 사람의 고민이 뭔지 어떤 방식과 태도로 살고 있는지 묻고 듣는 시간이었다.


하루는 학교 선배 J와 1:1로 만나 술을 마셨다. 운동을 해야 한다, 체력이 중요하다 그런 얘기를 나눴다. 그러고 며칠 후 J가 '빵떡아, 운동은 좀 했니?' 하는 카톡을 보냈다. 다행히 주말에 달리기를 한 덕분에 '응 주말에 3km 뛰었어!'라고 답할 수 있었다. 3km는 운동으로 쳐주지 않을 것 같은 J 였지만 아무튼 잘했다고 해줬다. J는 이 말로 카톡을 마무리했다. '빵떡아 강해지자!! 나도 강해질게!!' 그 후로 며칠 동안 그 말을 계속 곱씹게 되었다. '강해지자.. 강해질게...' J는 체력을 키우자는 뜻으로 말했겠지만, 나는 '강하다는 건 뭘까' 하는 질문을 자꾸 하게 됐다.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강함'을 추구해 본 적도 없다. 나와는 먼 가치였다. 그런데 대뜸 강해지라고 하다니... 


일상의 관성 속에서 살다 보니 '강함'에 대한 의문은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아침에 일어나 '왜 또 살아서 눈을 떠가지고 회사에 가야 하나' 생각하고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집에 와 맥주를 마시며 '우울하다 우울해' 하고 잠들고 다시 아침에 눈을 뜨고... 그날도 석구와 산책을 하며 우울 타령을 3절 4절 뇌절하고 있었다. 석구는 으음 우웅 듣다가 "근데... 니가 행복할 일이 있냐?"라고 말했다. 나는 'ㅇ0ㅇ!?' 하는 표정이 돼서 석구를 쳐다봤다. "아니 그렇잖아. 개노잼으로 회사 갔다가 집에 와서 우울해~ 개노잼~ 하고 다시 회사 가고. 그럼 당연히 안 행복한 거 아니야?" 나는 벽력일섬을 당한 사람처럼 멍해졌다. 


동시에 일전에 J와 나눴던 얘기도 떠올랐다. 연애 얘기였다. 나는 아무런 구애활동(?)도 안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렇게 변명했다. "안 맞는 사람이랑 만나는 게 최악이고, 아무도 안 만나는 게 중간이고, 잘 맞는 사람이랑 만나는 게 최고니까 나는 중간은 하고 있는 거 아냐?" 그러자 J가 말했다. "회피하는 사람들이 보통 그렇게 생각하지. 아무 것도 안 하면 중간은 간다고." J의 말과 석구의 말이 스르르 겹치며 내가 네 컷짜리 블랙 코미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 주인공 Bread가 울상으로 "우울해..."라고 얘기한다.

#2. 길가에 꽃이 펴 있지만 Bread는 그것들을 보지 않으며 여전히 "우울해.."라고 한다.

#3. 사람들이 다가와 말을 걸지만 Bread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우울해..."

#4. 집에 온 Bread는 절규한다. "정말이지 왜 내겐 행복한 일이 없는 거야! 너무 우울해..!!"


혹시 강하다는 건 리스크를 안고도 행복을 추구하는 게 아닐까. 나는 행복이나 즐거움을 원했지만 열심히 추구하진 않았다. 행복은 왠지 추구할수록 멀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관심 없는 척 은근히 행복이 먼저 다가와주길 바랐다. 행복과의 밀당이랄까... 우연히 행복이 찾아오면 땡큐였고 찾아오지 않아도 '그럴 줄 알았어. 난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어'라고 변명했다. 괜히 바랬다가 실망하기 싫었다. 실망이 쌓이면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실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뭔가를 추구하는 건 내게는 정말 강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실망 후에도 회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리스크를 갖고도 계속 기대하고 추구하는 것이, 그걸 지속할 체력도 함께 기르는 것이 강해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J의 메시지를 캡쳐하면서 생각했다. 하반기엔 이걸 보며 버텨야지. 버티는 걸 넘어 행복해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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