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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May 30. 2021

신과 함께

20210530

  권사님이 떡을 주셨다. 책방을 일요일에만 열고 있어 교회에 다녀온 권사님이 주신 떡을 가끔 받아 먹는다. 세탁소 주인이자 건물주이자 두 아들의 어머니이자 권사님인 직함 많은 할머니께서 나눠주신 떡이다. 교회에서 받은 떡을 먹으며 불교의 말씀을 읽고 있다. 나는 곧 퇴사한다. 1년은 더 다니고 싶었다. 이제 평일에 서점을 열지 못한다는 괴로움은 많이 줄어든 상태다. 그렇지만 서점이 아니더라도 회사만 두고 보았을 때, 나는 이곳을 나오고 싶어 졌다. 이 생각을 연말부터 줄곧 해왔으니 반년은 버틴 것이다. 첫 직장이고 첫 퇴사다. 사람들 말처럼 붙잡을 수 없는 이유를 말해야 하는데, 솔직하게 업무 불만이라는 이유로 관두겠다고 하니 회사는 업무 변경으로 몇 번 붙잡았다. 그때마다 참고 더 다녀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 어차피 답은 퇴사인데, 단호하지 못하고 생각만 많아졌다. 책방이 있음에도 지금처럼 투잡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몇 군데 지원서를 넣어봤지만 아쉽지도 않게 떨어졌다. 아무 준비 없이 갑작스레 한 입사였다. 그 점이 항상 스스로를 의심해야 하는 불신을 심어주었다. 먼저 직장생활을 시작한 친구는 회사를 나온 후 태국으로 떠났다. 한국에 있으면 이직 자리를 찾느라 진정한 휴식을 즐기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반은 이해가 갔고 반은 별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무슨 마음인지 100퍼센트 이해가 간다. 매달 월급을 받고 생활을 유지해나간다는 건 참 평범한 일이라 그렇지 않은 삶들을 선택하는데 무지막지한 겁을 줘버린다. 처음 책방을 시작할 때는 자취를 할 생각도 없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책방을 꾸리고 있으니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내쳐지듯 집을 나왔고 그 덕에 책방 2층으로 이사를 와 잘 된 결말이긴 하지만, 이 초조함은 아무래도 당장 책임질 내 몫의 생활비에서 나오는 것 같다. 돌려 돌려 말했지만 그냥 돈이다. 그렇지만 돌아갈 곳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정 힘들면 모든 걸 정리하고 떠날 곳이 있지 않을까. 오늘도 권사님이 준 떡을 먹으며 배를 채웠으니까.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불교의 바다를 헤엄치다 건져낸 문장. 나에게는 책방도 있고 집도 있고, 고양이도 있고 감정을 털어놓을 엄마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이 있다. 힘이 들면 힘들다고 글로 풀어낼 공간도. 이렇다 할 것을 주겠다는 사람들은 많다. 버리는 것만큼은 나의 몫이다. 권사님이 주는 떡을 받는 일은 쉽지만, 오히려 떡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거절하는 일이 훨씬 훨씬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난 지금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 잘하고 있다.

  퇴사를 하면 책방은 평일에 열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일요일 책방일지는 종료하고 다른 주제나 글감을 찾아볼 수도 있겠다. 어떤 요일에 쉴지는 차차 정해보려고 한다. 당장 조직에 입사할 마음은 접었다. 조직에 들어가지 않고 밥벌이하면서 살아보기. 나만의 프로젝트를 정했다.


  엎질러진 떡가루도 떡인 것처럼 살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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