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주의-
아주 어렸을 때, 어느 날이었다. 집에 친구를 데려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오래간만에 친구를 데려와서 꽤 늦은 시간까지 함께 방에서 놀던 날이었다. 친구를 데려오는 걸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꽤 많았는데, 나는 읽지 않는 책을 친구는 열심히 읽어서 엄마가 한숨을 쉬는 것이 듣기 싫었던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또, 엄마가 친구에게 살갑게 무언가를 챙겨주는 모습이 질투 나고 싫기도 했다. 나한텐 그렇게 살갑지 않았던 거 같은데. 또 하나의 이유는 언제 우리 집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폭탄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도 나도 알 수 없었다. 폭탄이 언제 떨어져서 언제 우리 집을 박살 낼지.
그런데 하필 친구가 꽤 늦은 시간까지 우리 집에 있던 날 폭탄이 떨어졌다. 엄마의 언성은 높아지고, 우는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다. 아주 어렸던 나이에 난감하고 수치스러운 감정을 참으로 강하게 느꼈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하는 심정이었다. 이제 헤어져야 할 거 같다며 친구를 서둘러 집에서 내보냈다. 그날 유독 좀 큰 폭탄이었을까. 아님 친구가 있어서 더 크게 느껴졌을까. 그날따라 엄마는 많이도 울었다. 울부짖었다.
우리 집에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던 폭탄은 할머니의 전화다. 우리 가족의 안부를 묻고, 멀리 떨어져 있으니 보고 싶다는 전화였다면 폭탄이라고 생각하진 않았겠지. 대체적으로 할머니가 전화를 걸어서 하시는 말씀은 '이혼해라'라는 말씀이었다. 차분한 목소리도 아니고, 제정신도 아니었다. 술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엄마에게 꼴 보기 싫다는 말을 퍼부으셨다. 이렇게 폭탄이 떨어지면 엄마는 우는 소리로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일을 하다가 날벼락을 맞은 아빠와 엄마는 또 그렇게 목적 없는 싸움을 시작한다.
아주 어렸을 때의 나는 엄마랑 같이 울기도 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채로 그 시간을 견뎠다. 뭐가 문제일까, 왜 이런 상황 속에 나는 놓이는 걸까. 10대가 되고 내 세상이 생기기 시작했을 땐 이 상황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집안 어른들을 모두 원망하며 살아왔다. 맨날 당하는 바보 같은 엄마도 싫고, 중간에서 고민하는 아빠도 밉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할머니는 영원히 보고 싶지 않았다. 폭탄을 피해 도망 다니는 삶도 지겨웠다. (언젠가 한 번은 집에 다짜고짜 찾아오셔서 난동을 부리고 경비원 아저씨한테 쫓겨난 적도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다 보니 결혼은 나에게 두렵고 무서운 것이었다.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는 것은 영 반가운 일은 아니고, 내 인생에 알 수 없는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내 인생에 해가 될 폭탄을 두고 사느니 좀 외로워도 혼자서 편히 살자는 것이 30년 인생의 신조였다. 같이 살며 불행하기보다 혼자 살며 덜 행복한 것이 나에게는 훨씬 나은 방향으로 보였다. 엄마의 삶이, 또 아빠의 삶이 안타깝게 느껴졌던 것 같다.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마음의 병이 있다는 걸 짐작하기는 했지만, 어찌할 바를 몰라서 외면해 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함이 나를 휘감을 때가 많았다. 하루는 열심히 살다가도 또 하루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그러면 정말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방에만 있는 날들도 있었다. 어떻게든 혼자서 극복해려 보려고 노력하기도 했는데 최근에 와서는 도저히 혼자서는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느꼈다. 차마 시듯 즐겼던 와인 한 잔은 소주 한 병으로 늘어났고 혼자 술을 마시다가 다음날 숙취로 일정소화가 힘겨운 날도 잦아졌다. 막 밀려오는 우울감을 잠재우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고, 또 자다가 한 시간씩 깨는 일도 너무 자주 있었다. 피로했고, 또 그러다 보니 예민한 날이 많아지며 내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었다. 또 하루는 취해있는 날이었는데 정말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심리상담센터를 찾아 심리검사와 해석상담을 예약했다.
심리검사 결과를 받아보고 난 후 1년 동안 심리 상담을 꾸준히 받았다. 그러면서 나의 문제를 직면하게 되었다. 불안한 감정을 많이 느끼고 있으면서도 표현하거나 해소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다 보니 불면증이 있거나, 다른 사람 눈치를 보거나, 인간관계를 맺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향이 짙어졌다. 또 그 어떤 사람과도 깊은 관계가 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사소한 것에 불안하고 극도로 긴장한 상태이다 보니 무기력함을 잦은 주기로 느끼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나에게 결혼은 미래에 선택이 가능한 옵션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을 믿으며 함께 산다는 것이 나에겐 안정이 아니라 더 큰 불안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어떤 어려움이 와도 잘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또 어떤 어려움이든 겪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1년 동안 심리상담을 받고, 불안한 감정을 직면하면서 내가 안정감과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지내는 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은 좋은 사람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 너무 불안하고 긴장해 왔으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함을 잘 극복해내고 싶었다. 1년 동안 상담을 받으며 계속 '괜찮다'라고 사실은 그렇게까지 불안해할 필요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이 되었다. 또 어려운 일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나는 그것을 잘 극복해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인지시켜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심리상담뿐만 아니라 우울하고, 무력감이 밀려올 때마다 그런 기분을 끊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조금씩 마음을 고쳐먹을 수 있었는데, 그 힘든 역할을 남자친구가 오랫동안 해주었다. 만난 지 얼마 안돼서 많은 어려움이 있어서 상담을 받으며 극복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터놓고 이야기했고, 남자친구는 자주 내 손을 잡으며 '잘하고 있다. 행복해지자'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괴롭고, 어려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진득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아이처럼 우는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별 일 아닌데 말할 때마다 나는 자꾸 울었다.ㅠㅠ) 우는 사람 달래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내 인생에서 엄마 다음으로 우는 모습을 많이 보인 사람이었다. 상담 선생님과 함께 세웠던 목표 중 하나가 '기댈 수 있는 한 사람' 만들기였는데 나는 상담 목표를 1년 만에 잘 달성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결혼에 대한 생각도 바뀌게 되었다.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는 동반자, 그 어떤 어려움이라도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자신하는 마음이 생기니까 남자친구와의 미래도 점점 발전된 모습으로 꿈꾸게 되었다. 아주 물 흐르듯 같이 살 집을 자주 알아보고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 신혼은 얼마나 즐기고 싶은지, 종교의 다름은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남자친구가 옆에서 같이 살자고 자주 꼬신 탓에 넘어간 것도 있다. ㅎㅎ) 예식장을 알아보고, 양가 부모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나누는 과정이 나에겐 정말 버겁고 힘든 일이었다.(거의 소주 2병각...) 혼란스러움에 몇 날 며칠 눈물바람으로 지내기도 했는데 울면서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을 느꼈다. 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 밟아야 하는 많은 과정들이 나에겐 정말 배로 힘들고 지치는 일이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다.' 여전히 잘 살 수 있을까 불안한 감정도 존재하고, 내가 새로운 가족가 잘 지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지만 '이 사람과는 꼭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하다.
불안한 환경에서 지내던 어린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다르고, 힘겨운 환경에서 다툼을 선택한 부모님과 우리는 또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변하고 있던 타이밍에 운명처럼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만난 것도 한 몫하겠지. 아무튼 우당탕탕 결혼준비를 하며 조금씩 유부녀가 되고 있음을 실감하는데 생각보다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30년 비혼주의자의 신념을 깨고 선택한 나의 미래가 더 찬란하고 빛났으면 좋겠다. 잘 살아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