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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May 10. 2020

[나도 작가다]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나의 미국 유학 도전기


오십이 넘어, 많은 사람들이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에 난 미국 유학을 떠났다. 새삼스럽게 학위가 필요해서도 아니었고, 청춘 시절 못다 이룬 꿈을 보상받으려는 허영심은 더욱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유학을 떠날 수 없는 이유는 열 가지도 넘었다.
돈도 없고, 나이도 너무 많고, 영어로 공부를 할 수 있을지 두렵고, 혼자 남아 생활할 아들도 걱정되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딸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가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하필 이 나이가 되어서 나에게 찾아온 기회를 그냥 외면할 수는 없었다. 이번만큼은 내 마음이 원하는 데로 그저 따라가 보고 싶었다.

기회란 항상 완벽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인생에서 기회란 내재된 소망을 푸는 열쇠일 텐데, 가공되지 않은 힌트 같은 것으로 던져지는 것이다. 그 힌트를 푸느냐 마느냐, 그 기회를 잡느냐 놓아버리느냐는 선택과 용기의 문제이다. 한, 기회는 타는 것이다.
대학 교수인 동생이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아직 가보지 못한 동부로 한 번쯤 여행을 다녀올 수 있겠구나 생각한 것이 전부였다. 다니던 직장에서 나와 아직 다음 행보를 정하지 못하고 서성이며 지내던 어느 날, 무심히 동생이 가 있는 미국 동부의 이 대학 홈페이지 서핑에 나섰다. 명망이 있는 대학,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던 친환경 건축 분야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에서였다, 그런데, 오랫동안 막연하게나마 더 공부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주제와 딱 맞아떨어지는 대학원 과정과 맞닥뜨리는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홈페이지의 온라인 “입학 예비 평가서”를 작성해서 보냈다. 학력, 경력, 공부해 보고 싶은 분야 등 비교적 간단한 내용이라 쉽게 적어 가볍게 엔터! 유학을 가겠다고 결심한 것이 아니었다. 입학 허가가 날지도 전혀 알 수 없는 일이고, 다만, ‘나, 이런 것에 관심이 있어’라는 자기표현 내지, 나의 막연한 소망이 구체화된 교육 과정에 대한 반가움에서였다. 그런데, 그것이, 그 ‘엔터’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아무런 기대 없이 보낸 평가서에 대한 답신이 바로 왔다. 입학 자격이 인정되니 바로 정식 입학 신청서를 보내보라는 것이었다. 이 지점에서 난 고무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열 가지 ‘안된다’와 직면해야 했다.

입학신청 과정은 간단하지가 않았다. 졸업 한지 30년이 지난 학위서를 대학에 신청하는 것부터가 새삼스러웠고, 다녔던 직장 상사 세 명 이상의 추천서를 받아 보내는 일, 학업 계획서를 비롯한 많은 영문서의 작성, 그리고 마지막 관문으로 해당 대학원 교수님들과의 온라인 입학 전형 인터뷰 까지. 비자 신청 절차도 간단하지가 않아서 결국은 우여곡절 끝에 출발 이틀 전에서야 간신히 우편으로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시작의 순간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 모든 힘겨운 과정을 풀어 나갈 수 있었던 바탕에는 내 마음 가짐이 한몫을 했다. 어떤 결과 보다도 그 과정 하나하나를 그저 즐기려고 노력했고,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였으며, 할 수 있는데 까지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막바지에는 약간의 오기도 작동을 했다. 오히려 유학을 가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운 것이 아니기에  어쩌면 더 가능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수많은 안 되는 이유를 지워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큰 과제였다.
나에게 수없이 물었다. ‘너무 나이가 많은 거 아냐?’, ‘이제 공부해서 뭐하려고?’ ‘학비는 어떻게 할 건데?’, ‘아들은? 엄마는?’... 신기하게도, ‘안된다’는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유학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된다’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나이가 무슨 대수야. 지금이 기회인데’,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해보는 거야’, ‘아들은 비로소 자립의 기회를 맞이한 거지’.
학비의 3분의 1은 장학금을 받아 충당할 수 있었고, 3분의 1은 일하며 모아둔 전 재산을 나를 위해 투자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어머니께서 흔쾌히 보태주셨다. 죄송스러운 마음에 돈까지 받을 수 없어 끝까지 사양했지만, “네가 이제라도 꿈을 이루게 되어 너무 기쁘고 자랑스럽다”라고 하시는 어머니를 뒤로 한 채 마침내 도전의 길을 떠났다.

나는 이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유학 중에도 수많은 도전이 있었지만, 준비할 때와 같은 마음으로 한 걸음씩 걷다 보니 결국 성취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성취 뒤에는 큰 희생이 따랐다. 어머니는 내가 학위를 마쳐가던 지난 2017년 1월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면 함께 살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성취와 동시에 상실의 아픔과 방황으로 이어진 나의 도전은 이제 내 인생의 제2막으로 다시 시작되고 있다. 난 이 시작을, 또 다른 도전을, 다시 한번 잘 이어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 어머니께서 나에게 주신 마지막 선물을 결코 헛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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