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행보_完州行步25
6월은 양파를 거두는 때인가 보다. 앙파가 가득 든 빨간망들이 길가에 잔뜩 쌓여있고 공무원들이 일손을 도우러갔다는 뉴스도 봤다. 아침에 종종 보이는 다함께 일 나가던 외국인 여성들도 양파밭으로 가는 거였을까. 제철 채소라는 말이 무색해질만큼 마트에서 뭐든 살 수 있는 세상이라 관심이 없으면 어떤 작물이 언제 나는 지 모르기 일쑤다. 사실 나는 아직도 그렇다. 시골에 살기 시작했지만 농사는커녕 살림도 초보, 배울 게 많다. 그래도 채소라도 길러먹고 싶었다. 때마침 아파트에서 공동텃밭 분양을 하길래 기다려서 신청했다. 5평에 2만원, 친구와 함께 10평을 얻었다. 관리사무소에서는 두어 차례 공동작업이 있다고 했다. 한 번 참석해서 작년에 이용한 사람들이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멀칭 비닐과 지주를 걷어냈다. 두 번째는 거름주기와 로타리 작업이었는데 못 갔다.
‘로타리 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는데 정확히 뭘 말하는지 몰라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트랙터나 경운기, 관리기 등 작업기계로 땅을 갈고 파종할 수 있게끔 모양을 만드는 일이란다. 갑자기 ‘갈다’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려서 국어사전을 들춰봤더니 쟁기나 경운기 따위로 논밭의 땅을 파서 뒤집는다는 뜻. 고향이 시골이긴 하지만 우리집은 시내에서 장사를 했다. 어렸을 때부터 농사 구경도 못 해봤고 농사학교 같은 곳도 가본 적 없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 주변에 농부들 많을 텐데 인터넷으로 찾아본 건 좀 웃기지만 지금 당장은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까. 게다가 난 부끄러움이 많아서 잘 못 물어보는 편이다.
꽁냥마켓에서 고추와 오이, 호박 모종도 사두었고 읍내 종묘사에서 파프리카, 가지, 미니양배추 모종을 샀다. 아는 분이 토마토와 양배추, 브로콜리도 나눠주셨다. 텃밭농사 경험이 있는 친구를 불러냈다. 호미와 낫, 물뿌리개를 사서 친구와 함께 적당히 모종을 심었다.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되지만 알아서 자라주겠지. 태평농법이니 방치농법이니 하는 말도 있으니까.
그러고는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밭에는 딱 2번 나가봤다. 물뿌리개와 호미는 모종을 심던 날 한 번 사용하고 그날 이후 그대로 베란다에 있다. 풀을 잡으려고 산 낫은 꺼내보지도 않았다. 이제는 부끄럽고 두려워서 밭에 나가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밭에 갔을 때 고추 두 개를 수확해서 먹었는데 그 뒤로는 모르겠다. 일부러 빙 둘러 밭을 보지 않거나 옆을 지날 때면 애써 고개를 돌린다. 장마가 시작되면 나는 더 적극적으로 밭을 외면할 것 같다. 지난 주 서울에서 친구가 왔을 때 겨우 용기를 내어 같이 한 번 지나가보기는 했다. 풀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배추는 벌레 먹은 듯 구멍이 숭숭 뚫렸고 호박과 토마토는 비틀비틀 겨우 서 있었다. 잡초야 내버려두더라도 토마토 지주는 세워야 할 것 같은데 아마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런 상황에서 내가 왜 이러는지 곰곰이 따져보기로 했다. 밭에 나가는 것이 왜 두려울까? 해보지 않아서 모르는 일을 혼자서 잘 시작하지 못한다. 모든 사안에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뭐는 하고 뭐는 안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누가 보고 있으면 더 못한다. 남들과 비교되는 게 무서워서 그런 상황이 되면 아예 피하려고 한다. 그나마 누군가와 함께라면 엄두를 낸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기본이 되는 일, 쉬운 일, 남들도 다 하는 일이라 여겨질 때는 더 그러는 것 같다. 게다가 시작만 요란하지 뭐든 금방 싫증을 낸다. 이웃농부에게 배우며 텃밭을 일구려던 농부지망생은 이렇게 타고난대로 작물을 외면하게 되었다. 어쨌든 텃밭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 줄 거듭 확인하게 되었으니 이제 다음 단계는 그래서 어째야하는지 방법을 찾는 거다. 그래도 오늘은 용기 내어 밭에 가서 사진을 찍어와야겠다. 글농사는 그나마 꾸준히 짓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