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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Apr 10. 2018

45. 카누 타기... 공짜가 좋아

엄마와 딸이 함께 한 유럽 감성 여행


뤼세피오르 (Lysefjord)를 가슴 한 가득 품은 채, 다음 목적지인 프레케스톨렌 (Preikestolen)으로 하이킹을 가기에 가까운 장소에서 숙소를 찾기로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순탄하지가 않았다.


근처에서 숙소를 찾아 맴을 돌았으나 우리가 머물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다시 텐트를 치고 잘 만큼 무모한 도전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결국 9시가 넘어가면서 오늘도 길 위에서 밤을 지새워야 하나 불길한 생각이 스멀스멀 들던 즈음, 딸이 어렵게 내비게이션에 잡힌 호텔을 찾아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렇게 찾아간 호텔도 이미 만원. 그나마 호텔 직원은 그곳에서 1시간 남짓 거리의 캠핑 장을 안내해 주었다. 다만, 캠핑 장에 우리가 묵을 수 있는 캐빈이 비어있을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지막 희망을 찾아 달리는 길은 우리의 조바심 따위와는 상관없이 아름답기만 했다. 끝없이 계속되는 산과 긴 터널, 크고 작은 폭포를 뒤로 하며,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이 되어 간신히 찾아낸 숙소, 노르웨이에서의 두 번째 캠핑 장이다.


물 먹은 솜처럼, 푹신한 침대와 한 몸이 되어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 맞이한 아침. 지난밤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우리 앞에 나타난 문 밖의 풍경은.. '천국'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아침을 먹자마자 바로 짐을 싣고 프레케스톨렌 하이킹을 시작으로 다시 길을 떠나야 했지만, '천국'을 조금 더 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우리는 강행군 대신 평화로운 휴식을 선택했다. 피오르가 바라보이는 숙소와 푸른 들판에서 뒹굴다가, 맥주로 목을 축이고, 우리가 지나 온 길들을 되새김질하며 글도 끄적거리면서, 그냥 그렇게..


원래의 계획이 어긋났다고, 등산을 포기했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 앞에는 대신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또 다른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통상, 피오르를 즐기는 방법에는, 피오르를 따라 달리거나 유람선을 타는 것, 산 위에서 피오르를 내려다보는 것,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면, 피오르에서 카누를 타는 것이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흔히 즐기는 놀이라 하지만 거기까지 욕심을 부린 적은 없었는데.  

캠핑 장 주인은 우리에게 카누를 타고 싶으면 공짜로 빌려줄 수 있다고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했다. 호수에서 수영을 하거나 선탠을 하기에 좋은 작은 비치도 있다면서 카누를 타는 곳까지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혹시라도 입을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챙겨 온 비키니도 있겠다,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을 하기 전의 두려움 따위는 벗어던지고, 바로 카누를 타러 갔다. 숙소 앞에서 우리를 맞이 한 푸른 호수. 계획한 적이 없는 좋은 일이 이렇게 일어나는 것은 인생에서 아주 가끔씩 주어지는 덤 같은 것이다. 우리에겐 그걸 즐겨야 할 의무가 있다.  

두려운 마음은 벗어던지고, 수영복 시선 따위도 잊어버리고, 피오르에 몸을 던진 오늘. 마냥 행복한 하루이다.



날이 밝으며 모습을 드러낸 두 번째 캠핑 장. 참 어렵게 기적처럼 찾아낸 곳. 천국은 원래 그런 곳이다.


마시며, 뒹굴며,

끄적거리며...

천국에서 보낸 어느 한가로운 하루


  카누가 좋아. 덤이라서, 공짜라서, 더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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