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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zzy Feb 15. 2022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면

그 사이로 숨통이 트일까


그리스도 헤어 스타일을 하고 싶었다.

가까이 연습에서 보았던 무용수의 이미지가 내겐

어릴 적 성당 주일학교에서 사던 그림 엽서 속 이미지였고,

그가 가진 작가적 시이나 양심도 그러했다.

동물과 환경을 사랑하고 그에 진심 염려하고

세심히 말하는 성정이 어린 예수를 떠올리게 했다.

자연스런 단발 웨이브로 춤을 추면

수수한 무공해적 외양에도 위로 받았다.

심지어 그의 작품 연혁에는

ㅁㄱㅎ 댄스라는 타이틀도 있다.

사람 따라 이름 가나.

그런데 딱 그런 모습만 갖고 있으면 매력이

덜할 텐데 어느 순간 되게 까칠하고 퇴폐적인

이미지와 움직임도 한데 갖고 있어서

그가 춤을 출 때면 복합적인 아우라가 생겨

흰 눈 서릿발에 햇살이 비치는 듯한

매섭고 따스한 분위기가 동시에 풍긴다.


문득 나도 내적까진 치지 못하더라도

외향이나마 어쩌면 머리 스타일만이라도

그처럼 지저스 스타일이 하고 싶어 ,

불쑥 지난 달 퇴근길 미용실에 다.

코로나로 일찍 문을 닫기에

펌을 할 시간은 안 돼서  뿌염만  채

주말 오전에 오기로 하고 밖을 나왔다.

그리곤 드디어 일욜 아침 그리스도 머리로 볶았다.

길고 얇게 늘어뜨리는 웨이브.

헤어디자이너님은 정성스레 머리를 꼬며 말리

시연을 해보였고

내게 따라해보라 했다.

-앞으로 이렇게 계속 꼬우셔야 합니다!

꼬우시다? 란 말이 재미있게 다가왔고,

(꼬소하죠? 그런 기분)

성직자스러운 헤어스타일에 탄복하며

머리를 꼰 채

설레어 길을 나섰다.

기분이 좋았다.

며칠 행복했으려나?

손으로 정말 꼽는다.

안타깝게도 성스럽게 꼬 머릿칼

일주일도 채 가지 않았고

오히려 우드스탁 페스티벌 광란의

자유인처럼 돼버렸다......

심지어 염색 펌을 함께 했으니

더 망해 버 것.  쓸 수 없게 되...었 ..다....


이십 대 중반 어느 날

한 친구는 리서 걸어오는 나를 보고

69년 우드스탁 걸어오는 느낌을 받았다고

첫인상을 말했다. 히피였는지 로커였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만 보면 우드스탁이라고 불렀다.

그때도 머리를 길게 길러 파마를 했고 또 역시 풀려서

난감한 상태였는데

친구로선 그게 어떤 자유스러운 표상처럼 느껴졌던 걸까.

그후로도 몇 해를 그 첫인상을 묘사해

들려 주곤 했다.

안 보이는 이미지를 언어로 반복하던 그는

세월이 흘러 영상을 다루는 이가 되었,

이후로도 온갖 이미지로 나를 묘사해주었다.

수많은 수식어는 모두 그가 갖다 붙여준 것일뿐

나 스스로 붙이진 않았고

그게 과연 그럴까 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결국 풀려버린 어정쩡한 머리를 보면서

했다.

의도와 결과는 늘 불일치하나,

그 틈새에서

다른 매개체가 나타나기 마련이라고...

기억일 수도 있고 기분일 수도 있으려나.

무형의 것이라도

무어라 짚을 순 없어도 어떤 것들이 동반되어 실망 일상을 덮어준다.

우드스탁을 들먹이며

타인 창으로 약간이라도 숨통을 트이는 경험을 했던,

어두웠던 친구의 맘은

내가 몰랐고 또 모를 마음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다른 체를 걸러 그를 어떤 세계로부터

일정 도피 혹은 해방토록 했고,

정작 나는 모르는 이미지를 소비했다.

요사이 지저스 크라이스트 헤어를 열망하던 나는,

과거 어느 순간마다의

친구 코멘터리를 떠올리며

일주일치 머리라도 괜찮아, 우드스탁이잖아...라는

위안을 삼았다.

그 시절엔 타인에게,

지금은 스스로에게 일견 일탈의

기분을 선사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그리고 며칠 뒤 또 어느 무용을 보면서,

퍼포머들의 헤어 스타일이

춤의 이미지를 일정 좌우하는 것을 또 느꼈고,

예전에 머리를 감는 터키 여성들의 이미지로

무대가 물에 흥건해졌던 어느 무대도 함께 떠올랐다.

네페스였던가

제목의 뜻은 숨.


결국 그리스도 머리는 망쳤지

숨으로 귀환,

피나 바우시의 네페스와

예수 이미지의 무용수 작품과

그리고 이런 저런 '포포몬스'들이 또 보고 싶어졌다.


https://youtu.be/WrmIxAVTq4s

피나바우시, 네페스(숨). 피나바우시 부퍼탈 무용단 시선에서 해석된 도시 이스탄불.


피나 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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