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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Sep 21. 2024

빡친 직장인의 평정심 프로젝트

마음이 생각처럼 되나요

또 시작이다. 회의 때마다 하나마나한 소리를 뭐 대단한 의견인양 열변을 토하는 그를 무표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다. 컴퓨터 모니터를 내려다보며 오른쪽 귀로 들어온 소음을 왼쪽 귀로 내보낸다. 그래도 한 명쯤은, 대개 마주 앉은 팀원이 차마 고개를 숙이지 못한 채 시선을 고정당하곤 하지만. 누군가 메신저를 보내 창을 열어보니 ‘표정 좀 펴세요ㅋㅋㅋ’라고 한다. 덕분에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 “

직장에서 저 ‘언니’라는 호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여보세요, 당신이 저보다 훨씬 나이 더 먹지 않았나요? 어느 전 직장에서는 저런 호칭이 쿨하고 친근함의 표현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거의 미쓰리와 같은, 저급하면서도 상대를 무시하는 듯한 저 말투와 단어는 곧 그의 인성이 딱 고 따위라는 것을 반증할 뿐이다.


‘아, 딴생각하다 이야기를 놓쳤어요. 뭘 말하는 거죠?’ 그가 빠져있는 메신저 방에 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회의의 대부분은 하도 잡소리를 하니 집중을 하지 못했는데, 갑작스러운 질문 공격에 키보드를 두드리는 팀원들의 손가락이 바빠졌다. ‘A프로젝트 이야기인데 또 딴소리를 하고 있어요. 저희가 작성한 보고서를 읽긴 한 걸까요? 선배님이 말했던 기획안으로 가자는데요? ’부장 지시사항을 좀 정확하게 말해주면 좋겠는데, 왜 뱅뱅 돌리는 거죠? 자기 기획안 까여놓고 왜 자꾸 커버 치는 걸까요?‘ ’선배님 기획안에 자기가 낸 아이템 넣으라는 거 같아요.‘ ‘도대체 이 이야기는 3개월 전부터 한 건데… 시간 아까워 죽겠어요.’ ‘저렇게 감각도 떨어져, 이해도 부족해, 그렇다고 추진력도 없어서 저 자리에 어떻게 있는 걸까요? 진짜 화나네요.‘


이렇게 공동의 적을 향해 이야기를 나눌 동료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싶지만, 그래도 그중 제일 선배인 나까지 입을 보태는 것은 내 얼굴에 먹칠임을 직장생활 십수 년의 경험으로 깨달은 바. ‘부장도 본부장, 사장 의견에 적극 반대하지 못하고 우선 받아와서 그에게 지시했을 거예요. 근데 그도 이해 못 하면서 질문하는 것은 또 무서워하고, 또 하긴 해야 하니 스트레스일 거예요. 그래도 아예 감이 하나도 없는 건 아니니까(아이템들이 좀 구리지만) 다행이죠.‘ 팀원들을 다독이면서도 내 갈비뼈 중앙 깊숙한 곳은 빡침이 꽉 막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속이 얹힌 것 같은 기분이 도대체 몇 개월 째인가. 정신과 상담을 받을 정도로 깊은 불안과 공황이 내게 들락날락 한지도 1년이 되었다.


“안 되는 게 있겠어요? 어떻게든 하면 되죠. 팀원들 자료 확인해서 내용 추가해 다음 회의 전까지 공유하겠습니다. “

“(본인이 제안한) 이 아이템은? “

“아, 그건 안 넣을 것 같습니다. 이 기획과 방향성이 너무 달라요. 지금 트렌드나 언론에서 주목하고 있는 부분과 이슈를 연결 지을 것이 전혀 없습니다. “

“음… 그렇긴 하죠. “


휴우, 저 구린 아이템을 말도 안 되게 끌고 갈 생각을 하니 정신이 혼미했는데, 그래도 알아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팀원들 역시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렇게 일이 마무리되었음을 눈빛으로 축하하고 있을 때쯤, 그가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근데 이 아이템은 왜 아닌 거죠?”

아니, 나랑 이야기한 사람 누구죠? 여기 있는 모두가 아니라고 했잖아!!!!! 너도 그렇다고 했잖아!!!!! 귓구멍이 막힌 거야? 도대체 경력과 연륜은 어디로 처먹은 거야? 센스가 없으면 이해라도 하라고!!!!


“구려요.”

순간 욱, 하며 나도 모르게(진짜 모르게인지, 의식적으로인지도 모르게) 진실의 단어가 튀어나왔다. ‘큭큭’ 몇몇 팀원이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작게 터트렸고, 마블의 배너 박사가 헐크로 변하는 듯 그의 얼굴 근육이 굳어가는 게 적나라하게 보였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그에게 나는 오늘 최악의 하루를 선물로 준 것이다. 하지만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으니 나도 어쩔 수 없이 타격할 의도가 1도 없었다는 듯 모른 척 해맑게 굴 수밖에.


하지만 마음이 생각처럼 되나요. 머리로는 그냥 그려려니 하자고, 이 모든 것이 월급에 포함된 것이라고, 일은 회사에서만 생각하고 퇴근과 동시에 나에게만 집중하자고 해도, 마음이 답답하고 짜증이 솟구치고 눈물이 난다. 회의 내내 그가 던진 말꼬락서니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날 괴롭히는데, 내게 한 말이 아닐지라도 그냥 다른 팀원에게 한 모질고도 상스러운 말들이 내게도 상처가 된다. ‘이런 사람과 일해야 하다니. 이렇게 한 인간을 미워할 수도 있구나. 인생에 한 명쯤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싶은 사람이 있는 거지 ‘ 싶다. 진짜 직장 밖에서 만났으면 절대 만날 일도 없는, 상종도 하기 싫은 사람.


어느 유튜버가 그랬다. 어차피 짜증 나는 상사, 그가 먼저 죽을 거라고. 아니, 그냥 그렇게 쭉 유병장수하세요. 저는 무병-적당히 살게요.


*이 내용은 사실일 수도, 소설일 수도, 반반일 수도 있습니다. 읽는 그대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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