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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zzy Jan 11. 2022

빌리 엘리어트

무엇이 어떠하든 너는 네 길을 가라

야무진 사람이 되어야 했다.

좋아하는 대상을 발견하려면. 그리고 지키려면.

뮤지컬 빌리엘리어트를 보고 난 후

그런 생각을 했다.

조금은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고.

아무리 어려도. 혹은 세상을 알아도.

꿈을 알아채고 그에 전념하는 건

당돌한 이기심도 필수라고 말이다.


빌리는 탄광 노동자의 아들로

힘겨웠던 환경에도 불구하고

실력을 알아봐준 발레 스승과

약간의 패기와 넘치는 자존심, 조숙함

상황을 극복한다.

춤에 천재기를 지닌 빌리는,

동네 발레 연습소에서

무심코 발레를 배우다

처음에는 대수롭잖게 무시했던 발레를,

천직으로 받아들인다.

나이의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이나, 어른인 발레 코치와

일대일로 대등한 시선에서 교류가

가능했다.

스승은 그를 어르고 달래기보다는

대차게 대했고,

거기에 맞게 빌리는 애늙은이처럼,

어쩌면 조금은 '발랑 까진' 당돌함으로

패기있게 발레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간다.


뮤지컬 빌리엘리어트는

빌리와 스승,

그리고 춤에 대해서라면 그의 방해꾼이다가 어느새 지원군으로

변해가는 아버지와 형,

빌리를 처음부터 응원하는 할머니,

애꿎은 장난을 진지하게 치는 친구 등,

몇몇의 관계 안에서

그가 발레리노 소년으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특히 탄광 노동자들이 현실과 타협하기보다

투쟁하는 노선을 걷는 동안에,

빌리 아버지가 빌리를 위해

그 선을 넘어 동료들의 배신자가 되는 구도를,

빌리의 성난 춤과 타고난 재능이

화해하도록 만드는 노선을 걷는다.

발레라는 화려한 춤과 대조되는

탄광 노동자들의 단호한 절연이

극에서 애달픈 정서를 그려낸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감동 깊던 장면이,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신념을 거스르고

탄광으로 들어가던 장면였는데,

뮤지컬에서도 빌리를 위해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성마르나 다감한 아버지의

캐릭터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하다기보다는 숭고하고 무거운 뒷모습였던

마지막 세대로서의 탄광 노동자.


그런 아버지가 사람들 지원을 받은 돈을 들고

아이를 데리고 발레 학교 입시에 가는 선택은,

어떤 옳고 그름을 떠나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을 아이를 위해 수용하는

어른의 인내 혹은 황망함 같은 게 잘 드러난다.

어떤 선택에서라도 자식에게 다 주어버리는

부모의 위치, 그런 게 빌리 엘리어트를 보면

절실해 보인다.

그리고 빌리는 천운인지 그에 대한 보답인지

천재 발레리노로 성장한다.


사실 현실에서는 그런 선택과 돌봄들이

성공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천재란 희귀하니깐.

손에 꼽을 정도이니 어떤 순간의 그 길이

아닐 수도 있는 일이 더 많다.


어쩌면 그렇기에

꿈을 좇는, 꿈을 좇게 하는 여건의 이야기들이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이 길이다 느꼈을 때,

그 직감을 믿고 영리해져도 되는,

믿고 따라가도 되는 대담함.

그런 마음이 빌리라는 이름을 들으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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