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이 자세하고 집요한 폰트 이야기
주변의 다양한 폰트 활용 사례를 수집하고 있는 ‘폰트 사례 수집가(?)’
저의 폰트 찾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폰트의 세계는 광활하고 우리가 찾고자 하는 폰트는 수없이 많지만 항상 찾기에 어려움을 가지죠. 저 같은 경우 원하는 폰트를 찾기 위해 가지고 있는 폰트 리스트 중 가장 유사한 계열을 대조해보곤 하죠.
만약 폰트 회사 홈페이지의 ‘폰트 미리 보기’까지 접근하셨다면 당신은 폰트 찾기에 상당한 내공을 갖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찡긋)
폰트 찾기의 난이도는 폰트의 특징에 따라 혹은 찾으려는 표본의 한계—특징적인 요소를 찾기 어려운 문장이라던가—에 따라 다릅니다. 어느 날은 맑은 수영장 물 안에서 동전을 줍는 일이었지만 그다음 날에는 태풍이 몰아치는 바닷속에서 진주를 발견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매 상황이 다른 이 보물 찾기는 트레져헌터인 우리의 시간을 앗아가고, 가끔 심신을 지치게 하기도 하죠.
그리고 이때 ‘이 정도면 비슷한데?’라고 하는 마음속 속삭임이 나를 유혹할 것입니다.
좋은 글자를 찾던 우리는 이때를 가장 조심해야 되며, 가능하다면 뺨을 두 손으로 짧고 강하게 두 번 두드려 악마를 떨쳐버려야 합니다.
웬만큼 글자가 비슷하더라도 다른 부분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내가 찾던 폰트가 아니라는 것을 결국 인정해야겠죠?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음…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1) 찻잎을 우려내고 여유를 가집니다. 그리고 다시 봅니다.
2)커피를 내리고 여유를 가집니다. 그리고 다시 봅니다.
3) 오늘은 접고 여유를 가집니다. 내일 다시 찾기로 결정합니다.
어렵지 않아요. 즉, 당장의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에 휘둘리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다시 보는 것이죠. 이제 저의 경험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여기 ‘금연구역’이라는 한글로 쓰인 문구가 있습니다. 이 네 글자에서 크게 튀어 보이는 부분은 안보이죠? 우리가 일반적으로 흔히 말하는 ‘고딕’계열 폰트가 쓰였네요. 이 글자에 쓰인 폰트를 찾기 위해 저는 고딕 계열 폰트들을 찾아 이 이미지와 대조해보았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제가 가진 폰트에서부터 대조를 시작했고, 이후 폰트 회사의 고딕 계열을 비교하며 차이를 하나씩 제거해나갔습니다.
대조한 표본 중 딱 2가지 폰트만 살펴보기로 하죠.
상단의 이미지 속 글자와 하단의 폰트의 다른 점이 잘 보이시나요? 집중하여 보지 않는다면 크게 다른 점을 구분하지 못하는데요. 글자의 디테일을 보는 눈의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집중해서 보신다면 아래와 같은 차이점이 눈에 띌 것입니다.
1. Noto Sans CJK KR Black
➊ 금: ‘그’와 ‘ㅁ’사이 공간이 넓다.
➋ 연, 역: ‘ㅇ’과 ‘ㅕ’가 붙을 때 나타나는 속공간의 공간이 넓다.
➌ 금, 구: ‘ㄱ’의 세로 줄기에서 곡선의 모습이 다르다.
2. Apple SD 산돌고딕 Neo Heavy
➊ 금: ‘그’와 ‘ㅁ’사이 공간이 넓다.
➋ 연, 역: ‘ㅇ’과 ‘ㅕ’가 붙을 때 나타나는 속공간의 공간이 넓다. / 받침닿자가 글자 너비에 비해 가로로 넓다.
➌ 금, 구: ‘ㄱ’의 세로 줄기에서 곡선의 모습이 다르다.
이미지 속 글자와 제가 찾은 폰트를 대조했을 때의 다른 점을 나열해보았는데요. 위의 2가지 폰트가 제가 찾은 고딕 계열 폰트 중 가장 이미지 속 글자와 유사하다 판단하였죠. 하지만 알고 있었죠.
이미지 속 글자와 완벽하게 같은 폰트가 아니란 것을요.
전 잠깐 숨을 고르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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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뒤, 마음을 가다듬고 두 폰트와 이미지 속 글자에서 다르게 보이는 ‘ㄱ’의 글자 형태를 파고들기로 했습니다. 보이는 모습이 명확히 달랐기에 다시금 형태의 유사함에서부터 찾아보기로 결정한 거죠. 그리고 저는 이미지 속 글자의 ‘ㄱ’과 같은 형태를 가진 폰트를 찾았습니다.
다시 찾던 중 Yoon 윤고딕이 유사한 형태의 ‘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윤고딕 160을 자세히 대조해보면 상대적으로 글자가 가로로 넓고, 미세한 차이지만 ‘ㄱ’이 조금 더 기울어진 세로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슷하지만 완벽하게 같은 형태라 말하긴 어려운 상황인 거죠. 오히려 속공간의 크기, 낱자 간 거리, 받침닿자의 비율은 너무 딱 맞아 보였습니다. ‘ㄱ’의 글자 형태를 찾아 여기까지 왔는데, 공간의 비율이 더 맞아 보이니 아이러니한 감정이 들더군요. 99%가 비슷한 상황에 1%의 형태적 차이만 해결하면 되는 상황이었죠.
다행히 이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바로 글자의 너비를 좁혀보는 방법이었죠.
폰트 제작자 입장에서는 글자의 너비 조절을 권장하고 있지 않지만 사용자는 다양한 환경에서 자신의 입맛에 맞게 글자를 사용할 자유가 있습니다. 이 글자 또한 그러한 연유인지 몰라도 너비를 좁혀 사용한 모습이고요.
저는 95% 정도로 글자의 너비를 좁혀본 뒤, 이제야 ‘ㄱ’의 세로 줄기의 곡선이 이미지 속 글자의 모습과 같아졌다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즉 이미지 속 글자는 'Yoon 윤고딕 160의 글자 너비를 95% 정도로 좁혀 쓴 폰트'라는 것이죠.
이미지 속 글자로 쓰인 폰트를 찾고 나서 비슷하다 생각했던 폰트들을 다시 대조해보니 또 다른 차이가 보입니다. 저 같은 경우 이렇게 나란히 놓고 보니 ❶, ❷의 글자가 ❸에 비해 더 굵고 진해 보이며 ‘ㅇ’의 속공간도 상대적으로 작아 보입니다. 여러분 눈에는 어떻게 보이시나요?
고딕 계열 혹은 명조 계열이라 말하는 폰트들은 얼핏 보기에 모두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집중해서 파고들면 그 익숙함 속에서도 차이는 항상 존재하며, 그 미세한 차이로 인해 문장으로 표현되는 시각적 인상이 달라집니다.
어떤 이에게는 폰트를 잘 찾는다는 것이 다소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쓰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요. 하지만 나의 언어에 힘을 더하기 위해서 목소리 톤을 바꾸는 것처럼, 나의 글에 힘을 더하려면 글에 걸맞은 폰트를 쓰는 것이 좋은 소통의 시작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