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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왈이의 마음단련장 Feb 14. 2021

누군가를 만나는 게 쉼인가요?

[쉬는 법을 몰라서요 #06]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는 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건 몸이 파업을 선고한 거예요. 쉼에는 나를 돌보기 위한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들잖아요. 이때는 그럴 에너지가 없는 상태죠. 일단은 몸이 허락할 때까지 요양이 필요해요. 중요한 건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상태’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혼동해서는 안되는 게 아닐까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닌데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온다면, 이때는 나를 위해 적절한 쉼을 찾아 나서는 것이 현명할 거예요. 이때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마음의 노예가 되어버리면 가짜 쉼이 이어지는 일이 많아요. 머리는 바쁘게 굴러가는데, 내 몸만 누워있는거죠. 차라리 누워만 있으면 좀 나은데, 내 몸의 이완 시그널을 모두 무시한 채 핸드폰 속 세상에 살게 되는 것은 덤이죠.


쉼을 찾아나선다는 게 참 부담스러운 일로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 그게 꼭 제주도 여행을 간다거나, 눈 여겨봐둔 힙한 샵에 가서 괜찮은 소비를 하는 것만은 아니잖아요. 하루가 안 되면 반나절, 반나절이 어렵다면 1시간, 그리고 10분 이렇게 나에게 허락된 시간에 따라 쉼의 방법들을 주섬주섬 찾아보면 훨씬 다채로운 쉼을 발견할 수 있거든요. 쉼의 방법은 행위일 수도, 공간일 수도, 관계일 수도, 나에게 들려주는 한 마디 말일 수도 있죠.


오늘은 쉼 스크랩 북에서 관계 파트를 펼쳐보고 싶어요. 이번 주에 강릉에 동료들과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요. 제가 이렇게 글을 쓰는데서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미안함을 무릅쓰고 못가겠다고 말해버렸어요. 누구를 만나느냐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만나는 게 쉼인지, 쉼이 아닌지를 물어봐야하잖아요. 그 누군가의 관계보다도 나와의 관계에 좀더 힘을 실어주고, 고요함 속에서 스스로와 정직한 대화를 나눠야하는 때가 있으니까요. 지금 나는 누군가를 만나는 게 쉼인가요? 만나지 않는 게 쉼인가요?


누군가를 만나서 쉼을 찾고 싶은 때라면, 이제 선택지는 사람이 남아요. 그러다 지난 주말에 한 스님을 뵐 일이 있었어요. 아빠가 문경에 도착하기 전 꼭 들러서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며 이화령을 굽이굽이 운전해서 갔는데요. 도착한 곳은 보현정사라는 절이었어요. 들어가는 길목엔 수형이 아주 예쁜 백소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고, 곁에는 으아리가 자리 잡을 수 있게 철사로 구조를 만들어주셨더라고요. 옛 건물을 부수고 남은 오래된 나무들로 지은 법당은 삐뚤빼뚤 소탈하면서도, 중후한 느낌이 멋스러웠고요. 앞에는 원래 커다란 돌이 있었던지, 그 돌을 뽑지 않고 그대로 두기 위해 다른 구조물을 세워 계단으로 만들어놓았어요.


이 공간을 두 손으로 직접 가꿔온 비구니 스님 한 분이 멀리서 저희를 발견하고는 뛰어오셨어요. 저희가 방석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참선 센터를 만드는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절이 위치한 곳이 백화산인데요. 이 산 전체를 오로빌처럼 큰 참선센터 혹은 아슈람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소승적으로 생각하면 나도 편해요. 나도 이제 수십년 걸쳐서 일궈온 것이 있으니 이대로 내 몸뚱이 하나 편하게 사는 게 쉽지요. 그래도 누군가는 자기가 죽고 난 다음을 생각해야죠. 대승적으로요. 내가 욕심을 부린다고 생각하면 그건 그 사람 생각이니 하는 수 없지.”


주제 넘지만, 사실은 이야기를 들을 때 내심 좀 불편한 마음도 있었거든요. 사업가가 그릴 법한 비전을 종교인이 그린다고 하니 어쩐지 흠결로 다가왔나봐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스님을 차분히 바라보는데, 완벽하게 흠결이 없는 모습이 아니라 흠결과 함께인 모습이 정말 편안하게 느껴졌어요. 정말 편안하게 자기 자신과 함께 계시구나. 온전한 나를 드러내는 데 이렇게 거리낌이 없는 모습이라니. 나도 모르게 얼마나 완벽한지, 흠결이 없이 매끈한지에 매달리게 되지만, 친구가 되고 싶다고 느껴지는 사람은 ‘나는 이렇게 생겼고, 이런 울퉁불퉁한 면도 있어.’ 무심하게 드러내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주로 이런 말을 붙이는 사람. ‘아님 말고!’ 저는 이런 사람들과 제 쉼의 시간을 나누는 것을 좋아해요.


지난 한 달을 돌아봤을 때 주로 어떤 관계에서 몸과 마음의 이완을 느끼셨나요?

요즘 45분 일하고 15분 쉬는 사이클을 연습하고 있는데요. 여러 모양의 쉼을 일상에 넣고 실험하면서 잔잔하고 힘있는 변화를 느껴요. 생산적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고요. 전반적으로 무드가 심한 커브를 그리지 않고 완만해졌어요. 쉼을 가까운 선반에 두니, 자연히 행복도 손닿는 거리에 두고 있고요. 과학이 이렇게 발전했는데 인간이 아직도 잠을 자는 이유를 정확히 모른다고 하잖아요. 저는 이게 쉼에 대한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수면은 수면 고유의 목적과 의미가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쉼의 목적과 의미를 과학적으로도, 실생활에서도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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