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버스에서 가장 늦게 내린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내린 후에 내린다. 배려심이 있어서는 아니고, 조금이라도 빨리 내리려는 경쟁이 싫기 때문이다. 경쟁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그 작은 경쟁도 내게는 스트레스다. 나는 선천적으로 의욕 없이 태어난 걸까, 하는 생각을 한다.
경쟁은 '1'에서 시작한다. 1에서 기원한 경쟁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1인의 몫을 해야 한다는, 회사든 어디에서든 1인의 능력을, 1인의 앞가림을, 1인의 밥값을 해야 한다는 강박은 어릴 때부터 우리를 따라다닌다. 사실 1로는 부족할 지 모른다. 부양할 가족이 있다면, 또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어 청년 한 명이 한 명 이상의 노인을 책임져야 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통계적으로도 우린 적어도 1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홀로 우뚝 1이 될 수 없고 늘 누군가에 비해서만 1이 될 수 있다. 모두가 1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1이 아니다. 0이나 다름 없다. 모두가 0일 때 1이어야만 진정한 1이다. 그것이 우리가 경쟁을 하는 이유다.
단편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의 첫 단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이 비유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아.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오는 식이지.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단점이 더 많으면 그 값은 1보다 작고 그 역이면 1보다 크고.”
“그러니까 1이 기준인 거네.”
수환이 말했다.
“그렇지. 모든 인간은 1보다 크거나 작게 되지.”
그렇게 세상은 1이 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1이 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파서 1이 되지 못하고, 희생하느라 내 것을 나눠주어 1이 되지 못하고, 갈등하느라 1이 되지 못하고, 나를 1로 만들어준 사랑하는 누군가 죽어서 1이 되지 못하고, 불구가 돼서 1이 되지 못하고... 그들은 1이 되지 못하고 비어버린 자리를 평생토록 바라본다.
소설 <인간실격>이 생각났다. 1이 되지 못하여 스스로 실격딱지를 붙여버린 인간의 이야기. 같은 이름의 드라마 <인간실격>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돈도 벌고 싶었고 부모도, 좋은 자식도 되고 싶었으나 무엇도 되지 못한 주인공들의 이야기.
아버지, 저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1이, 인간이, 그 무엇도 되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큰 비애일까.
생각해 보면 나는 1이 되지 못해서 괴롭기보다 '나는 1이 되었을까 못 되었을까'를 재고 고민하는 과정이 괴로운 것 같다. 1이 된 것 같을 땐 조금 기쁘다가 1이 못 된 것 같을 땐 비참해지는, 일희일비의 시간이 괴롭다. 그래서 차라리 누군가처럼 '실격'이라고 스스로 판결해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럼 오히려 후련하지 않을까.
1이 된다고 괴로움이 멎지는 않는다. 1이 되면 2가 되고 싶고 2가 되면 10이 되고 싶다. 예컨대 휴가를 가서 기분이 좋다가도 펜션에 주차된 벤츠를 보며 내 기아 차는 3인데 저 벤츠는 10이네 라는 생각을 한다. 그럼 나는 1을 넘었음에도 괴롭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차이를 채우기에 급급해 하며 산다. 이런 것에 지치고 슬퍼진 지 꽤 오래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