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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May 08. 2018

46. 엄마와 딸

엄마와 딸이 함께 한 유럽 감성 여행


‘엄마와 딸’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 한 마디의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 관계를 나와 딸은 짧게, ‘피를 나눈 동지’라는 말로 표현하기로 했다.  

‘피’라는 단어가 누군 가에게는 좀 섬찟하거나 원초적인 느낌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엄마와 딸은 진하게 피로 엮여 있다. 엄마의 몸을 빌려, 생명의 핏줄을 타고 이 세상에 온 이가 자식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엄마를 통해 이 세상에 오지만, 엄마와 딸의 관계는 뭔가 특별하다. 둘 다 ‘여성’이라는 점에서 일까? 복잡한 스펙트럼이 쌍곡선을 이루며 매우 다채롭고도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

엄마와 딸은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이면서 때론 라이벌이며, 더할 나위 없는 위로이면서 고통이 되기도 한다. 기쁨이고 슬픔이며, 희망이자 절망이기도 하다.  

많은 엄마들이 딸을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해서 딸이 개체라는 사실을 잊기도 한다. 자신의 욕망을 자식의 행복이라고 착각한다. 딸들은 자라면서 엄마에게 애착과 엄마로부터의 분리를 반복한다. 이런 혼란을 미움이라고 착각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언젠가 내가 딸을 낳게 된다면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모성애’ 보다는 ‘동지애’로 맺어진 관계를 막연히 상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친구 같은 엄마.. 언제나 딸의 편이 되어 주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 주며, 나와는 다른 인격체를 가진 인간으로 배려하면서, 세상을 살아갈 힘이 되어 주고, 공통의 주제로 일생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는 그런 엄마. 이런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은 사실 말 그대로 나의 이상이다.

한 편으론, ‘이상적인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일까, 그 이전에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하는 자문을 해 볼 때도 있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는 머리와 가슴의 거리만큼 평행선을 달릴 때가 많기 때문이다. ‘피를 나눈 동지’란 어쩌면 이 둘의 조화일 텐데,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조화’이다.

어찌 되었건, 결국은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의미일 텐데, 과연 좋은 엄마란 어떤 사람일지 계속 질문을 하게 된다. 아무래도 엄마란 자식을 낳는 순간에 되는 것이 아니고, 자식과 함께 자라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딸을 키우기도 했지만, 딸이 나를 키웠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천국’과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길을 떠난 뒤부터, 나와 나의 ‘동지’인 딸 사이에 긴장감이 계속되고 있었다. 노르웨이 남서부의 항구 도시 베르겐 (Bergen)을 향해 가는 긴 여정을 앞에 두고, 폭포와 설산, 호수들이 숨 가쁘게 펼쳐지는 아름다운 길 위에서 딸과 나 사이에 걸쳐진 한랭 전선.  

여행을 시작할 때 우리는 나름의 역할 분담을 했다. 내가 딸 보다 잘하는 것은 운전이었으므로 운전대는 전적으로 내가 잡는 것으로, 대신, 첨단 기기에 좀 더 능숙한 딸이 인터넷이나 내비게이션으로 길 찾기를 맡는 것으로.

그런데, 운전도 운전이지만, 내비게이션으로 길을 찾는 일은 생각했던 것만큼 간단하지가 않았다. 우선 노르웨이어로 된 그들의 지명은 영어로 된 우리 차의 내비게이션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노르웨이 알파벳은 영어 알파벳과 비슷하면서도 달랐고, 개 중엔 요상한 암호 문자 같이 생긴 것이 섞여 있기도 했다. 마치 1446년 우리의 훈민정음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앤티크 한 느낌의 글자들..


딸은 자신이 운전대를 잡아 보겠다고 떼를 썼다. 내비게이션 작동과 길 찾기에 너무 지친 것일 수도 있고, 폼 나게 달리는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장거리 운전을 도맡아 하고 있는 엄마의 힘을 덜어주고 싶다는 발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굳이 서툰 과업을 떠 안거나 떠 안기고 싶지는 않았다. 마지못해 운전대를 넘겨주긴 했지만, 마냥 편하게 풍경을 감상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좌불안석. 계속되는 나의 잔소리와 간혹 나도 모르게 비집고 나오는 비명에 가까운 신음 소리에 딸의 신경 줄은 면도날처럼 날카로워지고.. 결국, 커브 길에서 갑자기 마주친 차를 피하려다 아슬아슬하게 옆 가드레일을 스치고 말았다. 나는 십 년을 감수한 기분이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운전대를 놓지 않으려는 딸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딸의 고집에 나는 나대로 화가 치밀었고, 딸은 딸대로 기분이 몹시 상한 모습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Odda에서 하루 밤 묶어 갈 캐빈을 구하고 짐을 풀었다. 한랭전선은 걷힐 것 같지 않았고, 여행을 그만두고 싶을 만큼 여행의 최대 고비를 맞은 기분이었다. 화를 풀든지, 다스리든지, 뭐든 해야 했기에 결국 혼자서 산책을 나섰다. 조금 걷다 보니, 피오르드를 배경으로 펼쳐진 잔디밭에 노을이 지고 있는 데, 그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과 우리의 상황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눈물이 나게 속이 상했다.  

노을이 곧 질 것 같았다. 여행을 하면서 딸과 요가 사진을 찍자는 이야기를 줄 곧 나눴었는데, 그곳은 꿈속에서 그리던 바로 그 장소이고 지금은 바로 그 시간이었다. 순간, 결국 지나가고 말 감정을 붙드느라 또한 지나가고 말 그 순간의 노을을 붙잡지 못한다면 평생 후회하게 될 것 같은 마음이 일었다. 아무리 속이 터지는 상황에서도 먼저 손 내밀며 다가가는 이는 엄마여야 한다는 ‘이상적인 엄마’로 다시 채널을 맞추고, 나의 동지를 데리러 캐빈으로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내가 딸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것처럼, 딸도 엄마인 나에게 좋은 딸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했다. 내가 나인 것처럼, 딸의 성격과 개성도 그 만의 소중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했다.

딸도 언제나 엄마의 힘이 되고 싶다는 것, 엄마에게서 받은 사랑에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어 한다는 것. 하지만, 때때로 그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사실은 답답하고 속상하다는 것. 서로에게 지우는 부담은 어쩌면 서로에 대한 넘쳐나는 배려와 사랑 때문이라는 것.


좋은 엄마, 좋은 딸이 되고 싶은 우리는 오늘도 이렇게 자라나고 있다.  



“Fresh Cherry”– 여행의 벗이 되어 준 제 철 맞은 체리. 체리를 파는 사람들을 길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무인 판매대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멀리 보이는 눈덮힌 산들
눈을 두는 곳 어디든 펼쳐지는 폭포, 폭포들
바다처럼 드넓게 펼쳐지는 피오르드, 피오르드..
터널, 터널들 – 터널 안에 로터리도 있다.
아름답고도 위험한 길이 이어진다
캠핑 장 Kjaertveit Camping 앞의 산책 길
노을이 지려한다. 지금, 여기가, 바로 내가 꿈 꾸던 곳이다.


하늘 끝까지 닿아라. 높이 저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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