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론:아레스'를 보고
가상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언제쯤 거기에 도달할까?
여러분, 우리가 가는 게 아닙니다.
그 세계가 찾아오는 거죠.
-영화 '트론:아레스' 중에서
"느꼈어? 이거 엄청난 영화야. 담고 있는 메시지가 엄청나다고..." 함께 본 그녀가 속삭였다. 설명을 듣고 나니 그럴만했다. 그녀는 영화의 액션과 스토리만 보지 않고 세계관을 분석했다. 난 보면서 그런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는데, 그 짧은 순간에 깨달음을 얻은 본 그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 작품은 현실과 가상 세계를 번갈아 가며 보여주지만, 어디가 진짜 세계인지는 명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생각해 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진짜일까? 누군가 설계해 놓은 가상의 세계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마치 트루먼쇼라는 영화처럼 말이다. 촘촘히 짜인 도시와 계급, 부과 권력에 순응하는 시스템, 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들까지. 아주 영리한 누군가가 설계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체계적이고 치밀할 수 있느냐 말이다.
영화 중 특정 코드를 통해 생성된 '가상의 인간(프로그램)'은 현실에 나타나고, 아주 짧은 시간(약 25분)만 현실에 존재할 수 있다. 즉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설정에는 가상 세계처럼 모든 걸 편리하고 쉽게 만들기를 원하는 인간의 바람이 잘 담겨 있는 듯하다. 영원히 편리해지고 싶은 욕구 말이다. (굳이 말하면 영원할 수 없기에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도 있다고 본다) 공교롭게도 최근 인류는 그 바람을 조금씩 이뤄가고 있다. 대규모언어모델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이 순식간에 필요한 일을 뚝딱 해결해 준다.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극도의 편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점차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그건 바로 인간이 추구하는 편리함과 그를 위해 만들어진 가상세계도 영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영화가 말하는 '영속성 코드'가 그래서 중요하다. 프로그램을 현실에 영원히 잡아두기 위한 유일한 키(열쇠)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는 영원하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 제한된 삶 속에서 자꾸만 무언갈 갈구한다. 죽음이 다가올수록 그전에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욕망은 더욱 커진다. 현대에는 편하고자 하는 욕구가 그 중심에 섰다. 죽을 때까지 고생하지 않고 일정 기간이라도 편하게 사는 삶. 돈 많은 백수, 조물주 위에 있는 건물주, 파이어족이란 언어도 그런 욕구 속에서 등장한 말들이다.
하지만 모르겠다. 죽지 않고 영원하다면? 그런 욕망들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생의 부와 즐거움에 취한 우리는 이제 이런 생각조차 할 여유조차 없겠지만, 생각해 보면 오히려 우리의 마음 그 이면에는 영원하고 싶은 욕구가 여전히 깊이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왜 죽는가. 우리에겐 왜 영속성 코드 같은 존재가 없는가. 누가 그렇게 설계했는가. 생각해 보게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