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 young Aug 28. 2018

55. 접촉 사고

엄마와 딸이 함께 한 유럽 감성 여행

스웨덴 국경을 넘어서면서 딸은 내게 모종의 내기를 걸었다. 지구 상에서 제일 잘 생긴 남자 1위가 스웨덴 남자라는 발표 (근거나 출처는 모른다)를 들은 적이 있던 우리는 각자 제일 잘 생긴 남자를 발견해서 서로 견주어 보자는 데 의기투합한 것이다. 어차피 취향의 문제이니 이기고 지는 문제는 아니고, 발견해서 뭐 어쩌자는 것도 아니지만, ‘세상에서 제일 잘 생긴 남자를 찾아내고 말 테다’라는 결의에다가 우리에게 찜을 당한 남자들을 놓고 벌어질 토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스톡홀름은 여러 개의 반도와 섬이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도시로, 딸은 우리가 머물 장소로 작은 섬 안에 있는 선상 호스텔을 예약해 두었다. 배 위에서 이색적인 밤을 맞이할 생각에 들뜬 기분도 잠시, 우리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에 부딪치고 말았다.

우리가 스톡홀름을 찾은 이 날은 마침 대대적인 트라이슬론 경기가 있던 날이었는데, 영문도 모른 채 도착한 도시는 온통 축제 분위기에 경기를 위해 섬으로 들어가는 길목마다 교통 통제를 하고 있었다. 골목 어귀에서 계속 차를 돌려 나와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찾아들어 간 다리 앞 골목에서 다시 한번 차를 후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후진 기어를 놓고 액셀을 밟는 순간, 오른쪽 후미에 ‘쿵’하며 묵직한 것이 부딪쳤다. 같은 골목으로 길을 찾아들어오던 지프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결국 여기서 사고가 나고 마는구나.." 동시에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여기서 협상을 잘 끝내서 경찰서까지 가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목소리에 잔뜩 힘을 준 채 뒷목을 잡고 내리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며 잔뜩 겁을 먹은 채 차에서 내렸다.  


스웨덴 사람으로 보이는 훤칠한 키의 남자 둘도 차에서 내렸다. 겁이 나서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지만, 순간적인 스캔으로 내 시야에 들어온 두 사람의 첫인상으로 말하자면, 하나는 순했고 다른 하나는 까탈스러웠다.

아마도 두 사람의 표정에서 받은 느낌이었으리라.

다친 데는 없는지 묻는 나의 질문에, “그 정도로 다치지는 않는다”, 자신의 차를 살펴보면서, “별 문제없다”라고 쿨하게 나를 안심시킨 사람은 물론 ‘순한 남자’ 쪽이었다.

그렇게 해서 ‘순한 남자’는 끝까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까탈스러운 남자’를 데리고 훌쩍 가던 길을 가버렸다.

  

그 자리를 한참 벗어난 후에야 차를 갓길에 세우고 우리 차의 상태를 확인했다. 오른쪽 후미가 깊이 파인 채 사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우리 차가 이 정도인데 상대 차는 정말 조금도 다치지 않았던 걸까?’ ‘내가 100프로 잘못한 상황이 아니지 않았을까?’ '시시비비를 좀 더 따져 봐야 했던 건 아닐까?' 뒤늦게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낯 선 외국 땅에서 경찰서까지 가게 되는 상황을 면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아무튼, 이로써 ‘풀 커버’ 차량 보험을 든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음이 증명된 셈이다.  


그러고 보니, 스웨덴에서 격하게(?) 만난 두 스웨덴 남자들의 얼굴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하나는 ‘순한 남자’였고, 다른 하나는 ‘까탈스러운 남자’ 였을 뿐이다. 너무 놀란 나머지 누가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볼 여유가 없던 탓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찬찬히 뜯어보지 못한 게 여간 아쉽지가 않다.

즐거운 상상으로 시작한 내기는 교통사고로 만난 두 남자에게 모든 영광을 안기는 것으로 그렇게 흐지부지 막을 내리고 말았다.




먼 타국의 배 위에서 옛 직장의 후배를 만났다. 사람의 인연이란…
배 위에서 맞은 스톡홀름의 밤


스톡홀름 시내 전경


스톡홀름 모던 뮤지움 – “After Babel”이라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54. 나 가거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