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대학원생이 결혼준비를 하는 것인데 어쩌다 예비신부가 대학원에 입학하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결혼은 내 인생에 중요한 옵션이 아니었다면 대학원은 늘 내 미래를 고민할 때 갈까 말까 고민했던 선택지였다. 학부 학과와는 전혀 다른 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늘 내가 있는 분야의 학문을 배우고 싶었다. 내 경력과 많은 이력들이 나의 전문성을 대변해주기도 하지만 또 어떨 때는 결정적으로 졸업한 학과가 업계 분야랑 달라서 도전해 볼 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있는 분야와 관련한 석사 학위가 있었으면 했고, 궁극적으로는 그냥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하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로 두려운 마음도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학부 성적이 정말 좋지 않다. 내 졸업 학점의 등수는 뒤에서 더 빠르게 찾을 수 있을 정도니까. 대체 어떻게 학점을 채워서 졸업을 했나 싶다. 내 인생의 미스터리.. 공부를 순수하게 해보고 싶은 마음과 과연 내가 공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부족한 자신감이 공존했다. 영어 논문을 읽을 수는 있을까? 아차차 나 같은 성적을 가진 사람이 어디 합격은 할 수 있을까? 가더라도 못 따라가서 바보가 되면 어떡하지? 별별 걱정을 다 하며 서른 살까지 대학원 진학을 미뤘다.
한편, 눈앞에 닥친 바쁜 일상으로 미룬 탓도 있었다. 대학교를 막 졸업했을 때는 일하는 게 재미있고 내 인생의 목표인 '홀로 미국여행'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하고 돈 모으고, 여행계획 짜고 아주 신나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미국여행을 다녀와서 다시 진로를 고민할 때쯤 동료들이 같이 연수(라고 부르고 동반여행...?)를 사비로 같이 가자고 꼬셨다. 다시 열일하며 돈 모으고 여행계획 짜는 아주 신나는 일이 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북유럽까지 가서 교육 탐방을 끝나고 한국에 왔을 때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덮치고 그 어떤 것에 도전하기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팬데믹 상황에서 나의 목표는 프리랜서로 살아남기가 되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은 2년 하고 나니 참으로 지쳤다. 일이 나를 집어삼킨 느낌이었다. 일이 나고, 내가 일인 상황! 일을 하다가 실수를 하면 삶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누군가 나보다 앞서 나가는 듯하면 세상의 루저가 된 기분으로 너무나 우울했다. 교실에서 학생들을 만나면서 웃고 울며 보내는 시간이 귀중했던 시간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냥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짜증 나고, 자꾸 변동사항이 있는 스케줄과 회사의 요구사항은 나를 소진시켰다. 이런 마음으로는 생존해 봤자 아무 소용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교육계에 발을 들였고,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어떤 방법이든 상관없으니까 교실에서 행복한 배움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방법이 돈을 지원하는 방법이어도 좋고, 직접 내가 그런 교실을 이끄는 사람이어도 괜찮았다. 내가 직접 배움을 만들어 가는 것에는 8년 동안 꽤 마음껏 해봤고 한계도 많이 느꼈기에 다른 방법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강의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고 좋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당장 해볼 수 있는 것 중에, 또 해보고 싶었던 것 중에 생각난 것이 공부였다.
미루고 미루다 작년에 결국 얼렁뚱땅 쓴 연구계획서와 지원서를 넣었고, 학부 졸업을 했던 학교에서 다시 한번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결혼 결심보다 더 부지런히 마음먹고 서둘렀다. 2023년 새로운 신분이 자꾸 생기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한데 설레기도 하다. 대학원생, 예비신부, 프리랜서 강사 이 세 가지 역할을 모두 잘 소화해야 하는 2023년이다. 이런저런 여행을 하느라 공부를 하지 않은지 10년이 되어 간다. (학부 때 공부 제대로 안 한 거 포함..) 당연히 들어가자마자 잘 해낼 수는 없지만 내가 그토록 원했던 '교육'에 푹 빠져서 사는 삶을 살게 되었다. 전생에 대체 무슨 죄를 지어서 대학원생이 되었냐고 하지만(일정 부분 인정), 뭔가에 또 열중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나는 달라져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