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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May 22. 2018

48. Norwegian Wood

엄마와 딸이 함께 한 유럽 감성 여행

우리의 다음 목표는 노르웨이 여행의 하이라이트, 그 길이가 200 km에 이르는 노르웨이 최장의 피오르인 송네 피오르 (Sogne Fjord)를 감상하며, 내륙으로 깊이 파고든 그 협만의 끝을 장식하고 있는 빙하를 탐험하는 것이다. 지도를 검토해 본 결과, 그곳으로 가기 위한 최적의 루트는 플램(Flåm)을 지나 송달 (Sogndal)로 가는 것이었기에 일어나자마자 우리가 그린 큰 그림을 머릿속에 되새기며 떠날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른 시간이었는데, 전 날 우리의 은인이었던 Glen이 급히 우리를 찾아왔다. 그리고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플램의 터널에서 화재가 발생해 근처의 모든 통행로가 출입 통제되고 있다는 아침 뉴스였다. 사실, 이런 ‘고급 정보’는 현지인이 아니고서는 접하기 힘든 그런 내용이다. 전 날 저녁, 플램을 거쳐서 송내 피오르와 빙하 탐험을 떠날 거라는 우리 모녀의 의기양양한 모험담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있던 ‘이웃 주민’의 따뜻한 마음이 마음으로 전해지는 순간이다. Glen은 직접 프린트한 상세한 지도를 보여 주면서, 베르겐에서 북쪽으로 달려 두 번의 페리를 타고 크나르빅 (Knarvik)을 거쳐 송달(Songndal) 쪽으로 가는 길을 추천해 주었다. 장엄한 피오르의 위용을 마음껏 감상하며 달리다 보면 그 끝에서 빙하가 우리를 반겨줄 것이라면서.


모녀의 모험담을 계속 듣고 싶다며 건네 준 이메일 주소와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는 Glen의 배웅을 받으며 송네 피오르를 향해 길을 떠났다. 피오르를 건너고, 피오르를 따라 달리며 정말 원 없이 피오르를 감상했다. 노르웨이의 피오르는 강이고, 호수이고, 차라리 바다였다. 무엇보다 물(water)이었다. 이렇듯 풍요로운 물을 아끼며 깨끗하게 지키고 있는 이 나라가 참 부러웠다. 달리고 달려도,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자연의 위대한 아름다움에 가슴이 뜨거웠다. 안 먹어도 이미 배가 불렀지만, 피오르가 바로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길 위에서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펼쳤다. 흰쌀밥과 취나물 무침, 올리브에 고추장을 곁들인 소박한 점심이다..

 

마침내 송달 근처에 다다랐다. 우리가 묵을 캠핑 장의 작은 오두막은 눈 앞에 송네 피오르가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노르웨이 숲 (Norwegian wood) 속에 노르웨이산 목재 (Norwegian wood)로 지어진 조그마한 커티지 (cottage)였다. 오두막 안에는 작은 나무 책상과 나무 등걸이 의자, 나무 침대가 소박하게 놓여있던 곳. 밤새 이 작은 오두막에 비가 쏟아졌다. 이렇게 숲 속의 나무집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깨어 있기에도 잠들기에도 좋은 그런 소리이다. 나는 젊은 시절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 (우리나라에서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을 떠올리는 한 편, 비틀스의 노래 “Norwegian wood”를 들으며 깨어있는 쪽을 택했다.


무라키미 하루키는 비틀스의 이 노래 제목을 가져다가 자신의 책에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비틀스의 노래 “Norwegian wood”가 ‘노르웨이 숲’을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오히려 노르웨이산 목재나 가구를 말하는 것이라는 설이 유력한데, 노래 가사는 너무 짧고, 단순하고, 그래서 그 행간을 읽기가 애매한, 그냥 마음대로 상상하게 놔둔 듯한 그런 노래 가사이다. 다만, ‘창창’ 감기는 시타르의 신비한 선율 때문에 중독적으로 자꾸 듣게 되는 그런 노래이다. 분명한 것은, 비틀스의 이 노래는 하루키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것, 둘은 감성적으로 닮아 있다는 것이다.

청춘, 설익은 아픔과 상처, 성적 판타지, 상실감, 아득한 내면의 세계와 외부로 이어지는 현실의 세계, 그리고 그 중간 어디쯤의 방황..


책 제목과 노래 가사 내용이 같든 다르든 그게 뭐 대수랴. 이렇게 멀고 먼 나라 노르웨이 땅을 밟았다는 것, ‘노르웨이 숲’ 속의 작은 노르웨이 통나무 집에 들어,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에 비친 나의 청춘 시절을 추억하며, 내 청춘의 레전드인 비틀스의 ‘Norwegian wood’를 듣고 있는 지금, 이 비현실적인 현실이 그저 꿈같기도 하고, 한 편 분명히 내 인생의 소중한 한 순간이라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잠들기 아까운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피오르와 설산이 바라 보이는 노르웨이 숲 속의 오두막
피오르를 따라 달리고..
그저 바라보고..
피오르를 따라 옹기 종기 모여있는 집들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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