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자크 상뻬, 그 감명의 포인트
장 자크 상뻬를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관련 책을 종종 선물 받는 편이다. 상빼의 인터뷰집도, 무려 한정판 합본도. 책을 선물해준 친구가 이렇게 물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의 교훈이 뭐냐며, 여느 동화들을 읽을 때 느껴지는 감명의 포인트는 어디 있냐며. 나는 대답했다.
딱히 교훈이 없어서 좋아.
꼬마 니콜라의 이야기는 유쾌하고, 낙천적이고, 익살스럽다. 사랑스러운 시트콤을 보는 것 같다. 물론 나는 고길동의 속 끓는 심정을 완벽히 이해하는 성인이지만, 이상하게 니콜라의 장난은 밉살스럽지가 않다. 그 모습이 마냥 즐겁고 행복해 보여서일까. 다소 심한 장난조차도 따뜻하게 그려내는 화풍 덕분일까.
그런데 정작 장 자크 상뻬 본인은 그다지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고 한다. 매일 부부싸움을 하는 부모님, 알코올 중독자 양아버지, 그 사이에서 홀로 외로웠을 열등생. 그는 본인의 어린 시절과 그림 속 어린아이들의 괴리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저기 말입니다. 그건 일종의 치료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림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행복한 사람을 그리고 싶었어요. 행복한 사람이 등장하는 유머러스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는 말입니다. 미친 짓이었죠. 하지만 그게 바로 내 성격입니다."
언젠가 심리학개론 시간에 Wounded-healer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세상에 상처 없이 완벽한 치유자는 없다며, 바로 그 상처에서 누군가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보면 상뻬 또한 그랬던 것 같다. 누구보다 힘들었을 어린 시절의 기억을 통해 누구보다 따뜻한 이야기들을 풀어갔던 거다. 이 사실이 어쩐지 위로가 된다.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거라더니, 그 말이 맞나 보다. 아무래도 드디어, 감명의 포인트를 찾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