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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by Nov 22. 2024

건강하게 달리는 법

데이지를 위하여

제목은 이렇게 적었지만, 이건 달리기를 위한 근육 보강이나 관절 관리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달리는 일의 기쁨을 호소하는 달리기 건강법 정도가 되겠다.


달리기 시작한 지 8개월이 되었다. 시작하기까지 고민만 족히 6개월은 걸렸으니 이제야 좀 본전을 찾은 셈이다. 그동안 겪은 작은 변화는 체중이 3kg 정도 빠지고, 시큰둥하던 식욕이 올라왔다는 것. 큰 변화는 머릿속이 꽃밭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주목한다. 성격상 불안과 염려가 다복해서 사소한 신경 쓰이는 일도 하루를 잡아먹을 정도로 불어나는 사람에게 달리는 루틴이 생긴 후 걱정이 사라졌다는 것은 굉장한 효과라 할 수 있다. 엄밀히는 걱정 씨앗이 좀처럼 싹을 틔우지 못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 덕분에 너른 마음으로 꽃밭의 정신 상태를 유지하며 일상의 순간을 즐기는 요즘이다.


그저 달리기를 한다고 걱정이 사라질 리는 없다. 요인을 생각해 보니, 짐작되는 두 가지가 있다. 우선 걱정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졌다. 운동을 한다고 일을 덜할 수도, 집안일이 줄어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전엔 집에서 가볍게 하던 홈트레이닝을 달리기로 바꾸고 난 후 일과는 더 빠듯해졌다. 그런데도 오히려 여유가 느껴지니 신기한 현상이다. 두 번째는 걱정의 씨앗을 운동 시간에 쏟아 넣는 것이다. 신경 쓰이는 일을 무한정 붙들고 있는 대신, 이따 생각하자 싶어 미뤄둔다. 사실 달리다 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 시간을 마법상자처럼 여기고 걱정을 그 안에 넣어버린다. 그 상자는 불안과 화, 짜증과 서운함 모두 넣고, 문을 닫았다 열면 어느새 사라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몸집을 부풀리는 염증 없이 본질만 남긴 그것들은 어느 쪽으로든 명쾌한 해결책과 함께 돌아오기도 한다.


달리면서 잃은 것도 많다. 무릎과 발바닥, 허벅지가 아프고, 볼살은 더 줄었다. 건강하게 달리려면 페이스를 조절해야 한다는 조언을 많이 듣는데도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오버페이스라는 걸 알아도 현재로선 걱정 대신 할 수 있는 다른 의미로 나의 건강한 노력이라서다.


달린다는 건 새하얀 데이지가 가득 피어 폭신한 들판 위로 나를 던지는 것 같다. 충실하게 달릴 수 있는 시간의 소중함, 달린 후 살아 있는 느낌, 보이지 않는 그림자에 지배당하지 않는 홀가분한 기분까지. 그것은 잠깐이지만 나를 삶에 아무런 괴로움도 없는 사람(세상에 존재하지 않는)으로 만들어 준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가장 고마운 마법상자를 오래 지키기 위해 좀 더 게으르게 달려보려고 한다.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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