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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Aug 04. 2021

옥수수와 신간 도서

책방수확물 1

  오랜만에 해가 지는 책방에 앉아 있다. 그간 책방은 6시에 문을 닫았다. 여름에는 6시에 책방을 나서면 한낮처럼 밝다. 낮에는 책방 조명이 너무 어두운 것 같아 조명 하나를 더 들여두어야 하나 고민하다가도 해가 저무는 시간에 딱 적당한 밝기라는 생각에 잠시 멍을 때린다. 공식적인 첫 평일 영업을 앞두고 어젯밤 괜히 잠을 설쳤다. 그 바람에 늦잠을 자 올림픽 여자 배구를 놓치고 예약을 잡아둔 미용실도 하마터면 가지 못할 뻔했다. 꼬박꼬박 회사에는 어떻게 나갔는지 고작 한 달 쉬었다고 의아해진다.

  책방은 세 시에 열어 여덟 시에 닫기로 정했다. 여는 날은 이곳에서라도 주 4일을 실천하고 싶은 마음에 수목금토로 정했다. 고로 오늘은 수요일이고 현재 시간은 19시 59분이다. 8시에 닫는다고 했지만 예상하건대 8시를 넘겨서도 이곳에 자주 남아 있을 것 같다.

  3시에 책방에 나와 여느 때처럼 택배를 정리하고 도서 배치를 바꾸고 바닥을 쓸었다. 책방 SNS 신간 입고 소식을 알리다 보면 한 시간 정도 지나 있다. 기다리던 작가의 에세이가 나와서 세 권을 주문했다. 보통 직거래를 하는 독립출판물이 아니고서야 1권만 들여놓는데 이 작가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이 세 배 정도 되어 세 권을 주문했다.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할까. 책방에서 가장 아끼고 즐거운 일은 책을 소개하는 일이다.

  최근에 근처 동네 책방인 카모메 그림책방의 사장님이 책을 출간하셨다. 책을 선물로 주셔서 단숨에 읽어 보았다. 책방을 열었을 뿐인데 작가에게 책을 선물 받는 경험도 해 본다. 아마도 책이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갔을 일들을 알게 되었다. 에세이를 읽는다는 건 그런 점에서 값지다. 붙임성 없는 내가 누군가를 더 많이 알게 되는 일이다. 덕분에 오랜만에 영화 <카모메 식당>을 다시 보았다. 2시간 남짓의 영화를 보며 카모메 사장님에게 말해주고 싶은 영화 속 대사 한 줄을 발견했다. 좋은 것(책)과 좋은 사람을 소개하는 일이 좋다.


  오늘 책방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토마토 지지대 심기'였다. 책방 앞에 심어 둔 토마토가 죽을 듯 말 듯 강하게 자라고 있는데 자꾸만 옆으로 쓰러져 지지대를 꽂아 줄기에 묶어두었다. 그러고선 동네 마트에서 산 3,500원 대추 토마토를 씻어 책방에서 먹었다. 나의 토마토는 언제쯤 그런 가치를 하려나.. 알고 보니 이 토마토는 내가 물 줄 시기를 놓치더라도 옆집 세탁소 할머니가 세탁소 나무에 물을 줄 때 같이 물을 받아먹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가 준 옥수수를 받아먹었다. '장사가 안 되더라도 문을 열어두어야 사람들이 온다, 얼마 전에는 이 책방 언제 여냐고 누가 묻길래 말해주었다, 그래도 다른 데서 돈 벌 일이 있음 그 일을 해라, 어쩜 이렇게 잘 꾸며 놓았냐, 전에 책방 주인은...' 이런 말들을 받아먹었다. 꽤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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