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치 : 노화가 아닌 원인불명의 흰머리
- 아직 흰색 머리카락이 나지 않을 나이에 본래 색의 머리카락에 섞여서 드문드문 나는 흰 머리카락.
-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 불균형으로 호르몬 변화가 생기고 이에 따라 멜라닌 색소가 머리카락으로 흡수되지 못해 머리카락이 검게 되지 못함(새치의 여러 원인 중 하나로 추정)
어린 시절 학교 앞 문방구에서 하찮은 것들(당시엔 소중했던)을 사는 것은 소소한 행복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그 소소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약간의 노동을 해야 했는데 그건 바로 부모님의 흰 머리카락을 뽑는 일이었다. 부모님의 흰머리는 잊지 않고 성실하게 자라난 덕분에(?) 나도 주기적으로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보통은 한 가닥에 10원이었는데, 내가 안 하겠다고 성질을 부리면 엄마는 가격을 올렸다. 한 가닥에 50원으로. 용돈이 필요할 땐 종종 오빠와 입찰 경쟁을 하기도 했다. 눈에 불을 켜고 초집중력을 발휘해 흰머리를 수색했다. 운이 좋으면 흰머리가 여러 가닥 모여있는 존(Zone)을 발견하기도 했는데 그럴 땐 "아싸 노다지!!"하고 외쳤더랬다. 당시 숙제였던 일기에 부모님의 흰머리를 뽑아 얼마를 벌었다는 얘기를 종종 썼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초등학생이었던 것 같으니 아마 부모님의 나이는 30 후반에서 40 초반쯤 되었을 것이다.
내게 용돈을 벌 기회를 줬던 부모님의 흰머리는 새치가 아닌 자연노화로 인한 것으로 추측한다. 왜냐하면 당시에 나처럼 용돈 벌이를 했던 친구들의 수가 꽤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의 연령대는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는 일반적인 나이였을 것이다. 그로부터 약 15년간 '흰머리'는 내 인생에서 잊힌 단어였다. 내 머리가 클수록 학교 앞 문방구의 소소한 행복은 시시한 것이 되어버렸고, '교복'을 입게 된 신분을 존중받아 노동하지 않아도 정식으로 용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내 손에 족집게를 쥐어 주시기보단 당신의 손에 '염색약'을 드셨다.
그 후로도 나는 무럭무럭 자라 드디어 '입사'라는 걸 하게 됐다. 나와 같은 기수로 입사하게 된 전 계열사의 신입사원들이 모여 며칠을 합숙하며 룰루랄라 마치 수학여행을 온듯한 기분으로 그룹 연수를 받았다. 뉴스에서 는 하루가 멀다 하고 취업난 얘기를 했지만 우리에겐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 한숨과 불안이 뒤섞인 지대를 벗어난 해방감과 승리감에 도취되어 앞으로 펼쳐질 꽃길에 설레기만 했다.
푸릇푸릇 생기 넘치는 신입사원들끼리의 연수가 끝나고 자대 배치받듯 내가 실제로 근무하게 될 곳으로 가서 다시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처음으로 해보는 일을 상상하면 모든 것이 설레었다. 미리 어느 학교, 어느 과 출신의 신입사원이 교육을 받으러 온다는 내용이 공유된 모양인지 동문 선배 중 먼저 입사한 선배들이 밥을 사준다고 했다. 학교가 아닌 사회에서 이렇게 만나는 게 신기하기도 해서 역시나 설레는 마음으로 식사를 하러 갔다. 8년도 지난 일이지만 그 순간이 아직도 또렷하다. 식사를 하러 나간 자리에서 학과 선배의 얼굴을 보게 된 날이었다. 꽃길에 뿌려둔 꽃들이 바스스 부서져 삭막한 회색 모래로 변하던 순간.
나와 네 살 차이가 났던 선배는 군대를 마치고 복학을 하게 되면서 나와 같은 학년의 수업을 듣던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인자하고 여유 있는 미소로 옆에 있는 사람까지 무장해제시키던 천사 같은 이미지의 선배는 할아버지가 되어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해야 하는데 눈에 담긴 그의 모습이 과히 충격적이었다.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해야 해! 아무렇지 않은 듯이! '흰머리'란 말은 빼고!!!' 속으로 다급히 외치는 동안, 놀라 땡그래진 눈을 풀지 못한 채로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표정관리 못하는 편..).
선배의 나이는 고작 서른이었다. 입사 4년 차였다. '집에 큰 우환이 있으신가?', '어디 몸이 많이 안 좋으신가?' 선배의 누렇게 뜬 안색과 할아버지가 된 흰머리를 설명해줄 뭔가가 필요했다. 그를 그렇게 만든 범인이 회사가 아니라는 증거가 필요했다. 그건 나의 꽃길과도 연관이 있었으니까. 물론 증거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4년 동안 특별히 아끼지 않았는데 1억을 모았다고 기뻐하며 말하던 선배는 끝내 몰랐을 것이다. 그날 나를 슬프게 했던 건 사실 누런 안색과 흰머리가 아니라 더 이상 생기를 찾을 수 없는 눈과 어쩔 수 없이 짓고 있는 희미한 미소였다는 것을. 옆 사람마저 편안하게 만들었던 보석 같은 선배의 미소는 어디로 간 걸까. 정말 외쳐 묻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살고 계시는 거냐고.
꽃 길이 아닌 삭막한 모랫길을 4년째 걷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집은 삼대가 덕을 쌓지 못했는지 불행히도 나의 팀장은 분노조절 장애자였다. 팀장의 그 몹쓸 성질머리는 팀 분위기 전체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중에서도 주 타깃이 된 사람이 있었다. 나의 사수였던 여자 대리였다. 대리님은 버티고 버티다 진지하게 정신과 상담을 받고 싶어 할 정도였다. 모두가 안타까워했지만 안타까워하는 당사자들도 위태롭긴 매한가지였다. 어느 날, 뭘 물어볼 게 있어서 대리님 자리로 갔다. 대리님은 앉아 있었고 나는 서있었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니 대리님 정수리가 보였다. "억!!! 대리님!!!! 흰머리!!" 하자 사수는 거의 죽어가는 소리로 "응... 알아... 갑자기 엄청 많이 생겼어....." 했다. 머리숱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머리를 넘기는 족족 흰머리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나이 마흔 중반인 그놈의 팀장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머리카락이 새카맣고 윤기가 좌르르 흘렀는데, 그 사실을 생각하면 더 스트레스를 받아 우리 머리에 흰머리가 자라날까 봐 그런 생각도 짧게 했다. 참, 대리님은 고작 서른하나였다.
그 후로 다시 2년쯤 지났을 때였다. 흰머리 그득 했던 대리님은 지옥 탈출 열차를 운 좋게 얻어 타고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 그 대리님의 자리는 이제 내 포지션이 되었고 불행히도 분노조절장애 팀장은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냥 생존을 위해 자아를 버리고 해탈의 심정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그날도 점심 식사를 한 후에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고 있었는데, 거울에 비친 내 정수리에서 머리카락 한 올이 반짝! 빛났다. 빛에 비춰서 그렇게 보였겠지... 생각하려는데 긴 머리가 아니라 자라난 지 얼마 안 된 새싹인 점이 불길했다.. 그때 화장실로 들어온 다른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나 흰머리 있어..?" 직원이 뒤에서 내 머리를 이리저리 쓸고 들쒀보더니 별안간 "히익!!" 했고, 그 소리에 나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내가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구나... 내 나이 서른하나였다.
그 뒤로 몇 년을 더 다니다 퇴사를 했다. 다행히도 퇴사 후로 내 머리에선 흰머리가 꽤 자취를 감추었다.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 신기했다. 얼마 전 운동을 하러 갔는데 같이 운동하는 친구가 갑자기 울상을 지으며 우울하다고 했다. 그 친구는 내가 퇴사한 회사의 옆 회사에 다니는 친구였다. "회사 사람들이 내 머리 보고 놀래.. 흰머리 엄청 많다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나한테 염색하라고도 했어" 이 나이에 벌써 염색을 해야 하냐며 푸념했다. 친구 나이 나와 동갑이었다.
친구의 푸념을 들으며 내게 충격적이었던 새치들이 연거푸 떠올랐다. 아니, 이 정도면 회사의 생산성과 직원들의 흰머리 생산량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논문이라도 한편 나와야 하는 거 아닐까. 아니면 대한민국 GDP에 따른 새치 발생 연령 추이 변화 그래프라도... 알고 보니 새치가 없으면 우리나라 경제 발전이 더뎌지는 건 아닐까? 사실 우리나라의 생산성의 비밀은 새치에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