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에게) 가수로서 개인으로서 연기자로서, 그 셋 중 어느 때의 모습을 제일 본인이 마음에 드는지 물었어. 그가 그때 선글라스를 벗고 질문한 사람 쪽으로 시선을 보내줬어. 여러 명이 함께 있던 극장이었고, 동시에 기자회견장이었거든. 눈이 마주쳤는데, 또 그때 어린 날 TV를 바라보던 때처럼 또 반해버렸어.
그 반한 장소가 바로 그 시절 그 동네 자양동이었기에, 기분이 몹시 설렜어.
사실 신해철에게 반한 건 한두 차례가 아니긴 해. 어쩌면 어느 시기의 사적 친구보다 공인 신해철에 대한 기억이 더 강렬하거든. 넥스트 데뷔 20주년 콘서트 크리스마스이브 연세대 무대에서 본 신해철, 쾌변독설 책을 냈을 때 우연히 교보문고에서 본 신해철, 노제가 열렸을 때 서울광장에서 본 신해철 등 현실에서 스친 그의 기억은 늘 강렬했거든.
천재는 자기 선택권 비율이 남보다 높은 사람이라고, 누군가 그러더라. 천재가 되고 싶었을까. 10대 때 나는 천재로 느껴지는 사람들을 너무 좋아했고 또 스스로 천재를 꿈꿨던가 봐. 천재는 마음대로 살아도 그게 길이 되고, 거침없이 고독하게 혼자의 길을 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 사춘기를 독하게 보내며, 이미 스스로는 천재는 아니구나 회의에 빠졌지만, 그래도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고 싶었어. 10대 말부터 20~30대 시절을 선택에 항상 목말라했던 거 같아. 그 잦은 선택 속에서 소요나 방랑이 목적인 양 지냈어. 과거 시간을 돌아보니, 언제나 성급했던 면이 없지 않지만, 뭔가 더 좋아하는 대상을 만나면 그리로 갔어. 일이든 사랑이든. 매혹되는 걸 너무 좋아했어. 후회는 별로 하지 않는 성격인지라, 매 순간 내 마음에 집중하려고 했던 거 같아. 좋아하는 대상이 있으면 달려가고, 경험해 보지 않은 세계인데 끌리면 가까워지고 싶었어. 이런 선택에 영향을 미친 운명 또는 우연적 대상들이 책 속에, 영화 속에, 공연 속에, 내 주변에 문득문득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는데, 10대 때 스타들도 그런 영향을 끼쳤던 거 같아.
신해철이 그런 존재였어. 내 눈엔 늘 당당하고 멋있었거든. 설득력 있는 언변과 여유로운 유머 감각, 무대 위 카리스마. 그래서일까? 아주 어설프게라도, 신해철과 기자회견에서 눈을 마주친 그때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나 봐. 그의 자아에 대해 극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질문을 건네자, 신해철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고 내가 앉은 쪽으로 시선을 보냈어. 그가 나를 쳐다본 거야. 성덕의 순간인 거지. 멀리서였지만, 질문한 이를 바라보기 위해 선글라스를 벗는 센스. 그것도 왜일까. 또 너무 섬세하고 멋있게 느껴진 거야.
예전에 대학로에서 소개팅을 한 적이 있는데, 대상은 다음 날 바로 미국 유학을 떠나는 남자였어. 사람들이 무슨 당장 유학 떠날 남자와 소개팅을 하느냐고 했지만, 아마 나도 상대도 첫눈에 반하는 로맨스를 믿었던 사람인가 싶어. 그 상대분도 대학로 사거리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가 내가 인사를 하자, 선글라스를 바로 벗었는데 그게 사소한 배려로 다가왔어.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얘기하는 건, 당신의 얘기를 기꺼이 들어주겠다는 의사 표현 같잖아. 내가 대화까진 아니고 기자 회견에서 만난 신해철은 그런 포즈를 즉각 보여줬는데 어릴 적 영웅의 그 매너 하나로도 나는 붕 떠서 그 극장을 날아서 나와서 회사로 복귀했던 거 같아. 그리고 신해철의 멋있음에 대해 무진장 설레어 떠들어댔어. 오랜 시간이 흘러도, 나는 그때 신해철과 단독 마주했다고 자부하며 살고 있나 봐.
“신해철 님은 노래할 때랑 연기할 때(신해철은 시트콤과 뮤지컬에 출연하며 간간이 연기도 했는데, 나는 그 작품들을 다 좋아했어.) 자아가 어떻게 다른가요” 묻고 그가 답할 때, 그를 바라보는 순간은, 아마 내가 할머니가 되어도 잊지 못하겠지. 그리고 또 그가 세상을 떠나고 업무차 어느 공무원에게 전화해 신해철 작업실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유지되는지 물었을 때, 담당자는 너무도 친절하게 이런저련 얘기를 해주었는데, 신해철 바라기 자아는 내내 현재와 연결돼 있구나 생각했어. 신해철의 사회적 자아는 늘 자신 있고 여유롭고 유쾌해 보였듯, 나도 그런 용기 있는 에너지로 살고 싶거든. 그는 논객으로 살면서 홀로 공격받으며 힘든 순간도 많았겠지만, 언제나 삶을 즐기라는 조언을 팬들에게 잊지 않았어. 내가 마지막으로 본 무대에서도 경쟁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가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고, 그건 어떤 타인도 뛰어넘을 수 없다고, 스스로 도전하고 기꺼이 즐기는 삶, 행복을 찾으며 살라 얘기해 줬어.
신해철이 세상을 떠나고 지금도 가끔 신해철 노래를 연이어 듣거나, 유튜브 방송 녹화분을 볼 때가 있는데 어느 날 그를 회상하는 배우의 댓글을 봤어. 뮤지컬 할 때 형님이 항상 챙겨주고 건대에서 술도 사주고, 그 시절이 너무 그립고 감사하다는 글이었어. 나랑 비슷한 마음인 거야. 난 신해철에게 술을 얻어 마신 것도 아니고, 개인적 교류를 한 것도 아니지만, 신해철이 그리워. 그때 자양동에서 그가 말했어.
“연기에 몰입해 대사를 하고 있으면, 캐릭터가 나인지 그냥 껍질이 나인지 느껴지는 즐거움이 있다”라고 말이야. “매일 밤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랄까?” 그는 그에게 낯선 연기조차도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이고 열정적으로 하고 있었어. 공연팀에서 배우는 팀워크를 넥스트에 가서 적용해 보겠다며, 설레어하기도 했어. 자신을 챙겨주는 다른 배우들을 칭찬하기도 했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전형이야. 뭔가 타인과 나누고 싶어 하고 고마워하고, 늘 가슴 뛰는 삶을 사는 것.
대학가요제 ‘그대에게’ 무한궤도 보컬로 등장해, 개인 신해철이나 넥스트, 노땐스 등의 그룹으로 음악적 인기를 누리고 가장 치열한 논객으로 화려한 인생을 살았던 신해철. 여전히 나는 그가 그리워. 그는 늘 스스로 자기 음악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했던 거 같아. 그리고 또 한 편으론 의미 따윈 필요 없다고, 그냥 태어난 것 자체로 삶의 의무를 다한 거라고 여유롭게 말하지. 음악이 남아 있는 건, 그의 치열한 삶의 질문이 유효하다는 증거이니 나는 오늘도 그에게 위로받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감정이 바닥으로 내려앉거나 인간적 존엄성 같은 게 타인이나 주변 환경으로 인해 심하게 훼손된 날이면 <민물장어의 꿈>을 듣고 자면 위로가 돼. 그 노래 가사 전체가 그대로 내 기분과 100 퍼센트 일치하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쓸려 보내면 또 다른 에너지로 삶을 채우게 돼. 정말 남은 게 자존심 하나밖엔 없는 것 같고, 나를 어떻게든 뾰족하게 깎고 잘라야 할 것 같고,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날 땐 내가 누군지 스스로 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품고 다시 걸어보자, 이런 희망을 품게 되거든.
이건 마치 <비포 선라이브>에서 제시(에단호크 역할)가 한 말과도 같은데, 영화에서 제시는 셀린(줄리 델피 역)에게 죽기 전에 내가 잘하는 것이 뭔지 꼭 알고 싶다고 말해. 그 영화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대사이기도 하거든. 아마도 그 영화 주인공처럼 자기 줏대가 강하고 본인 견해를 아름다운 선율로 만들어내는 신해철이, 내 눈에는 에단 호크마냥 멋있어 보였던가 봐.
어디선가 신해철 팬들은 모두 그를 좋아했던 에너지로 치열하게 살고 있겠지? 몇 해 전 경기도 분당시에 전화해 신해철 거리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문의하자, 담당자는 그곳 스튜디오는 팬들이 자원봉사로 도와주기 때문에 작업실 자체는 예산이 별로 들지 않는다고 했는데, 순간 나처럼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함께 기억해 주고 있단 사실에 정말 감동했어. 아쉽게도 지금은 신해철 작업실은 문을 닫았지만, 거리는 남아 있거든. 이 글을 읽다가 문득 ‘나도 한때 신해철 팬이었어’ 라거나 지금도 팬이라면 한번 가봐도 좋을 거야. 경기도 분당시 수내구에 있는데, 걷는 걸 좋아한다면 신해철 거리를 둘러보고 정자동 카페거리나 근처 경기도 길들을 산책해도 괜찮을 거야. 누군가와 같이 가도, 혼자 가도 괜찮은 곳이지.