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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May 25. 2019

평범하게 안녕하길 바랍니다

보통의 범위에 속해 있다는 것 




포틀랜드는 무엇보다 택스(tax)가 없기로 유명한 도시야. 그래서 미국의 다른 주보다 훨씬 물가가 싸지. 그런데 지금껏 내가 마주한 가격표는 그렇지 않았어. 독특하고 아기자기한 편집숍의 외관에 반해서 들어갔다가도 가격표를 보고는 그냥 내려놓기 일쑤였단다. 마음에 드는 엽서 한 장을 사려고 해도 한참을 고민해야만 했어. 하긴, 더 이상의 고정 수입이 없는 여행자에게 어떤 가격이든 부담스럽지 않았겠냐만은.


어느 날은 혹시나 해서 여행 후기를 검색해 보았어. ‘포틀랜드는 쇼핑의 천국!’ ’쇼핑하려면 포틀랜드로!' 같은 포스팅이 넘쳐났지. 훨씬 싼 가격에 ‘득템’할 수 있었다며 즐거운 흥분이 묻어나는 문장들,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었던 물건을 찾았다며 남긴 인증 사진들을 보며 약간은 억울해졌어. 트루먼 쇼도 아니고, 마치 이 세상에 나만 모르는 비밀이 있는 것 같았다니까. 


하지만 내 모든 의심은 Woodburn Outlet을 경험하고 난 뒤 모두 사라졌어. Woodburn Outlet은 다운타운에서 남쪽으로 40분 정도 차를 타고 나가면 나오는 커다란 쇼핑 센터야. ‘포틀랜드에 왔다면 한 번쯤은 가 보라’는 로컬의 말에 혹해서 들른 곳이었지. 이럴 때면 나 자신이 좀 우스워. 포틀랜드 안내 책자에 ‘꼭 가 봐야 할 곳’ 이라며 별표가 세 개쯤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땐 그리도 무심하더니 누군가의 지나가는 소리에는 이토록 금세 반응한다는 게. 여행자의 마음은 그런 거겠지. 누구나 가는 곳을 굳이 경험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아는 곳을 나만 놓치고 싶지는 않은 마음. 


택스가 없는 아울렛은 그야말로 쇼핑 천국이었어. 어딜 가나 세일! 반값에서 추가 할인! 무엇을 생각하든 훨씬 싼 가격! 난 그제서야 '득템’이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단다. 꼭꼭 닫았던 지갑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히기 바빴지. 아울렛에서 흡족한 쇼핑을 마친 뒤, 나는 모두가 그렇다고 하는 것에 나도 흔쾌히 동의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뭐랄까, 안도감이었던 것 같아. 내 여행이 모두가 경험했던 대로 순적하게 흘러가는 듯해 다행스러운 마음. 


Woodburn Outlet
Sale, Sale, Sale!




이미 이곳을 다녀간 많은 사람들, 검증된 여행 가이드나 블로그에서 보았던 것과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 다를 때는 일련의 감정 변화를 겪게 돼. 뭐가 잘못됐나? 하며 불안하다가도 그럼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려나, 하는 기대에 긴장하게 되는 거야. 참 신기해. 결국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다가도 아주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거야. 여행 중에는 늘 그런 복잡미묘한 마음이 생겨.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것도 나에게는 조금이나마 특별한 것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 모두가 경험하는 것을 나 역시 안전하게 누리고 싶지만, 동시에 아주 가끔은 그 보통의 범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심 같은 것. 


맞아, 평범하다는 것은 큰 안도감을 주지. 보통의 범위에 속해 있다는 것,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모나거나 튀지 않아 굴곡 없이 잔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남들처럼, 여느 일상처럼, 그렇게 안녕히 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음 한 켠에는 특별해지고 싶다는 욕망도 언제나 함께 자리하고 있어. 한편으로는 '그래도 내 삶은 특별하겠지' 기대하는 거야. 



여행이나 삶이나 참 비슷하구나. 평범하게 별 일 없이 안녕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길 기도하지만, 결국 내 삶은 조금 별나게 특별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그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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