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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레아프레스
Sep 19. 2024
윤상, 이별의 그늘
90년대 그 시절 사랑했던 가요 1
주변에 슬픈 목소리를 지닌 사람이 있니?
내 친구 중엔 “그...래...”라는 말을 애상적으로
말하는 이가 있어.
친한 친구인데, 가끔 기분이 울적할 땐 그 친구의 목소리가 떠오르곤 해. 특히 “그래”, “그렇군”이라는 그 친구가 자주 쓰는 말이 있는데, 긍정인지 그냥 습관적으로 하는 말인지 알 수 없는 대답을 반복할 때면, 그래도 그 말에 위로가 되거든.
그저 지금 내 기분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 같아서
울적함을 받아들이고 매듭짓게 되곤 해.
얘기를 잘 들어줘서 힘들 때면 찾는 친구인데,
목소리 음색 탓인지 그래도 어딘지 대답을 들으면
슬퍼져.
서울이 고향이 아니라서 특유의 지방 억양도 있지.
가끔 그
목소리가
뮤지컬 넘버의
여
음처럼 다가와.
뮤지컬은 정제된 짧은 단어나 추상적인 언어로
속
깊은 정서를 드러내거든.
친구의 “그래” 얘기를 길게 한 건,
90년도 윤상의 등장을 얘기하고 싶어서야.
내가 최초로 슬픈 목소리로 인지했던 가수거든.
‘이별의 그늘’ 을 처음 들은 날이야.
신촌로터리에서 연세대 가는 방향의 길에서 차가 막혔고 신호대기에 걸렸
어
.
토요일 오후, 길에서 가요가 흘렀어.
우수 어린 음색의 멜로디가
아버지
차 안을 채웠어.
마포에서 외식을 한 날이었고,
인생 최초 대형서점을 가본 날이기도 했거든.
이것저것 책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어.
세상에! 이렇게 큰 책방이 있다니!
서점 복도에서 경이로움에 빠져,
책 사이를 오가며 기뻐서 어쩔 줄 몰랐지.
그 서점은
신촌서점이었어.
주말 오후 누런
재생 봉투 안에 담긴 여러 권의 책들,
그리고 윤상의 노래. 가끔 그때가
이별의 그늘 BGM으로
떠올라. 아마도
철
없이 행복할 수 있던 때의 마지막은 아니었을까,
싶거든.
스스로 그렇게 회상해.
90년대 초
88 올림픽 이후 호경기였고
대형서점
을 처음 접한
난,
이후로
책에
탐닉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세상이 그렇게 밝
게 보이지 않는,
애늙은이로 자랐거든.
점점 이면을 보는 데에 집중했고
잘
보이지 않고 단정짓기 힘든 것들에 관심이 갔어.
모순된
감정이나 고독에 잠기는 습관의
서막이랄까,
"문득 돌아보면"그래.
윤상의 노래
를
지금도 슬플 땐 찾아 듣곤 해.
슬플 땐 슬픈 노래를 듣는 게 오히려 감정이
정화된
다잖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막연한 슬픈 생각에 잠겨 이 글을 쓰고 있어
.
감정이 내려앉아 무거울 땐
억지로 신나는 노래를 듣기보다는, 그저
이 상태를
희석시켜줄,
위로할 목소리를 찾
게 돼.
1990년 그날의 신촌, 인생의 배경음악은 지금도 유효
한가봐.
어느새 어른
으로 자라고
직업을 갖고 회사에 다닐 땐
가수 윤상을 직접 보기도 했어.
얼른 달려가
오랜
팬이라고 말씀드렸지.
그는 사인 씨디를 선물로 줬어.
그해 윤상 콘서트가 경희대에서
열렸
는데
,
그에게 꼭 콘서트에 가겠다고 말씀드렸어.
그러자, 표를
손수
보내주시겠다고 하셨고
나는 아니에요, 아니에요
만류했어
.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내가 직접 돈을 내고
티켓을 구매해 가겠다고 했는데 글쎄,
며칠 후 회사로 내 이름이 적힌 표가 왔어. 2장.
가수가 직접 챙겼든, 매니저가 챙겼든, 정말 기뻤어.
무수히 여러 직종의 팬들이 존재하고
나처럼 한순간 금세 스쳐 갈 텐데,
잊지 않고 보내준 거잖아.
당시 콘서트에서 윤상은 관객이 공연 후 자리를 뜨지 않아 이제 더 이상 들려줄 곡이 없다
말했고,
준비해 온 곡들을 모두 연주
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도나도 윤상을 외치자, 그는
아이폰으로 만든 음악을 즉석으로 들려
줬어.
.
그때 또 생각했지.
내가
기계치이다보니,
기계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사람들을
줄곧 좋아했고
선망
해왔거
든.
90년대엔 그랬어.
윤상, 정석원, 신해철... 당
시
인기 가수들은, 직접 만든 음악의 기술적 기반에 대해 라디오에
출연해 섬세하게 설명해
주곤 했어
.
이제 신디사이저로 작곡가 한 명이 모든 악기를 구상해
직접 음악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온 거라고
말이야.
기술적 혁명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곤 했어.
그리고 얼마나 음악적 테크닉에 공을 들여 녹음을 했는지 강조하곤 했지.
기술에 대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대한 인식이 반반이던 때, 다소 선지자적으로 본인이 활용할 수 있는
기술적 장점들에 대해 말했고,
그들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
작곡가 본인이 모든 악기 소리를 만들 수 있다고?
지금 듣고 있는 이 멜로디가 한 사람이 설계한 기계음이라고?
신기해 귀를 기울였어. (이런 마음은 신해철 유고 앨범에서도 깨닫게 돼.) 그땐 어려서 그게
왜 그렇게 자부심의 영역인지 잘 몰랐어.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흘러도,
그들의 그때 음악을 들으면 여전히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촌스럽다거나 이미 지난 시대의 노래란 생각이 들지 않아.
귀에 더없이 편안하다 느낄 때마다
그 시절
기술적 성취의 찬사를,
이제야 느끼고 듣고 있구나,
시차를 두고 떠올
리곤 해
.
윤상 1집은 지금
들어도 그냥
오늘
만들어진 곡 같아.
가사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 와닿아
.
지금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든
어제 그제 10년 전 헤어졌든
사랑에 대한 회환을
이렇게 깨달음으로 전환해 말하는
인간 마음의 보편적 노래라니!
덧없음, 초탈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나
청취자를 위로하지.
인생을 압축해 말하는 노래이기도 해.
“문득 돌아보면 같은 자리지만...난 아주 먼 길을 떠난 듯했지.”
반복과 변주 속에 떠나온 삶, 진정한 나를 찾아 멀리 떠나
고 수없는 이를 스치지만
어딘가 공허하고
결국 다다르는 곳은 늘 내 안에 있던 그 자아라는 것.
모험을 떠난 끝에 돌아온 곳이
출발지,
결국
집인 것처럼 말이야.
"이별 후에 결국 눈 뜬 사랑"은
타인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적용되는 감정이기도 하니깐.
박창학의 가사는 서정적으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가사였어. 그런 멜랑콜리 감정을 느끼게 해준 윤상이
90년대 중반엔
신해철 마왕
과 결합했어.
96년 <노땐스>는 음악적 호기심을
채워주던 소중한 그룹이었지.
당시 신해철은 남성 팬이 많았고,
윤상은 여성 팬이 많다고
느
꼈는데
, 둘이 결합하면서 성별과 관계없이 라디오깨나 듣고 음악 좀 듣는 이들은 이
그룹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
어
.
90년대 중반 신해철은 거의 신의 경지에 올랐던 것 같아. 학창 시절 누구 생일이 되면, 수업 전 그 친구에게 노래 부르라고 떠다미는 문화가 있었는데,
같은
반 남학생들은 거의 신해철 넥스트 노래를 불렀거든. 나는 신해철과 윤상을 둘 다 무진장 좋아했어.
윤상
의 경우엔,
우수어린 분위기에 잘
빠지
는,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좋아했던 거 같아.
계속 강조하지만 애상적 목소리가 독보적이잖아.
신해철의
강인
함과 윤상의 부드러움.
그들이 만들어낸 개성 있는 전자음악.
댄스음악이 주류였던 시기에 노땐스라니!
이름부터가 저돌적 선언 아냐?
윤상은 이후 남북 평화 분위기가 절정일 때
음악감독
을 역임
했고,
신해철은 가수이면서 동시에 논객으로서도
수많은
팬의
지지를 얻었어.
이들의 독보적 자질은 이후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굵직굵직한 자취를 남길 만한 행보로 발현됐지.
어릴 때 좋아했던 가수들이 꾸준히 대외적으로 씩씩한 캐릭터로
,
내가 사는 사회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는 걸 보는 건,
어마어마한
행운이야.
신해철을 처음 본 건 .... TV 가요프로그램에서였어.
그날 엄마의 심부름으로 깨소금을
빻
으러 갔거든.
동네 재래시장이었어. 노룬산 시장.
노루가 많이 살아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누런산이라는 뜻이었다나봐.
옛날 잔디밭에 누렇게 보이는 구릉이 형성됐던 곳이래. 지금은 자양 5구역 고층 아파트가 영동대교 북단으로 형성된 지역이야.
노룬산 시장은 옛날 모습은 아니지만 정비된 형태로, 예전보다는 다소 고요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는 시장이야. 어린 시절 그 시장 깨소금 집에 간 적이 있어.
시장은 두 구역으로 나뉘는데,
한 쪽 구역은 자양동 성당을 다닐 때 걸어가던 길이고, 한쪽은 잘 안
가
는 길이었는데
요상하게 그날따라 잘 안 가던 그 길을 갔어.
엄마 심부름은 핑계였고 아마
도 길을 잃을 방황이 필요한 때는 아녔던가 싶어.
신해철을 영접할 운명인지도. 후훗.
지금도 여전히 안 가본 길을 좋아하는 나로선,
이미 어릴 때 그런 조짐이 있었고 그 길 위에서
신해철에 ‘입덕’한 거야. 뜨듯한 장판
바닥에 앉아,
깨소금과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를 맡고 있었어.
그리고 지경사에서 나온
명랑
소설
시리즈를 읽고 있었어. 제목이 다소 유치해서 말을 할 수가 없네.
그 소설은
소녀가 어떤 옷을 입으면, 어른으로 변하는 설정이었어. 톰 행크스 주연 영화 ‘빅’이나 예전 홍
자매 대본, 공유·이민정 주연 드라마 ‘빅’ 같은 콘셉트를 갖고 있어. 그게 코트였는지 원피스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 책을 들고서 깨소금을 빻으러 갔어.
통깨가 기계를 통과해 깨소금으로 바뀌는 순간,
TV 속 눈매가 예리하고 얼굴이 마른 한 남자가,
차가운 표정으로 노래를 하고 있었어.
순간 반했어
!
늘 그런 외양에 반했어.
난 마르고 긴 얼굴을 좋아하거든.
반한 포인트야. 턱선이 날카
롭고 긴
낯으로 그가 부르던 노래는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그날, 멍하니 넋을 놓고
동네 재래시장에서 그 곡을 집중해 다 듣고 나왔어
. 그의 가사는 너무나 사색적이었고 충격
으로 다가왔지.
생각 많고 대화를 좋아하는 이로선
더없이 환상적인 인물이랄까.
어른이 되어 신해철을 어느 뮤지컬 시사회장에서 만났고,
난 그에게 연기를 해보니 어땠느냐
... (다음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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