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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Mar 13. 2022

제주 책들이

제주에서 만난 책들

  제주에 온 지 2주가 되었다. 손톱이 많이 길러 자르고 싶지만 손톱깎이를 사는 게 아까워 참고 있다. 며칠만 버티면 되니까, 제주에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운 좋게 비 소식이 없던 제주에 비가 내린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가 반갑다. 비가 내리는 것과 상관없이 서핑을 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바다를 나왔다. 서퍼가 바다를 가는 것처럼 구 책방인인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책방으로 간다. 책방을 닫으니 어쩐지 책방과 멀어지고 싶은 마음에 여행 일정에 책방가기를 굳이 넣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자연스레 들리게 된 몇 곳을 소개한다.


  처음 들린 책방은 세화의 풀무질


함덕에 숙소를 잡고 함덕 바다를 보다 새로운 곳으로 놀러 간 곳이 세화다. 세화 바다는 내가 제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바다다. 혜화의 풀무질을 가 보아서 제주의 풀무질은 어떤 모습일지 더 궁금했다. 세화 바다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 동네 안 쪽으로 걸어가니 제주 풀무질이 나온다.

  책방 안, 카모메 그림책방 사장님이 내신 메모지 굿즈가 이곳저곳 붙여 있어 반가웠다. 혜화 풀무질의 운영을 세 명의 청년이 이어받았다는 이야기는 숱하게 들었는데, 정작 기존 풀무질이 제주로 이사 온 건 뒤늦게 안 사실이다. 혜화와 세화, 책방의 이름은 같아도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운영하는 사람이 다르고, 외관이 다르고, 내부에 흘러나오는 음악도 다르다. 특히 제주 풀무질 사장님이 틀어 놓은 음악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음악이라고 해야 할지, 내레이션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어떤 읊조림이다. 내 취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곳이 아니면 들어보지 못할 배경음이라 재밌었다. 나도 책방에서 음악이지만 읊조림에 가까운 어떤 노래를 한 곡 반복으로 내내 틀어둔 적이 있다.

  제주 풀무질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편의점 사장님께 드릴 책을 골랐다. 책은 편의점 사장이 쓴 에세이인데, 그 직업뿐 아니라 사장님과 닮은 점이 많은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 여행에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줄 선물로 책이 아닌 다른 것으로 고르려 했지만 첫 번째 선물은 뻔하게 책이다.


책을 만난 두 번째 장소, 종달리 제주 카페동네

   이번에는 제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네, 종달리로 갔다. 그동안 종달리에 와서 카페에 가고 밥만 먹고 떠났다. 이번에는 바다를 보고 지미봉에도 올랐다. 경사가 높은 지미오름을 오르는 것만으로 힘든데 바람까지 많이 분 날이라 얼른 카페로 들어가고 싶었다. 가려는 카페는 임시 휴무라 다른 곳으로 갔더니 공사 중, 그 뒤에 카페는 휴무일… 결국 전에 가 본 적 있는 카페동네로 갔다. 같이 게스트하우스 스텝을 하던 언니와 당근 빙수를 나눠 먹은 기억이 있는 곳이다. 바람이 많이 불어 따듯한 음료가 먹고 싶어 빙수는 시키지 않았다. 책을 둔 카페를 좋아한다. 남는 게 시간인 하루에 할 일이 주어진다. 여러 소설가의 단편을 모아둔 어떤 책을 집어 좋아하는 작가들의 단편만 골라 읽었다.


멀리 오게 해서 미안해요!, 우도책방 밤수지맨드라미


  밤수지맨드라미! 몇 년 전 제주 게스트하우스 스텝을 할 때 오픈 준비 중이던 책방이다. 꼭 들리고 싶었지만 준비가 길어지는지 문을 열기 전 먼저 제주를 떠나 가보지 못했다. 일단 우도에 가는 것도 중학생 때 이후 처음이라 기대되었고, 우도에서 이곳에 가장 들리고 싶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우도 바다. 구석구석 눈에 담고 싶은 책방, 내가 좋아하는 책방. 이미 인기 많은 우도이지만, 밤수지맨드라미만으로 우도에 올 이유는 충분하다.

이곳에서는 선물이 아닌 내가 제주에서 읽을 책 한 권을 샀다. 긴 여행에 배낭 하나 매고 와서 짐을 늘리기 싫음에도 책방에 들려 책을 사지 않는 일은 카페에서 음료 한 잔 먹고 나오지 않는 일과 같게 느껴진다. 살 수밖에 없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문장이라 다이어리에 필사해두었다. 구입한 책은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나는 내가, 당신이 무사했으면 좋겠다. 책방무사

  성산에서 중문으로 가는 날, 성산을 떠나기 전 무사를 들리기로 했다. 무사가 열기 전이라 옆 카페 공드리에서 시간을 보냈다. 책방이 문을 열기 전 잠시 들리는 곳이니 딱히 기대하지 않았다. 그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책방이 문을 열고 나서도 더 있고 싶어 자리에서 늦게 일어났다.

사진으로만 보던 아름상회 간판. 서울에 무사가 있을 때 요조 님이 문을 여는 책방이니 금방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 가기를 미뤘다. 그러다 제주로 이사를 오고 서울의 무사를 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무사는 다시 서울에 문을 열었다. 같은 사람이 열어도 완전히 다른 책방이지 않을까 싶어, 그 아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제주의 무사라도 갈 수 있을 때 부지런히 가 두어야지.

  구석구석 난 창이 멋스러운 곳이다. 방금 책방에 가면 책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처럼 말했지만 이곳에서는 책을 사지 않았다. 대신 CD를 결제했다. 제주에 있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대신해주는 친구에게 줄 선물이다. 새소년의 ‘자유’가 담긴 앨범. 겉에 쓰인 문구가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은 문장이라 노래도 모르는 채로 구매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노래를 들었다. 잘 샀다.


지금 이곳은 협재, 슬랩.

  이번 제주 여행의 콘셉트는 ‘유명하다는 곳은 다 가보자’이다. 혼자가 아닌 여행이라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지 않고, 실패가 없는 장소를 고르는 것도 중요해 그런 콘셉트가 생겼다. 오름에 오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산을 가거나 배를 타고 섬에 가는 일이 꺼려져 가고 싶어도 가지 않았던 곳을 둘이라고 잘 가고 있다. 줄 서는 식당도 피하는 편이지만, 새벽부터 줄을 서는 곳의 맛을 함께 맛보고 싶어 일찍 일어나 대기를 걸어두기도 했다. 다행히 실패를 피하는 것을 넘어 대대적인 성공을 해 다음에도 이 대기 시간을 감당하고 싶은 맛집을 발견했다. 발견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미 유명한 곳들이지만 말이다.


  슬랩도 그런 추천에 든 곳 중 하나다. 식당은 기대하고 가는 편이지만 카페는 그렇지 않다. 예상한 만큼의 예쁨, 특별하진 않은 정도의 맛이겠거니 하며 기대치를 낮춘다. 제주 카페는 치트키인 제주 바다와 동네 풍경을 볼 수 있어 사실 웬만하면 좋다. 슬랩도 그런 곳일 줄 알았는데, 제일 유명한 ‘크림모카’가 너무너무 맛있다. 아마 협재를 떠나기 전 다시 와 크림모카를 한 잔 더 마실 것 같다.

음료 마시는 속도가 느린데도 금세 마셔버린 한 잔. 제주 여러 카페에서 한 챕터 씩 읽고 있는 책. 아직 여행할 날이 남아 한 권의 책을 완독 할 수 있을 것 같다. 맛있는 커피를 한 잔 더 먹을 수 있는 건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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