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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Nov 14. 2019

가끔은 대단치도 않은 일들이

대단치 않은 나도 가끔은 



찰나의 부분이 좋아서 계속해서 돌려 듣는 노래들이 있어. 대체 그 부분이 왜 좋은 것인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인사도 없이 불쑥 마음에 들어온 노래들. 한때는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를 들으며 매번 같은 지점에서 울컥하곤 했어. 2절 후렴구엔가,  ‘엄마아아아아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좀 아프지 말고’ 하는 부분. ‘좀’ 아프지 말고, 에서 매번 심장이 쿵 떨어지는 거야.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좀’ 이라는 저 짧은 호흡이 왜 그토록 절절하게 느껴졌었는지, 그 짧은 음절이 대체 뭐라고 가끔 눈물까지 지었는지. 


또 한때는 짙은의 노래, <곁에>의 첫 음절만 몇 번이고 반복했던 기억이 있어. 그 노래를 처음 들었던 건 바람이 꽤 차가웠던 어느 가을, 수업에 늦어 허겁지겁 캠퍼스에 막 들어섰던 순간이었어. 손에 든 커피를 쏟을까 조심조심 걷고 있는데 이어폰에서 “…곁에,” 하고 한숨이 나왔던 순간. 노래의 첫 마디에 섞인 한숨에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어. 글쎄, 왜였을까. 그 짧은 숨이 왜 그토록 쓸쓸하게 다가왔었는지. 그때 나를 둘러싼 모든 공기가 대체 왜 쓸쓸하다 못해 저릿하게까지 느껴졌는지. 


포틀랜드에서도 종종 그런 순간들을 만나고 있어. 대체 왜 좋은 것인지 육하원칙에 맞추어 또박또박 설명할 수는 없지만, 크게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마음 한 켠에 선명히 자리잡은 순간들. 

예를 들면 그런 순간. 찬란했던 낮의 태양이 지고 서서히 어두워지는 초저녁, 갑자기 하늘에 탁 하고 조명이 켜지는 순간. 캄캄해질 일만 남은 것 같았던 그 시간의 세상은 온통 분홍빛이 되었어. 길고 긴 청보라색 장막이 사방에 드리워졌지. 바람에 스치던 나뭇잎부터 발밑에 구르던 모래 한 알까지, 모두가 불현듯 같은 색을 입었어. 가로등은 아직 잠잠했고 거리의 불빛도 아직 조용했어. 세상을 밝히는 것은 오로지 하늘의 조명뿐. 그때 처음 알았어. 해 지는 저녁노을이 분홍빛일 수도 있구나. 


해가 막 지기 시작한 저녁의 거리 


정말이지 근사한 순간이었어. 도심 한복판의 공원을 지나던 나는 절로 숨을 죽였어. 내 주위에는 이 멋진 광경을 함께 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어쩐지 그래서 더 좋았어. 이상하게 너무도 고요해서 세상에 나 하나뿐인 것 같았지만 그래서 더욱 좋은 거야. 오롯이 내 것인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보들보들한 분홍색 이불에 파묻힌 것 마냥 온 마음이 포근했어. 바람에 스치던 나뭇잎부터 발밑에 구르던 모래 한 알까지, 모두가 한 목소리로, 있는 힘을 다해 나를 응원해주는 것 같아서.


한 시인은 말했지.

 ‘그는 힘없이 밥을 먹었다’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밥을 먹은 사실이 아니라 ‘힘없이’ 먹었다는 것이라고. 역사는 주어와 서술어만으로도 이루어지지만 시는 부사어를 사랑한다고. 


요즘 들어 자꾸만 이런 것에 마음이 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만 어쩐지 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들. 별 문제 없이 살아가고는 있지만, 삶에 생각지도 못한 여운을 만들어 주는 것들. 


가끔은 이렇게 대단치도 않은 일들이 감동을 줘. 분홍빛 노을이 뭐 그렇게 대단한 사건이겠냐만은, 노래에 한숨이 섞였다거나 ‘좀’이라는 짧은 부사를 썼다거나 하는 것이 대수이겠냐만은, 가끔은 이렇게나 사소한 일들이 그 어떤 것보다 마음에 큰 진동을 일으켜.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대단치 않은 나도 가끔은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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