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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Apr 22. 2024

나는 더 이상 부모님을 탓하지 않기로 했다.

AMD, NVDA, 비트코인. 모두 10배 이상 벌 수 있었더라면?

0. 요약

- 살면서 부모님 탓할 때가 종종 있었다. 좀 더 나은 삶을 바라기도 했다.

- 지나간 부모님의 삶을 들어보면, 수많은 경제적인 기회가 있었다.

- 나는 2020년 3월 초, 미국주식이 폭락하기 전에 엔비디아를 몇천만 원 이상 가지고 있었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으면 30배 이상 벌었다.

- 2018년 매수한 AMD의 1주당 가격은 16.39달러였다. 지금은 10배 이상 올랐다.

- 비트코인은 어떤가. 나는 300만 원대에 내 컴퓨터공학과 선배(당시 서울대 분산컴퓨팅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음)에게 기술적인 설명과 함께 매수 권유를 받았다. 지금은 알다시피 1억 원이다.

- 나는 주식을 스물한 살 즈음에 시작했다. 10년 간 있었지만 큰 부를 얻지 못했다. 나는 그럴 깜냥도 인내심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투자 방식을 바꿨고 그나마 이 방식 덕분에 자산을 불릴 수 있었다고 자평한다.

- 사람은 자신의 잘못은 작게 평가하고, 타인의 잘못은 과대평가한다. 나는 더 이상 부모님의 탓을 하지 않기로 했다.




0-1. 더럽게도 불공평한 세상

"어떤 사람들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신이 3루타를 친 줄 알고 살아간다."

- 베리 스위처


대학 시절에 자동차를 몰고 다녔던 친구들,

어렵게 취업했더니 회사를 취미로 다니는 사람들,

집에 갔더니 사람보다 방의 개수가 더 많았던 동기들,


세상은 불공평한 것들의 천지다.

내가 흰머리가 생길 정도로 스트레스받아가며 벌어들이는 연 소득을

누군가는 주식 배당과 건물 월세로 벌어들이는 것이 자본주의 세상이다.


꼭 재산뿐만 얘기할 것이 아니다.

학창 시절 공부 안 하고 불량하게 살던 예쁜 친구는 부자에게 시집을 잘 갔고,

같은 대학교를 나왔어도 키 크고 예뻤던 선배는 연예인과 결혼했다.


그럼 나는?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살아야 할 것을,

이런저런 것들을 따져봐도 딱히 남들보다 우수한 것이 없어서 열등감에 평생을 살아왔다.


사람은 원래 아래를 보는 존재가 아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옆보다는 위를 보는 것이 모두의 스탠더드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왜 우리 부모님은 부자가 되지 못했는가.

왜 우리 부모님은 좋은 학군에서 나를 키우지 못했는가.

왜 우리 부모님은 나를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자유롭게 날 수 있게 만들지 못했을까.






1. 나라는 사람을 알기까지 8년 걸렸다.


부모님 몰래 대학교 수업을 안 나갔다. 

살면서 전 과목 F 받아본 사람 있나? 나는 있다. 


나는 나를 과도하게 고평가 했고, 지금 있는 학교보다 더 잘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부모님의 학교 등록비와 1학년 1학기의 학비를 그대로 날린 이후로 강제로 선언했다. '그동안 학교 안 나갔다'라고.


아버지는 덤덤하셨다. 너가 너의 돈을 날린 것이니 알아서 갚으라고 했다. 

10년이 지났는데도 갚지 않았으니 나는 불효자 확정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갚았으니 이해해 주시겠지.)


여차저차해서 혼자서 인강을 들으며 반수를 했고, 내가 지금은 졸업하게 된 학교를 들어왔다. 

마음에는 안 들었지만 처음으로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본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수능을 잘 볼 수가 없는 게으른 사람이었다.


인서울 4년제 했으면 됐지라는 생각과 더불어 이대로는 내 인생에 답이 없다 싶었다. 

그래서 학술 분위기의 주식동아리를 들어갔다. 활동의 대부분은 기업 분석과 주식 가치 평가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3년 정도 동아리를 활동하니 증권 투자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졸업하고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경제학과 컴퓨터공학을 복수 전공했기 때문에 나는 기술자로 형편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석사학위 하나 있으면 나름 알아주지 않을까 싶어서 도전했다.


그때 당시가 2015~16년쯤이었으므로, 해외 주식을 담고 있는 펀드에 대해서 비과세를 적용해 줄 때였다.

2024년인 지금 들으면 놀랍지 않나?


정부가 해외주식이 60% 이상 포함된 펀드를 사면 세금을 아예 걷지 않겠다고 선언한 날이 있었다.

이런 것들이 기회이자 늦게 태어난 사람들의 원죄인데, 어쨌든 이런 기회가 살다 보면 있다.


당시에 뭣도 모르고 일단 개설했던 해외 비과세 펀드



당시 나는 증권사에 다니는 친구에 추천으로 계좌를 개설했고, 이후에 꽤 많은 금액을 추가 입금해서 매수했다.


그런데 본격적인 상승장이 오기 전에 돈이 아쉬웠기에 전부 팔아버렸다.


지금 가지고 있었으면 적어도 3배는 되었을 것인데, 푼 돈이 없는 가난한 내가 여유가 없어 팔아버린 것이다.


이때 처음 알았다. 사람이 돈이 없다면, 여유롭지 않다면, 부자가 되기도 어렵다는 것을.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없는 돈으로 해외주식을 사봤다. 당시에 AMD라는 회사를 샀는데, 컴퓨터로 학사/석사를 한 사람으로서 CPU의 2인자가 평생 이렇게 죽을 쑤고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원래 빠르게 변하니까.


당시 내가 매수했던 기록


먼 곳에서 겨우 30만 원짜리 월세 살며 근근이 사는 대학원생 노예에게 돈이 어디 있나. 그런 돈이 있어도 미래를 위해 저축해야 했다. 당시에 내 명의로 3천만 원 정도 가용할 수 있었는데, 어리석게도 내가 건드리지 못하게 P2P로 분산해서 저축했다. 당시에는 예금보다 높은 이율인데 안전하다는 분위기였으므로 내가 신경 쓰지 않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투자한 몇 개는 부도가 났다. 시발.


AMD는 소량이었지만 나름 2배를 벌었었다. 쫌쫌따리로 번 걸로 투자라고 얘기하지 말라고 할 수 있지만, 해외주식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대라고 생각하면 나름 성공적인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자평하는 나만의 콜럼버스 달걀이라고 할까나.


그쯤이었는지, 내가 대학생 시절이었는지 비트코인에도 기회가 있었다.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당시 무려 업비트라는 회사가 없었을 때이므로 2017년보다는 더 이전 같다. 


비트코인이 300만 원대였던 것 같다. 기억 안 난다. 다만 최고점 8,000만 원이 갔을 때 같이 술 마시면서 얘기했던 사람들과 "그때 샀으면 20배는 먹었겠다."라고 했던 대화가 기억난다.



일련의 10년 가까운 증권 투자의 실패를 겪으며 내가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바로 나는 좋은 것을 알아서 투자를 시작했어도, 그렇게 버티지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는 부자가 될 수 없다.


나는 그래서 투자의 방식을 바꾸기로 한다. 이게 2018년 말 이야기다.





2. 강제로 환경을 세팅하라.


대학을 나오고, 취업을 하고, 이제는 곧 결혼을 앞두니까 알게 됐다.

나도 부모님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일단 태어난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나는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많은 내 주변 창업가들의 성향과 달리 나는 안전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성장해 버렸고,

다른 사람들이 보는 기회에 대해서 저평가를 하는 시니컬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과거에 부동산을 홀딩하고 있지 않았던 부모님을 원망하려는 차도 잠시,

내가 놓쳐버린 기회들을 목도하면서 나는 부모님을 탓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부모님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받고 살아가는 지금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정신머리를 고쳐먹기로 했다.

가장 먼저 했던 것은 20대 후반쯤에 연금 계좌를 개설한 것이다.


연금계좌는 그 특성상 55세 이전에 출금하면 페널티가 생긴다.

사람은 지금 당장 얻는 수익보다 손해에 더 민감하다.


진작에 해외주식을 시작한 것도 다행이지만, 독서모임을 통해서 읽은 책

"모든 주식을 소유하라"는 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적정 생활비는 넘겨놨다. 점점 불어나는 나의 노후자산.


존 보글의 "저비용 인덱스펀드를 장기로 보유할 것"이라는 일계명 아래,

매 달 들어오는 소득과 부업으로 얻은 소득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수년간의 말도 안 되는 한국장에서의 혈투를

시간을 내편으로 만들어 부자가 될 수 있는 첫걸음으로 바꾼 것이다.


S&P500은 더 이상 주가지수가 아니라 21세기 화폐가 되었다.

인플레이션과 양적완화로 우리 모두가 현실 세계의 돈이 쉽게 쓰레기가 된다는 것을 빨리 깨달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더 안전하고 성장하는 자산과 쓰레기를 교환한다.

계속 서로에게 돈을 넘기며 쓰레기를 핑퐁을 치고 있는 것이다.


마이클 세일러는 이런 관점에서 비트코인이 S&P500을 대체하는 21세기의 신 화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끼리 가치 교환 수단으로 지불하는 의미가 아니라, 

이제는 모두가 가지고 있어야만 하게 되는 그 무언가의 것 말이다.


나는 늦게나마 S&P500을 선택했다.

떨어져도 살 수 있는, 전 세계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그 공통의 금과 같은 무형의 가치로 말이다.


강제로 세팅하면서 나는 계속 분할매수를 했고,

지금은 60% 정도의 수익률을 내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자산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3. 태어난 김에 자수성가


내 주변에는 성공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보다도 어려운 환경이었고, 나보다도 아는 것이 많이 없는 분들이었다.

다만 나보다 빠르고 행동력이 뛰어났다.


그런 실천은 운을 불러왔다.

성공은 곧 행운의 여신이 손을 어느 쪽에 들어주느냐의 싸움이다.


행동으로 옮긴 사람들은 모두 행운의 여신이 관심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이제 부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니, 항상 결심했지만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가 제대로 선택하지 못한 과거는 항상 무시해 왔다.

그리고 주변 환경 탓만 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을 반성하고 있다.


정신 차리자.

앞으로 가야 할 길이 9만 리는 되어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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