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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zzy Jan 04. 2022

창경궁 돈화문부터 동대문까지

산책 일지 1만보

산책 이어적기를 하던 여름 날 걸었던 길을,

두 계절이 지나는 즈음에야 다시 떠올려본다.

하늘이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웠던 날.

토요일 오전 길을 나서 1만보를 걸었다.

창경궁에서 을지로, 종로 5가를 거쳐

동대문까지. 도착지점부터 거꾸

역방향 회상.


마지막 당도한 곳은 동대문 시장의 현대아웃렛

지하에 있는 교보문고였다.

이날 지하에서는 MSG 워너비 노래가 흘렀고

유행가를 들으며 여행을 떠나고픈 생각도

잠시 했다.

엠에스지 워너비 팀워크 행복해 하며 계속 보게 .

유재석과 지석진이 편하게 놀리는 대화가

친한 친구 사이에만 생기는 유일한 분위기라

더없이 좋아 보였고,

원슈타인의 수줍은 듯하면서도

묘하게 굴곡 있는 목소리에 빠졌으며 

쌈디의 감미로운 발라드 미성 반 버렸다.

KCM은 대학 시절 친구들과 노래방만 가면

밴드 보컬 친구에게 불러달라고

늘 버튼을 눌러놓았던 곡의 가수였다.

엠피쓰리를 쓰던 시절,

플레이리스트에 엠피쓰리 파일로 께 하던 반가운 가.

지금도  목소리 찾아듣던 차라

놀면 뭐하니 출연이 더더욱 반가웠다.

20대 친구들과 공강 시간이면  종종 학교 앞 지하

노래방에 가던 추억을 떠올리며,

동대문 지하매장에서 엠에스지 워너비 노래를 다

듣고 나왔다.


동대문에 도달하기 전에는 을지로를 걸었다.

시장들이 즐비한 거리. 

을지로가 힙지로가 된 후로는 좀처럼

어떤 내부로 들어가보지 못했으나,

(이후 겨울에야 누군가 불러내

처음 경험해 보았는데,

시간이 뒤섞인 느낌의 장소라 독특.

계속 가고 싶어졌다.)

내게 을지로란, 독립잡지를 만들던 시절

거래처인 인쇄소가 있던 곳이다.

인쇄소 사장님이 편집장처럼

마감을 챙기셨다.

이제 인쇄하러 올 때가 된 거 같은데...

전화 챙김(?)이 즐거웠다.

동료들끼리 인쇄소 아저씨의 친절과 부지런함에

경외심을 느꼈다. 값도 늘 저렴책정해주셨다.

하루 사장님의 사업자 등록증을 들고

어느 구청에 가서 잡지 정기 인쇄물로

등록하려다 독립잡지 선례가 없다,

이후 방법을 알려준대서  나왔다가, 

그냥 등록 없이 만들어 팔았다.

을지로를 걸으면 그때 계절 생각이 난다.

온갖 잡화 도매와 제작이 이뤄지는

생계 현장에서 그 안에 매일 근면히 일하시는 분들.

 카페의 젊은 기운의 담소와

작가 프로젝트들이 동시 진행되기도 하니,

몇 군데 가보고 싶 곳도 여러 곳 생겼으나,

코로나 19 시기와 맞물려 그저 골목

골목을 조금 걸었을 뿐이다.

을지로 어느 카페 창가를 통해

노트북을 하는 이를 보았는데

편안해 보였다.

다른 카페에서는 각자 노트북을 하는

커플인지 친구 한 쌍이 보였는데,

그들 또한 더없이 평온해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함께 있지만 사적인 무언가를 따로 하는 풍경!

사랑과 거리감이 공존하는 모습.


을지로 전에는 종로 5가를 걸었다.

그곳 사거리에는 두산아트센터가 있

일층 갤러리와 지하 공연장이 있다.

자주 가던 곳. 

공연 프로덕션  일을 하러 가기도 했고

취재나 인터뷰를 하러 가기도 했고

그저 좋아하는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러 가기도 했던 곳였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날이면 

DDP까지 걷던 시작 지점였다.


종로 5가는 유명한 광장시장이 있고,

그 옆

광화문에서 동대문까지의 대로는

이전부터 자주 직진하며 걷던 길인데

중간에 남산으로 빠질 수도 있고

대학로나 명동 등 주요 시내로 연결돼

서울 사람의 반복되는 서울 나들이 장소로도 

애정하는 길이다.

빌리 엘리어트가 올해도 하는구나,

뮤지컬 안내판을 보며 또 걸었다.

몇 달 후 여름 지나 겨울,

결국 다시 이 공연을 보았는데,

빌리에게 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썩어 없어질 몸뚱아리, 춤을 추라 했나?!

과격하게 말했는데

되게 그 말이 귀에 꽂혀 오래 오래 갔다.

썩어 문드러질 너무 몸 사리지 말자고.

농담처럼 하고 다녔다.

십여 년 전 보았을 땐

어린이들이 너무 애쓰는 공연이라,

조숙한 연기를 보는 게 익숙지 않았는데

올해 다시 보면서

충분히 아이도 어른 같을 수 있단

생각을 하고 보니 흥미로웠다.

아이 공연(정확히는 어린이 영유아 무용)을 몇 차례 보면서

내 안의 편견이 다소 깨진 후였다.


롯데리아를 지나면서는

예전에 연극에 참여한 뒤 새벽녘 일행과 헤어져

혼자 이곳에 우연히 내렸는데

그곳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을 했 기억이 났다.

뒤풀이에서 자정 넘어 나왔는데,

그냥 끝까지 있을 걸 그랬나 싶고

그러면서도 좀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커서,

발길 따라 들른 동대문

롯데리아 창가에 앉아

그날 기분을 정리했다.

공연은 좋았는데 뭔가 공허함이 있었다.

제대로 한 게 없다는 어떤 우울한 자각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런 울적하지만 어쩌면 또 필요한 생각들을 하며

밤을 샜다. 공연 후 남은 유리 컵을 갖고 왔는데,

소용돌이처럼 지나간 공연이 남은 자리에,

천원짜리 다이소 잔 하나 남은 걸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을 멍때리다 새벽녘 귀가했다.

(그 컵은 이후 나의 애장품이 되었다.)


을지로 큰 길에는 옛 한국통신 자리였던 곳에,

공중전화기들전시되어 있었다.

기억 속에 또렷한 어느 순간들조차

금세 멀리 와버렸단 사실에 새삼 시간에 대해

생각했고 98,99년 전화번호부를 보며

삐삐에 수많은 말들을 남기던  밤이 떠올랐다.

배경음에 넣을 노래를 고르고

공중전화로 달려가 친구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또다시 독백을 남기던, 녹음 편지.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녹음 편지라는 걸 쓰지 않던

시기에. 극장에서 일하던 친구에게

장문의 녹음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소울메이트의 목소리.

친구의 음성을 내려받고는

언젠가 삶이 너무 힘들 때 들어야지 했는데,

그저 기억 속에 두고 다시 듣진 못했으나

메일로 전송돼온 친구의 음성에

적잖이 감동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게 우리가 서로 아이처럼 솔직했던,  

마지막 통신 수단였던 것 같고

각자 일상에 부대끼면서 그런 녹음은

주고 받지 않게 되었다.

최근에 친구는 공연보다 중요한 건 우선 삶이라고,

내게 말했다. 둘을 비교 대상으로 삼을 순 없지만

친구는 자신과 가족보다 공연을 우선 순위에

두지 않는다는 늬앙스로 말했는데,

그 말을 하는 순간조차

우리가 어느 무용 공연이 끝난 자리에서

그 공연을 다시 만난 데에 대한 감회를

말하던 자리였다.

이 작품을 잊지 않은 사람이구나... 옛날 무용 작품을 보러 왔구나...

친구가 말했다.


을지로에는 특히 각종 음식과 잡화류, 의식주에 필요한

많은 것들 판매 되는데

멸치골목의 굴비골목의 문양이 재미있게 보여

일부러 사진을 찍었다. 예전엔 재래시장에서 먹는 것을

좋아해 친구들과 어울려 종로 5가나

을지로 주변을 쏘다니기도 했는데,

코로나가 종식되면 재래시장 골라 다니며

군것질을 하고 싶어졌다.


그리곤 세운 상가를 지나기도 했는데,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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